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라는

모두의 공간이 개인의 장소가 되기까지

by 개발하는마케터

2017년 7월의 여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란,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독교 순례길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가 프랑스 길이다. 프랑스 남부 생장이라는 도시부터 시작하여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약 800KM 행로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유럽 국가뿐 만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종교적인 이유와 관련 없이 자기 수양의 목적을 가지고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그러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접한 것은 5년 전 동네 카페 책장이었다. 책의 이름도 내용도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산티아고라는 명칭 하나만큼은 머릿속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냥 언젠가 준비가 되면 막연히 갈 것 같았다. 아직도 그때 생각한 '준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산티아고를 가기로 결심한 순간에는 난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돌이켜보면, 준비라는 것이 나의 결심에 대한 확신쯤으로 여긴 것 같다.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하고 떠나게 되었다. 5년이라는 시간은 나의 확신을 확인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무엇을 느끼고자 하는 강박관념은 떨쳐내고 떠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 의식적인 노력을 했다. 예를 들면 산티아고 관련 서적들은 일체 보지 않았다. 또한 그곳에서 필요한 생존을 위한 정보가 아니라면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그들이 느낀 것을 그대로 나의 느낌인 마냥 착각하게 될 것 같았다. 그 길이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길이 아닌 나만의, 나의 첫 번째 길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산티아고를 떠나기 며칠 전, 산티아고를 다녀온 친구가 해준 말이 여행을 준비하는 나의 부푼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니 가봤자 별거 없어. 대체 왜 가려고 하는 거야. 걷는 거 좋아하면 한국에도 국토 대장정이 있잖아." 그 친구는 그곳에서 특별한 것을 못 찾았다고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산티아고를 가려고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해준 말이라 생각된다. 떠나기 전 나는 나의 결심에 대한 확신이 가득 차 있었고 다녀온 후 지금까지도 그 확신은 진짜였다




길 위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오는 만큼 이 길을 선택한 이유도 다양했다. 정말 온전히 자신을 위해 온 사람도 있는 반면, 군대에 있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을 잊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애인과 이별하여 그 아픔을 잊기 위해, 누군가는 인생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신혼여행으로, 누군가는 목발을 짚고, 모두 각자의 개인 사정이 있고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가 분명했다.(적어도 내가 걸으면서 만났던 친구들은 그랬다.)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모두 완주라는 목표를 갖고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고된 행로를 이어갔다. 하루는 순례길 위에서 만난 친구가 나에게 가볍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이 질문을 듣고 한동안 대답할 수 없었다. 몇 분뒤 어설프게 대답을 했지만 마음에 드는 답변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이러한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나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찾기보다는 내가 이루고 싶은 단기적인 목표만 추구하며 살아왔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가 나의 인생의 목적인 마냥 살아왔다. 목표와 목적은 다르다. 목표는 비교적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목적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이고 삶이 끝날 때까지 품고 가는 신념 같은 것이다. 가볍게 던져진 저 질문이 마치 "단기적인 목표가 아닌 너의 삶의 목적이 뭐야?" 하고 물어보는 것만 같았다. 간단하고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반드시 자신의 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순례길 위에서 이것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그 이후, 내가 하는 말과 행동 더 나아가 나의 사고방식을 하나씩 끄집어내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 그럴싸한 답을 찾았다.


"균형 잡힌 시각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뻔한 대답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낯설고 불편한 것들과의 부딪침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이해하고 정복해 나갈 때마다 느껴지는 성취감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산티아고를 선택한 이유도 낯설고 무서웠지만 꼭 도전해보고 싶어서 였다.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 무엇일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철저하게 나를 믿고 하는 여행, 모든 루트도 그날 그날 상황에 맞게 대응해야 하는 여행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지만 말 그대로 정보일 뿐이었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었고 그 선택에 따른 즉각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곳이다. 이처럼 낯섦에 대한 접촉이 나를 새로운 세상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하지만 진정한 균형 잡힌 시각을 지니기 위해서는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날카로운 감수성이 필수적이다. 인권이나 페미니즘에 관한 인권 감수성이나 젠더 감수성이 예가 될 수 있겠다. 치열하고 바쁜 일상에서 이러한 것에 대한 감수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쏟아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무수히 많은 경험을 직, 간접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편견과 선입견에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개인.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부터 균형 잡힌 시각을 지니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전부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진리라고 여긴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어렵다. 지속적으로 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 안에서 나만의 균형을 잡는 것이 나의 인생의 목적이었다.

같이 길을 걸었던 친구에게 받은 사진

순례길은 분명히 육체적으로는 고된 행로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정신만큼은 건강해졌다. 그때처럼 단순한 하루와 철저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다. 분명 자의식이 발달하고 난 이후 처음이었다. 그 길 위에서는 당장 내일의 계획을, 일주일의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하루하루 나에게 충실하면 된다. '내 몸의 소리의 귀를 기울이고 무리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곳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철칙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 후 파생되는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다. 누군가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땠어?"라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준비가 되면 떠나라고, 깊이 고민해 보고 그 길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떠나라고, 그리고 가능하면 혼자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누구든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다양한 경험, 생각들이 그 공간을 특별한 나만의 장소로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