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키 Sep 30. 2019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불안함은 덤으로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아무 문제도 없었고, 나가라고 등 떠미는 사람도 없었지만 10년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날 결심을 했다. 회사는 10대 그룹에 속한 대기업이었다. '너 왜 그러냐'며 잡아주는 선배와 상사가 있었고, '회사에서 학교도 보내주고 미국도 보내줬는데 그러면 되겠냐'면서 배신자로 낙인찍는 사람도 있었다. 덕분에 호기로운 패기가 쪼그라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나왔다. 진작에 던진 사직서였지만 나의 결재라인에 있는 상사들은 그 종이 쪼가리 한 장을 볼 때마다 피하거나 큰소리로 나를 쫓아냈다. 하지만 이미 떠난 마음인걸. 극진한 정성을 담은 사표 수리 삼고초려 끝에 9월 1일 사직서에 사인을 받고(사인과 함께 작별인사로 똥씹을 선물 해줌) 9월 1일 새 직장으로 달려갔다. 


이때는 고생길이 열릴 줄 몰랐겠지


정규 직원만 2만 명이 넘는 회사를 다니다 새로 둥지를 튼 곳은 직원이 30명도 채 되지 않는 스타트업 지원기관이었다. 연봉이 많아진 것도 아니었고, 빵빵한 복리후생도 전혀 없었다. 연차와 월차, 여름휴가를 합쳐 한해에만 30일이 훌쩍 넘는 휴가를 사용할 수 있던 배짱이 신세도 끝이었다. 


자연히 아내의 심정적 지지와 현실적 핀잔을 함께 마주해야 했다. 나 역시 손에 쥔 것을 놓고 낯설고 새로운 것을 잡는 마음이 불안했는데, 그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나는 여러 이유로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심을 했고, 그걸 단번에 실행에 옮겼다. 적어도 내가 몸 담았던 회사는 절대 개인을 지켜주지 않으며, 그곳에서는 일과 성과보다는 처세술과 진짜 '술'이 더 효과적인 성공방정식이라는 것을 점차 인지하게 되었고, 급격하게 성장하는 회사를 함께 키우며 나 역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던 마음이 당시의 결심을 만들어 냈다. 


지원기관에서의 2년 반은 온통 새로움과 낯섦 투성이었다. 10년을 일하며 쌓아온 인맥과 기술은 아주 결정적이었던 순간 몇 번을 제외하면 일상의 업무에서는 크게 빛을 내지 못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사람, 문화, 산업, 환경 모든 것이 새로웠고 이것들에 내 몸과 정신을 맞추다 보니 일 년이 훌쩍 지나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이전의 필드에서 멀찍이 구경만 해왔던 전혀 다른 사람들과 기회들을 가까이서 보고 느끼게 되었다. 바로 스타트업과 창업가, 투자자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생태계이다. 


그 생태계에서 창업자들은 그들이 설립한 회사의 사업모델과 솔루션으로 삶의 불편함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 52시간 따위는 상관없이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간다. 그러한 그들은 패기와 열정, 체력은 있지만 자원과 자본이 부족해 회사의 지분과 투자자의 투자금을 교환해 그것을 연료 삼아 더 앞으로 달려가고, 여러 기관의 자금을 받아 벤처 펀드를 운영하는 투자자는 10배, 20배의 수익을 위해 그들의 투자금을 받은 창업자들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성공의 확률이 높지 않고, 또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스타트업이라는 작은 기업의 성장과 성공은 의외로 이 사회와 우리 삶, 그리고 산업에 큰 변화를 준다. (물론 그들의 사업이 여러 시비에 휘말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득권과의 싸움, 이해당사자간의 문제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직방, 쿠팡 역시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창업자와 많은 직원들의 땀방울 그리고 자본이 만나 삶을 편하고 빠르게 바꿔놓은 대표적인 예다. 창업자가 다르고 사업 모델이 다른 만큼 성공의 과정에도 차이가 있지만, 어쩌면 2010년을 지난 이 시대에서 기업이 성장하고 높은 부가가치를 통해 큰 이익을 얻는 방식은 결국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문제 발견, 빠른 검증, 투자, 폭발적 확장, 시장 장악, 끝으로 엑싯.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제품과 서비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과 편리함을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과 빠른 실천이 결국 이 산업의 지배자가 되는 길이다. 이런 변화와 그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내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점점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번째 직장을 선택하게 되었다. 


선택지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해온 것들은 조금 심화시킬 있는 곳, 이전보다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을 목적지로 삼았다. 그러면서 나의 불안함이 조금 더 커졌지만, 불안함이 커진만큼 기대와 흥미도 함께 커졌으니 다시 한번 열심히 달려볼 계획이다. 


이렇게 진짜 스타트업에서 나의 세번째 직장 생활이 진행되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