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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Oct 24. 2023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2023년 10월

첫날 프라이빗 전시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앉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기쁘면서도 두렵고, 웃음이 나는데 슬펐다. 아쉬우면서도 만족스러웠고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복잡 미묘했던 그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벅차다'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벅차서 흘러넘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구름 틈을 비집고 나오는 빛이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한순간도 같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본 그때를 담고자 만든 캔들워머였다. 그래서 제품에 구름을 담고, 그 구름에서 떨어지는 빛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규칙 없이 반복하도록 만들었다. 자연이 그렇듯이 불규칙하게.


그 불규칙하게 빛이 변하는 것을 프로그래밍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다 출시가 6개월이나 늦어졌다. 그렇게 욕심을 내다보니 원가는 원가대로 높아져, 판매가는 처음에 타겟했던 가격의 몇 배인 23만 9천원이 되었다. 하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의 캔들워머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이름도, 기능도, 가격도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 부여했다. 문제는 이제 이 생소한 제품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할 것이냐였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인만큼 어떻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라는 '사용의 목적' 또는 '사용의 이유' 역시 내가 부여해야 했다. 시제품을 받아와 불규칙한 그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 빛에 집중하기 위해 집 안의 모든 조명을 껐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그렇게 그 일렁이는 빛 앞에서 한참을 보냈다. 그다음 날도 그랬고 그다음 날도 그랬다. 생각을 정리하고 사색이 필요할 때마다 워머 앞에 앉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워머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쓰이기를 바랐다.  


어두운 공간, 불규칙적인 빛의 움직임, 그리고 음악. 그 환경에서 사람들이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느껴보길 원했다. 그래서 실버라이닝 워머의 런칭은 '이렇게 사용해 보세요'를 담은 전시의 형태로 잡았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공간은 40여 년간 라디오 디제이로 활동하셨고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황인용 님의 카메라타였다. 클래식한 음악감상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수준 높은 공간인 카메라타가 제격이라 생각했다. 즉시 섬세이팀에서 전시기획을 카메라타에 연락하여 전했고 방향에 대해 논의하던 중에, 나는 전시를 통한 마케팅 방식에 대해 여준영 대표님께도 공유했다.


여 대표님 게스트들에게 제공할 프레인버전 오렌지색 워머


내가 프레인에 섬세이를 매각한 이유인, 프레인과 여준영 대표님이 가진 자산들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방향에서 카메라타 이전에 프레인빌라에서 워머의 출시를 먼저 알리기로 정했다. 날짜를 10월 13일-15일로 정하고 마케터 한 명과 디자이너 한 명으로 구성한 팀에서 기획을 시작했다. '어두운 공간, 불규칙적인 빛, 그리고 음악'이라는 키워드와 전시 타이틀인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만 내가 정해 팀에 전했고, 나머지는 팀에게 모든 기획을 맡겼다.


전시의 날짜는 다가오는데, 중간중간 팀에서 오는 업데이트는 전시장의 오브제와 구성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전시 시작 일주일을 남긴 쯤에, 조금씩 느껴지는 불안함에 여준영 대표님의 게스트들 초대와 전시 이후에 활용할 전시 스케치 영상에 대해 물었더니, 전혀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시기획을 맡은 두 멤버도 전시를 준비해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전체를 고려하지 못했다며 솔직하게 말했다. 책망하고 탓할 시간조차 없었다. 전시기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회사의 모든 멤버들이 투입되어 일을 나눴다.


결국 여준영 대표님과 나의 게스트들에게 전시를 3일 앞두고서야 초대장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초대받은 어떤 분들이 프라이빗 전시였던 첫날에 오실 수 있는지를 바로 전날 밤에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RSVP에 답을 주신 분들 중에 매거진 B를 만든 조수용 대표님 이름이 있었다. 그 외에도 리스트에는 비디오 아티스트, 디자인 잡지 편집장 등 브랜딩과 디자인을 업으로 하고 있는 분들의 이름들이 올라와 있었다. 물론 모두 여준영 대표님의 초대였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나는 그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내 제품을 소개해보겠다고 그들을 초대했던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나는 큰 키워드만을 팀에 던진 후, 전시 공간의 디테일들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아찔했다. 전시의 오브제들과 리플릿이 전시 오픈 당일 아침까지 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전시의 최종모습은 당일에야 볼 수 있었다. 첫날 프라이빗 전시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에 먼저 도착했다. 아직도 시트 작업이 한창이었다. 언뜻 본 오브제들은 걱정에 비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메인 전시 공간과 리셉션 사이의 전이 공간이 따로 없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커튼을 달아야겠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전시장으로 향하던 팀장에게 이마트에 들려 커튼봉과 커튼을 구매해오라 요청했고, 팀장이 도착하여 부랴부랴 달고나니 전시 시작 10분 전이었다. 나는 관람객들이 들어올 동선을 처음부터 똑같이 밟아보며 메인 전시공간까지 들어와 오브제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았다.



그제서야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공간에 구름을 형상화 한 오브제가 천천히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불규칙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그 변화가 미세해서 자세히 보고 있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 그 빛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멍하니 보고 있자니, 오전 내내 부유했던 불안함과 걱정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여준영 대표님 소장품인 빈티지 체어들이 메인 오브제를 중심으로 놓여져 있었다. 우리가 표현하고 싶었던 자연의 불규칙하고 비정형한 모습마냥, 제각기 다른 모양의 빈티지 체어가 놓여져 있었다. 이 의자에 앉아보기도, 저 의자에 앉아보기도 했다. 오브제를 바라보게 되는 각도도, 음악이 들리는 소리의 크기도, 의자의 모양만큼 한번도 같지 않은 내 앉은 자세도 좋았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여준영 대표님이 직접 셀렉해 주신 플레이리스트였다. 올해 방문한 출장지에서 실버라이닝 워머를 켜고 들었으면 좋았을 노래를 도시별로 구성해 주셨다. 스톡홀름, 코펜하겐, 오사카, 암스테르담, 칸, 헬싱키, 도쿄,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부산까지. 음악이 넘어갈 때마다 어떤 도시에서 사색하며 들으셨을 노래였을지를 떠올려보는 것도 전시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여준영 대표님이 직접 써주신 플레이리스트를 고른 이유
전시장에 흘러나왔던 플레이리스트


전시를 준비한 프레인빌라 지하 공간은 층고가 높고 어두워 마치 동굴 같아, 워머와 오브제들의 빛을 표현하는데 더할 나위 없었다. 메인 전시장 전체를 감싸는 스피커 시스템마저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 팀에서 기획한 전시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한참을 앉아있다가 나오면서 '전시 너무 좋았다'라고 말할 정도의 수준으로 준비된 전시로 느껴졌다.



여준영 대표님과 내가 초대한 게스트들이 한 분씩 오시기 시작했다. 여 대표님 게스트 중에는 내가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조수용 대표님 뿐이었는데 2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셨다. 모자를 쓰고 혼자 오셔서 전시 메인 공간으로 들어가셨다. 모습이 모두 다른 의자 중에 어떤 의자를 선택하실지도 궁금했고, 전시는 어떤 모습으로 감상하실지도 궁금하여 몇 분 뒤에 조용히 따라 들어가 보았다. 빈티지 체어 중에 가장 작아 보였던 의자에 앉아 차분한 모습으로 감상하고 계셨다. 먼저 나와 리셉션에서 다른 게스트들을 안내하다 보니, 조수용 대표님이 짧지 않은 시간 메인 공간에 계시다가 나오셨다. 다가가 인사를 드리며 내 소개를 했고,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배웅을 드렸다.   


가장 작은 의자를 골라 앉으셨던 조수용 대표님


12시부터 시작한 프라이빗 전시는 8시가 되어 마무리 됐다. 전시 시작 10분 전에 내가 밟아 보았던 그 동선대로 많은 게스트들이 다녀갔다. 전시 공간이 넓거나, 감상할 수 있는 오브제가 많은 전시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준비한 것은 얕지 않았다. 감도가 높은 게스트들이 찾아주셨음에도 위축되었기보다는 더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했음에 오히려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얼떨떨했다. 이 정도 수준의 링에 오를 생각은 아직 없었다. 헌데 정신 차려보니 나는 이미 그 링 위에 서 있었다. 내 자신의 의지라면 오르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나보다 몇 단계는 높은 수준의 선수들이 뛰는 링 위였다. 조금만 더 준비가 되면 올라가 볼게. 조금만 더 실력이 쌓이면 올라가 볼게. 라며 한참을 미뤘을 그곳에 내가 서 있었다. 이긴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그 무대 위에 서 있는 자체가 나를 희열케 했다.

'잘했다'가 아니라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터져 나와 감사했다.


이 전시를 위해 한 달 가까이 밤낮없이 기획하고 만들고 준비한 직원들이

이 전시를 위해 수준이 높은 분들을 게스트로 초대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여준영 대표님이

이 전시를 위해 기꺼이 참석해 나의 모험을 응원해 준 나의 사람들이

나에게 겨우 이 정도로만 살다가 가려고 했던거냐며 묻는 것만 같았다.

결국 내 의지가 아니라, 그들이 나를 무대 위로 올렸다.


전시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앉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기쁘면서도 두렵고, 웃음이 나는데 슬펐다. 아쉬우면서도 만족스러웠고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복잡 미묘했던 그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벅차다'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벅차서 흘러넘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제껏 살아온 나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어 그렇게 흘러서 넘쳐버린 것들을 보며,

더 나은 내가 되어볼 수 있는 기회가 왔음을 직감하고 느껴진 감사함이,

그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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