2019년 초
2018년 11월, 에이블씨앤씨가 우리 회사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기사화가 되었고 실제 인수작업은 12월에 마무리되었다. 4년 동안 일궈낸 회사의 매각 소식은 가족들에게도,친구들에게, 업계에도 알려지며 많은 축하를 받았다. 또한 인수합병 협상 때, 의무적으로 회사에 남아야 하는 락업은 없도록 협의했지만 매각 직후로부터 3년 동안은 연봉을 받는 이사로서 새로운 계약을 진행했다. 우리 회사를 믿고 인수해준 인수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고, 또 함께해 온 직원들에게도 계속해서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어 줄 책임이 있었다.
동시에 내 은행계좌에는 살면서 한 번도 찍혀본 적 없는 금액이 찍혀있었다. 사실상 체감이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액수였고 내가 첫 창업을 하면서도 늘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했던 금액보다도 많았다. 나는 누군가 사업을 하면서 얼마를 버는 게 목적이냐고 물어보면 늘 30억이라 답했었고, 평생을 일해서 그 금액 이상을 벌게 되면 나는 은퇴를 할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어느 시기에 내가 그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랐었고 그 시기가 바로 2018년 말, 내가 33살이던 해가 될 거라고는 더더욱이나 생각해본 적 없었다. 같이 창업한 대표 친구가 갑자기 만들어 온 딜에 준비되지 않은 채 그 상황을 마주했다.
그래도 목표로 했던 그 금액을 넘겼고 나는 약속대로 은퇴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더 큰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당장의 행복에 집중하고 싶었고 돈을 벌어야 하는 목적보단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를 인수한 회사는 나에게, 앞으로는 회사를 그리고 어떻게 브랜드를 운영해 나가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점점 레드오션이 되어가는 화장품을 미디어커머스로 판매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새롭지 않았고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같이 매각을 한 대표 친구에게 우리 회사의 화장품 브랜드들을 모두 맡아 줄 수 있는지를 제안했고, 대표 친구는 회사 대부분의 매출을 담당하고 있어 훨씬 책임감이 크고 메인인 화장품 브랜드들을 고맙게도 맡아주겠다고 했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유일하게 화장품 브랜드가 아닌 생활용품 브랜드인 생활도감을 맡기로 했고, 대표 친구 덕분에 나는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화장품이 아닌 새로운 카테고리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었고 매각 이전에 이미 꽂힌 두 가지 카테고리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나는 샤워 후에 몸을 말리는 바디 드라이어였고, 다른 하나는 음파전동칫솔이었다. 둘 다 아직 시장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카테고리였지만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돼지코팩과 같이 작은 시장이어도 그 시장을 확실히 차지할 수 있다고 봤고 이를 기반으로 확장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도전해보는 소형가전 카테고리였지만 시장에 유효할만한 컨셉만 확실하다면 생산처는 화장품 시장과 마찬가지로 찾으면 되지 않겠냐는 마음이었다.
25살의 첫 창업 이후로 쭉 8년 정도를 화장품 업계에 있었던 나에게, 나름의 이 신선한 도전은 설렜다. 나는 내 자신을 단지 화장품 업계를 잘 알고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고 마케팅해서 판매하는 것만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다. 나는 시장을 보는 눈이 있고 당장은 수요가 없어도 수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막연했던 도전이 설렜다. 게다가 이미 매각을 한 이후 도전하는 카테고리였기에, 실패의 부담도 솔직히 크지 않았고 나의 커리어 스펙트럼에 대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소형가전 제조업체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우리 팀은 바디드라이어를 생산할 수 있어 보이는 제조업체를 리스트업 했고 그중 미팅이 가능하다는 업체를 무작정 찾아갔다.
수십 년간 다양한 가전제품들을 개발하고 생산해 본 경험이 있는 대표님은 웬 젊은 친구가 이 어려운 시장에 들어온다고 하니 걱정과 우려가 섞인 충고들을 많이 해주셨다. 개발비, 금형비 등 초기에 투자되어야 하는 비용이 크기에 작은 회사들보다는 이미 경쟁력을 갖춘 회사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괜히 이 시장에 발을 들이는 것을 고려해보라며 달래셨다.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늘 나의 결정은 모두의 걱정과 우려가 그 시작이었다. 대표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무조건 되게 만들테니 대표님은 마스터피스를 만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