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nhyuk kim Nov 20. 2017

존엄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를 읽고

이용마 해직기자의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표지. 

처음 이 책을 펼치면 당신은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권으로부터 공영방송을 지키다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 어느 해직기자의 화려한 무용담을 기대한다면 말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이 책의 풀네임은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이다. '세상', '바꾸다', 'MBC', '뉴스'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에 비해 책 내용 자체는 소박한 편이다. 


저자가 이 책을 엮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으로부터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라날 두 아이에게 자신의 삶을 들려주겠노라는 다짐 말이다. 전라북도 남원의 어느 시골 농가에서의 출생, 집안이 어려웠던 탓에 사진 한장 변변히 남아 있지 않은 유년시절, 명석했지만 촌지를 내야 할까 두려워 반장을 하지 못했던 학창시절, 뭔지도 모르고 선배들을 따라갔던 운동권 당시의 이야기까지. 


우리가 짐작할 만한 시기로 넘어오면 그의 이야기는 좀 더 다채로워진다. 경찰서를 전전하던 신입 기자에서 부서를 넘나들며 쌓았던 실력과 신념으로 어느덧 중견 기자가 된 그. 그리고 너무나 길었던, 어쩌면 그의 아픔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파업과 해직의 시작.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데 가장 앞장 섰던 그이기에 시대의 폭력 또한 가장 먼저 맞았던 게 아닐까.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의 삶이 그렇듯이 이용마 기자의 삶 또한 험준했던 한국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그가 기자로서 겪었고 또 느꼈던 한국 사회의 만연한 문제들, 그는 거기에 자신만의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데 읽는 입장에서 그저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다만, 그가 저서 말미에 정권과 결탁한 검찰 및 언론, 제동 없이 폭주하는 '동물' 국회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한 '식물' 국회를 비판하며 대안으로 제시한 '국민대리인단' 제도에 대해서는 조금 생소한 탓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지지만 그의 정치적 상상력만으로도 우리는 무엇이 옳은 사회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니 그저 고마운 일이다. 그의 고민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다.


그의 삶을 규정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는 '공부'다. 단순한 학습이 아니라 삶과 배움과 실천이 하나가 되는 진짜 '공부.' 정치와 외교, 경제를 문턱없이 넘나드는 그의 방대한 지식 앞에선 아직 학업을 진행하고 있는 학생 입장에서 가슴 깊은 곳까지 부끄러워진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 우리 사회에 대해 공부하고자 했던 진짜 기자였다.


그런 그를 방송이 아니라 책으로 접해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울어야 할까 웃어야 할까. 공영 방송이 병들어 가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한 때 공영 방송이 뭐가 필요하겠냐는 조소 섞인 말들이 오간 일들을 기억한다. 이미 다른 방송사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자 동료인 그들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좋은 친구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해직 기자가 기자일 수 있는 이유는 언론인의 자격 중 하나가 직업이 아니라 소명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한 사람의 생애를 경유해 공영 방송과 한국 사회로까지 고민의 폭을 넓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자신과 사회에 치열했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이제는 알겠다. 사람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그리고 자신을 바꾸면 사회도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그의 삶을 통해 비로소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알겠다. 


둘이 같다면 좋겠지만 건강함과 강건함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안팎으로 밀려드는 병해와 폭력에 우리는 건강함을 잃을 순 있지만 존엄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강건하다. 우리 사회의 공영 방송이 그렇다. 그리고. 이용마 기자님, 강건하십시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수한 속물의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