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019년 초에 시작된 바디드라이어 와 전동칫솔 프로젝트는 나의 예상보다 오랜 기간이 소요됐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가져와 제품에 네이밍만 입혀서 나오는 프로젝트가 아닌, 국내에서 직접 제조공장과 협업하여 제품 기획, 개발, 금형 생산 등 모든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경험이 많은 제조사였고 베테랑 대표님이 있었기에 기술적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성능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상품의 시장성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시장에는 이미 바디드라이어 제품군은 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지도 모르는 제품군이었다. 그랬기에 처음 이 종목을 진행해보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 투자금을 빌려준 모회사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사실 모회사뿐 아니라 친구들, 주변 지인들도 그 상품이 굳이 필요하겠냐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필요하다 해도 너무 비싸지 않냐는 조심스러운 걱정들이 많이 들려왔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인 것 같은데. 주변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거나 걱정을 하면 그때부터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늘 커지곤 했다.
아직 모두에게 익숙한 컨셉은 아니지만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술력에 있어서는 제조사 대표님을 믿고 우리 팀은 제품의 디자인과 사용성에 중점을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렇게 연초에 시작한 제품은 여름이 다 되어서야 완제품으로 받아볼 수 있었고 디자인부터 성능까지 꽤나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아직 시장에서 익숙하지 않은 이 바디드라이어라는 상품군을 소개하기에 적합한 채널을 고민하다 와디즈 Wadiz를 선택했다. 새로운 상품에 대한 마음이 열려있는 얼리어답터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모여있는 플랫폼이었다. 처음 우리 상품을 맡은 와디즈 PD도 생소한 상품에 대해 난감해했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며 어느 정도로 매출 목표를 하는지 물었다. 나는 와디즈를 통한 첫 판매에서 20억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PD는 농담인 줄 알았겠지만 이내 당찬 내 표정을 보고 그것이 진심이었음을 바로 느꼈던 것 같다;; 당시 소형가전류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한 상품이 18억 정도였다는 PD의 말에 20억을 불렀었다. 런칭 전날까지도 이 바디드라이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에 대해서 예측이 되지 않았다. 늘 마주하게 되는 이 진실의 순간이 가장 쫄리면서도 짜릿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8월 말, 와디즈를 통해 오트루베 에어샤워 의 첫 판매를 시작했다. 딜이 열리자마자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돼 1억 이상 펀딩을 모았다. 담당 PD는 예상보다 빠른 판매 속도를 보며 스타트가 좋다며 격려 메시지를 보내왔고, 우리가 기획한 상품의 가격, 디자인, 소구점들이 시장에서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는 목표 20억을 외쳤던 나에게는 민망한 스코어인 3.9억의 매출을 냈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까지 판매가 될 줄 몰랐다며 축하 연락을 주었고, 내가 목표한 매출까지는 아니었지만 다시 한번 시장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을 기획했음에 행복했다.
일에 있어서는 소기의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어려운 일 년을 보내고 있었다. 회사를 매각하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마음으로 맞은 2019년은 계속해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내게 주었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진화를 멈춰서였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많은 돈을 벌었지만 가장 공허함을 느꼈던 그 일 년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