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서평가 금정연의 <아무튼, 택시>를 읽고서
택시보다 ‘인간 금정연’이 더 전면에 나오는 에세이. 한 가지 주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는 아무튼 시리즈의 장점이 양날의 검으로 변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가령 “뭐야, 이건 그냥 ‘아무튼, 금정연’이잖아?” 라던가.)
에세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택시’라는 주제에 대한 얘기는 적고 대신 그때 당시 택시를 타면서 떠올렸던 생각이 더 자주 등장한다. 택시 얘기를 하다가 문학과 문단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다시 택시로 돌아와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고, 택시에서 내리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그런 책. 조금은 아쉽다. 택시라는 이동수단에 대해 써야 하는 저자의 핸디캡일지도.
그렇다고 저자가 택시에 대해 얘기할 자격이 없다거나 글이 별로라거나 그런 뜻은 아니다. 그 모든 서술이 진짜라면 이토록 택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조금 신기할 정도니까. 택시 일지라는 걸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몇몇 일화들은 강하게 뇌리에 남을 만큼 시종일관 유쾌하고 흡입력 있다. 인생을 달관한 듯 마구 일화를 털어놓다가 이내 처연해지는 자조와 자기 희화화 유머 코드는 딱 내 취향이다. 특히, 저자가 밝혔듯이 잦은 말줄임표의 사용은 이 책의 백미다.
정지돈 작가와의 일화가 종종 등장하는데 어디선가 짧게 접한 정지돈 작가의 에세이와 스타일이 유사하다. 문학과 예술에 대해 시큰둥한 척하면서도 정작 그런 거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의 향기가 난다. 이 인간들이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 건지 관심이 생겼다. 정지돈 작가의 에세이도 찾아 읽어봐야지.
이 말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이 책의 장점 아닌 장점이라면 ‘어른인 내가 내 돈으로 택시를 매일 타겠다는 데 뭐가 문제냐’는 저자의 당당함에 설득당해 택시 소비를 정당화하게 된다는 점이다.(이 책을 뱅크샐러드가 싫어합니다.)
택시를 자주 이용하지만 탑승 자체를 즐거워하지는 않는 편이다(유쾌하지 않았던 몇 번의 경험이 나쁘지 않았던 절대다수의 경험을 압도한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나면 확실히 도로 위를 달리는 택시들이 더 이상 예전처럼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저 많은 택시들 속의 운전사들 하며 저 택시를 타고 분주히 어디론가 이동하는 사람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결국 택시에 몸을 싣는 것도 택시를 모는 것도 사람이니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되레 정확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위의 평가를 정정한다. 좋든 싫든 어디론가 향하는 우리의 오늘은 아무튼, 택시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