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류시화
내가 흔히 받는 오해 중 하나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 보인다는 것이다. 나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나는 자기주장이 '매우' 강하고 고집은 지구 행성 최강이다. 하지만 나의 주특기 중 하나는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이다. 세상과 많은 충돌을 겪고 난 후 도달한 경지이다.
나를 볼 때마다 어머니는 내 긴 머리를 두고 성화를 대셨다.
"그 머리 좀 자르면 안 되겠니? 왜 멀쩡한 사람이 감옥에서 나온 것마냥 엉덩이까지 머리를 기르고 다니느냐?"(작가의 모친답게 과장법이 심하시다. 자식이니까 하는 수 없이 '멀쩡한 사람'이라고 하신 것임)
나는 크게 고갯짓을 하며 동의한다.
"맞아요. 그렇지 않아도 미용실에 예약을 해 놨어요. 저도 이젠 머리 짧게 자르고 멀쩡한 사람처럼 살고 싶어요."
어머니 얼굴에 화색이 돌고, 웃으실 때 뽀얀 치아가 보여(틀니이지만) 나도 기분이 좋다.
다음 달에 찾아뵈었을 때 어머니는 내 머리부터 쳐다보고는 기가 막혀 고개를 돌리신다.
내가 얼른 말한다.
"엄마도 알다시피 내가 머리가 빨리 자라잖아요. 저번에 깍두기 머리로 잘랐는데 그새 이렇게 자랐어요."
어머니는 잘못 들었나 보청기를 귓속에 누르며 말하신다.
"말이야 방구야. 짧게 깎은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엉덩이까지 길었단 말이냐?"
나는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말한다.
"그렇잖아도 집에 가는 길에 다시 짧게 자르기로 했어요. 이러다간 머리가 엉덩이를 덮어 말처럼 보이겠어요. 엄마 말씀이 정말 맞아요. 그런데 난 엄마가 담근 깍두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더라. 깍두기 남은 거 없어요?"
그렇게 어머니가 담근 태양계에서 가장 맛있는 깍두기를 얻어 가지고 나오면서 어머니 볼에 입을 맞춰 드리며 말했다.
"이 긴 머리 잘 봐 둬요. 오늘 미용실에 가면 이후로는 머리 긴 아들을 볼 수 없을 테니까."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그래, 잘 가라, 하고 손을 흔드셨다. 그리고 머리 긴 아들을 다시 못 보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나셨다. "왜 자꾸만 머리를 자르라고 성화를 대시느냐?"며 스무 해 동안 대들던 한때의 어리석은 나를 너무도 후회하게 만들면서.
누군가가 나를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면 나는 논쟁적으로 말했었다.
"비현실적인 것이 왜 문제인가? 모든 인간이 현실적이어야 하는가? 그런 세상은 숨 막히지 않겠는가? 현실을 제대로 보려면 현실 밖으로 떠나 봐야 한다."
그렇게 '비현실주의' 학파라도 만들 것처럼 침 튀기는 논쟁이 길었다. 하지만 지금은 격하게 동의하며 말한다.
"당신 말이 맞다. 어젯밤에 나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이젠 나도 정신 차리고 현실적이 되기 위해 회사에 취직하기로 했다."
그럼 그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말린다.
"그건 안 됩니다! 안 어울려요! 작가님은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논쟁은 더 강한 논쟁을 부른다. 삶의 시간을 그런 무의미한 정신적 소모전으로 허비하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자신이 존재 깊이 몰두할 일과 대상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 반응하고 있다.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어선 안 된다. 나아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선동시킨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진영을 나누어 자기편을 감싸고 상대편을 무조건 비난하는 정치적 견해에서 특히 강하다.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분노라는 수렁에 빠진 가짜 지성이 작동한다. 함께 모여 큰 목소리를 내면 그것이 진실이 된다고 혼동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찾아와서 특정 정치인을 거론하며 말한다.
"그분은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는 겁니다. 부정한 일을 전혀 하지 않은 능력 있는 지도자예요. 조작 수사의 희생자입니다. 이럴 때 작가 선생께서 그분에 대한 지지를 해 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나는 그 사람의 손을 와락 잡으며 말했다.
"어쩜 저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시는군요! 그렇지 않아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지지하는 글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하면서 보니까 탈모 증상이 있으시네요. 저도 요즘 머리가 하루에 다섯 가닥씩이나 빠져서 걱정이에요. 이러다가 다음 책 저자 사진은 포토샵으로 만져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적극 동의하고 동병상련의 공감까지 표명한 관계로, 그 사람은 논쟁의 동력을 상실하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일어선다. 나는 더 방해받지 않고 내 글쓰기로 돌아간다. 머리카락 다섯 가닥을 쥐어뜯으며.
『장자』 '제물론'에서 장자는 말한다.
"내가 그대와 논쟁을 한다고 하자. 그대가 이기고 내가 졌다면, 그대는 정말 옳고 나는 정말 틀린 것인가? 내가 이기고 그대가 졌다면, 나는 정말 옳고 그대는 정말 틀린 것인가? 한쪽이 옳으면 다른 쪽은 반드시 틀린 것인가? 둘 다 옳거나 둘 다 틀린 경우는 없을까?"
어리석은 자와 논쟁하면 더 어리석어진다(나의 어머니는 제외).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면 생명에 관련된 일이 아닌 한 열렬히 동의해 줄 일이다. 정말로 그가 옳을 수도 있지 않은가. 또 만약 그가 틀리고 당신이 옳다면 굳이 논쟁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 대신 크게 웃고 난 후 심호흡을 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상대방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은 메시지를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돌아서면 나의 가슴과 의지에 따른다. 이 전략을 나는 계속 실천해 나갈 것이다.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이 누군가와 논쟁한다면 그것은 죽은 자와 논쟁하는 것이다. 누구나 머지않아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논쟁을 끝내고, 삶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신이 존재 깊이 몰입할 창조적인 일을 찾아서.
artwork_Ministry of the Arts
출처: 류시화 시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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