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축구선수로 살아보고 싶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저 그런 선수가 아닌 탑클래스 선수로 살아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들었던 때는 축구선수를 하기에 이미 너무 늦은 나이기도 했다. (물론 일찍 마음먹었다고 이뤄질 일도 아니지만..)
그 미련이 남아서인지 아니면 이 스포츠를 사랑해서인지, 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축구로 설명하면 누군가를 이해시키기에도, 내 감정을 이입하기에도 조금 더 쉽다.
축구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다행히 내가 하는 사업을 통해 나는 팀스포츠를 하고 있다.
스물다섯에 시작한 이 팀스포츠는 축구판과 영락없다.
클럽하우스도 없고 잔디도 없는 흙바닥 경기장에서 시작한 나는, 경기를 치르면서 매 시즌 나를 증명해야 했다. 연봉도 낮고 환경도 좋지 않은 이 팀에 좋은 동료들도 있을 리가 없었지만 불만을 뱉어내기보단 경기장에서 내가 한 발짝 더 뛰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꾸준히 경기를 뛰다 보니 몸값이 올랐고 4년 만에 이적할 기회가 생겼다.
새롭게 이적한 팀에 와보니, 이전보다 좋은 환경에서 수준 높은 동료 선수들과 높은 연봉을 받으며 경기를 뛸 수 있었다. 한 시즌을 같이 뛰고 돌아보니, 내 시즌의 스탯(골과 어시스트)이 이전 시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를 바라보는 관중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한 시즌만에 내가 괴물이 되었던 것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이전보다 월등한 기량을 가진 동료들은 보다 많은 기회를 창출했다. 그들의 기량에 비하면 나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팀과 동료가 나에게 거는 기대치를 어떻게든 맞추려 하다 보니 나는 성장했다. 함께 성장하는 동료들과 더 강한 팀이 되니 자연스레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계속 쌓이는 작은 승리들은 웬만해서는 지지 않겠구나 하는 자신감마저 심어주었다. 승리들은 우리 팀에 재정적인 안정을 주었고, 덕분에 두둑한 연봉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이제는 더 큰 연봉보다 어떤 리그에서 어떤 선수랑 공을 찰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4년을 같은 팀에서 차던 나는 이 리그가 지겨워졌는지 한번 더 이적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클럽하우스도, 경기장 잔디도, 동료들과 관중들의 수준도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팀으로 이적했다. 설레기도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성장해서 더 높은 리그의 팀으로 이적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더 높은 리그에서 월드클래스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보고, 더 강한 상대들을 만나 부딪혀보며 내가 될 수 있는 최고 버전의 나를 만나보고 싶다.
이번 시즌 이강인 선수와 김민재 선수가 프랑스와 독일 각각의 최고 명문 구단으로 이적했다. 월드클래스인 네이마르와 같이 공을 차고 세계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인 반다이크가 먼저 스토리에 담아 올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벌써부터 익숙해져 당연하게까지 느껴지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농담으로도 하기 민망한 이야기들이었다. 최고의 리그와 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리고 승리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래서 한번 사는 인생 상상만 해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느껴보며 살아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내가 축구선수였으면 이미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나이인데, 내가 뛰는 이 팀스포츠에선 아직 내 나이가 한창이다. 축구선수 안 하기를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