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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하는마케터 Dec 14. 2020

2호선 신입기관사를 위한 따뜻한 말 한마디

"오늘 운전은 신입기관사이니 미숙해도 많은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운전은 신입 기관사이니 정차 지점이 미숙해도 많은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 역에서 여러 번 정차 지점을 수정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후 거의 매 정차하는 역마다 선임 기관사가 직접 안내멘트를 해주었다. 반복해서 안내멘트 듣다 보니 '신입'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하게 됐다. '신입'은 여행을 위해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처럼 두려우면서 묘하게 설레는 단어이다. 정차 지점을 수정하는 시간 동안 그 신입 기관사에게 감정 이입을 하기 시작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얼마나 떨릴까?', '본인의 미숙한 정차 실력으로 지하철에 탑승한 수백 명의 출퇴근 시간 지체된다면 어떡할까?', '앞 뒤차 간격이 본인 때문에 지연된다면 어떡할까?' 만약 나라면, 등에 식은땀부터 날 것만 같았다. 동시에 첫 운전에서 양쪽 차선, 정지 신호를 못 맞출까 봐 떨었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이 미숙함을 이해하고, 속으로 응원까지 하게 되었다. '제발 이번역에서는 잘 멈추길 그리고 얼른 익숙해지길'


물론 내 주변에는 처음부터 떨지 않고 대담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보면 항상 부러웠고 흉내 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처음은 항상 초조하고 떨렸다. 그럴수록 더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했지만, 모든 발표 때마다 숨기고 싶은 내 다리의 진동처럼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게 처음은 설렘보다 두려움이 먼저였다. 두려움이 사라져야 설렘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이 두려운 이유는 단순했다. '누군가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될까 봐'였다. 살면서 남의 장점을 보기보다 남의 단점이나 미숙한 점을 흉보는 게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는 미숙함을 두 팔 벌려 반기지 않는다.  


분명한 건 그렇다고 처음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날의 신입 기관사처럼 처음의 순간이 있다. 올해 역시 내게 많은 '처음'이 있었다. 첫 회사, 첫 월급, 무지개다리를 건넌 희눈이 와 첫 이별, 첫 전세계약 등 많은 처음이 함께 했다. 많이 두려웠고 힘든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처음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생각해봤다. 처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마다, 어떤 명언보다 큰 힘이 된 건 선임 기관사의 말 한마디처럼 주변 사람들의 따뜻하고 단순한 말이었다. "오늘도 수고했어", "너무 잘하고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이런 말들이 내게 그 어떤 명언보다 나를 안심시켰다. 그게 내 처음과 밀접하게 관계된 사람일수록 그 말은 더 큰 힘이 됐다. 이런 말 한마디로 나는 더 잘할 수 있었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었다.


아마 그 날의 신입 기관사는 선임 기관사의 말 한마디에 많은 위로와 용기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능숙한 선임 기관사가 되어 후임 기관사를 위해 같은 멘트를 해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적어도 누군가 내 옆에서 저런 말 한마디를 해준다면, 나는 큰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수많은 처음을 경험하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결국 내게 처음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안고 가야 하는 것이었으며, 주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처음이 두려움에서 설렘으로 바뀌는 데 큰 역할 하고 있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진짜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만큼 시작에는 '처음의 두려움'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 걱정하지 말자 일이 일어나고 걱정해도 늦지 않는다' 요즘 내게 묘하게 힘이 되고 공감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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