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수와 자존감은 비례한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외로운 새벽 감성은 시간의 제약 없이 불쑥 찾아온다.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돌이켜보면 결국 '나 지금 잘하고 있나?'로 귀결된다. 보통은 답을 내지 못한 채 고민의 시간만 길어진다. 그 긴 시간 속을 헤매다 보면 마치 야생 정글에서 상위 포식자를 피해 도망치는 초식동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여기서 고민의 주제는 넓게 보면 내 삶에 관한 것이지만, 최근에는 주로 업무 및 경력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능력이 경쟁력이 되고 그 경쟁력이 내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런 고민은 너무 당연한 직장인의 고민이 아닐까 싶다.
과거 나는 자존감을 키워주는 가장 빠른 길이 인정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삶은 타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집에서는 부모님,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받는 인정이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또 인정은 보통 칭찬을 동반하는데 이런 칭찬은 일시적으로 내 자존감을 키워주는 역할을 했다. 칭찬은 일시적이지만 달콤해서, 칭찬을 쫒다가 자신 없는 분야에도 뛰어드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인정 욕구를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그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낼 수 없었고, 점차 내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건 분명 잘못된 방향임을 느끼게 되었다.
이를 제대로 실감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에게 커리어에 관한 상담 아닌 상담을 하는 날이었다. 부모님은 내 생각을 다 듣고는 '네가 생각했을 때 단 1%라도 좀 더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면 좋겠어'라고 하셨다. 조금은 더 현실적인 답변을 기대한 나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온전히 내가 신뢰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과에 대한 인정보다 내 선택에 대한 신뢰가 더 큰 힘이 되었다.
인정을 쫒게 되면 척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안돼도 되는 척, 돼도 안 되는 척.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변명과 핑계만 쌓이게 된다. '척'도 일종의 거짓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정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방향으로 행동했다. 신뢰를 쫒게 되면 그 믿을을 깨지 않기 위해서 편법보다는 정공법을 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척이 아닌 진심으로 행동하게 되고, 그 진심이 통하는 대상이 나타난다면 신뢰가 싹트기 때문이다.
약간의 빈틈도 보여주기 싫은 것이 인정이라면, 어느 정도 빈틈을 허용할 수 있는 게 신뢰가 아닐까. 내가 빈틈을 허용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진다면 자연스럽게 내 자존감도 보다 단단해질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