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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킬로미터 1박 2일 국내 여행 #3

퇴사자의 사진 여행 : 경주-창원-대구-강릉-양양 편 세 번째.

by 차돌


IMG_5986.JPG 이렇게 한 바가지 막창이 옛날에는 몇 천원? 했다던 배 형의 코멘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렴한 편이었다


대구 안지랑 곱창골목의 대표 곱창집으로 갔다. 현지에 거주하는 분의 소개를 받았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내 친구 초이 녀석은 이번 일정에서도 기어코 대구에 사는 '친한 형'에게 연락해서 셋이서 술을 먹었던 거다. 돌이켜 보면 대학 때부터 녀석이 기분 좋게 불러서 합석한 사람들과 술 한 잔 기울인 적이 참으로 많았다.


나 역시 이 사람 저 사람 함께 만나고 또 섞이는 걸 좋아한다만 도저히 초이는 따라갈 수가 없다. 술은 더더욱 녀석을 못 이긴다. 가끔 보면 사람도 주량과 주종을 닮아 가는 것 같다. 누구나 주량에 한계가 있고 가리는 주종도 다르지만 개인의 타고난 몸(건강, 체력)과 마음(의지, 선호)에 따른 차이는 세월이 흐를수록 벌어지는 것이다.

예각의 꼭지만 놓고 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선을 주욱 그어놓으면 사이가 꽤 멀어지는 것처럼.


초이 녀석은 요새도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느라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니는데 반해, 나는 예전에 비하면 술자리는 급격히 줄었고(줄였거나) 이제는 혼자 다니는 게 좋을 때가 더 많다. 덕분에 초이는 10년 전보다 꽤나 뚱뚱한 아재가 되었고 난 10년 전보다는 오히려 건장해졌으나, 마음의 넉넉함까지 그와 같다고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자기 좋을 대로 잘 살다가 가끔 만나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자랑도 하고 푸념도 하는 일, 이게 바로 서른 중반의 우정 여행을 돌이키며 새삼 곱씹어 보는 친구에 대한 정의다. 블라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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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맥 페스티벌에서 맥주를 꽤 마신 데다 막창을 곁들여 소주를 훌렁훌렁 털어 넣다 보니 일찌감치 취기가 올랐다. 그럼에도 초이는 역시 3차로 자기가 아는 분위기 좋은 포차에 가자고 우리를 이끌었는데 이런. 그 가게는 자취를 감추고 주위는 온통 불 꺼진 건물들만 가득한 골목인 거였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씩을 더 사서 먹었는지는 열흘도 더 지나고 나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분명히 오래된 동네 골목을 걸으며 밤공기를 쐰 기억은 있는데 술은 더 먹었는지 아닌지가 헷갈리는 거다. 큰일이다. 술꾼 초이 녀석이나 나나 기억력에는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이럴 거면 술을 더 먹으면서 사는 게 낫지 싶다.


아무튼 치맥 축제에서 나와서는 별 거 안 하고 술이나 먹긴 했지만 크게 아쉬울 건 없었다. 지금 세 편이나 나눠서 쓰고 있어서 그렇지 고작 1박이었단 말이다. 게다가 뜨거운 볕을 쬐면서 남쪽 지방을 종횡무진 돌아다녔던 뒤라 우리는 피로를 풀기 위해 일찍 모텔로 돌아가서 잠을 청했다. 코를 심하게 고는 초이였지만 난 새벽에 딱 한 번쯤만 깼던 것 같다. 술을 먹었기 때문에 나까지 코를 곯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 떠나서, 친구놈이랑 모텔에서 같이 자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기에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IMG_5999.JPG 안동 휴게소 간고등어 정식(9천 원)


드디어 둘째 날 아침, 우리는 일찌감치 대구를 떠나 강릉으로 향했다.

중앙 고속도로를 타고 쭈욱 가다가 허기질 무렵 마침 안동 휴게소가 나타났다. 요새 한창 주가가 높은 영자 누님이 추천한 고속도로 휴게소 맛집 리스트 중의 하나로, '안동 간고등어 정식'이 유명한 곳이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그 메뉴를 먹고 있었다. 혹시 모르는 이들이 있을까 염려가 됐는지 주문 카운터에는 이영자의 추천 메뉴라는 작은 팝업 배너가 친절하게 놓여 있었다. 이 정도인데 다른 메뉴를 시키는 건 굉장한 주관을 지닌 사람일 게다. 나보다는 초이가 더 그런 편이지만 녀석이 주차를 할 동안 내가 먼저 도착해서 그냥 간고등어 정식 두 개를 시켜버렸다. 결과적으로 둘이서 짭조름한 고등어만 먹자니 다른 메뉴 하나가 아쉬웠으나 그런대로 의미 있는 식사였다. 요새 휴게소 먹거리들만큼 미디어의 여전한 영향력을 증명하는 것도 없으니, 이럴 땐 남들 다 하는 대로 따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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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물을 마시며 입 안에 남은 간고등어의 짠 기운을 없앴을 무렵에는 어느새 강릉에 도착해 있었다. 경북에서 강원으로 이동했다는 사실보다는 바닷 바람의 짠내가 우선 인상적이었다. 첫 촬영 장소는 강릉 주문진 수산시장에 위치한 곳이었다. 구경할 여유까지는 없어서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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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 채 방문했는데, 확실히 특이하긴 했다. 수산시장 건물 2층에 위치한 '커피 테마파크' 라니. 이색카페 겸 힐링카페 겸 트릭아트를 한 장소에서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횟집들을 지나서 가려니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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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공간은 밖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넓고 쾌적했다. 덕분에 초이가 촬영하는 동안 나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애초에 노트북까지 챙겨서 녀석이 일하는 동안 나도 작업을 하려던(하다못해 이 여행기라도 쓰려던) 생각은 전 날 이미 사라졌고, 새로운 장소에 가면 호기심을 느끼기에 바쁜 나였다.


IMG_6016.JPG 트릭아트 속 인물 둘, 아니 셋.


아무도 없는 트릭아트 공간을 휙 둘러보고,


IMG_6024.JPG 여친에게 초이랑 젤라또 같이 먹는다고 인증하느라 한 컷.


촬영용으로 제공된 후 우리에게 주어진 젤라또와 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여유도 부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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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소는 양양이었기 때문에 강릉 바다는 공영주차장 기둥 너머로만 잠시 확인하고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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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야, 양양에서 어디 간다고?
(초이) 서피비치
(나) 오 진짜? 거기 나 작년에 갔던 덴데!
(초이) 그래?
(나) 그래 인마, 내가 왜 작년에 서핑 다녀와서 같이 가도 좋겠다고 했잖아.
(초이) 그랬나?


나도 뭐 여기저기에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한 건 사실이지만, 초이 녀석도 여기저기서 같이 가면 좋겠단 얘기를 들어서인지 이렇게 기억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역시 인간관계에서 호의는 준 사람만 기억하고 상처는 받은 사람만 기억하는 법인가 보다. 이 경우엔 사실 호의나 상처 둘 다 아니었으나 그냥 그렇단 얘기다.


https://blog.naver.com/hyuksnote/221065410738


양양의 서핑 장소로 유명한 서피비치는 작년 7월 말에 방문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브런치가 아닌 블로그에만 간략히 여행기를 올렸기 때문에 해당 링크를 첨부한다(서핑 입문용). 아무튼 다녀와서는 주위에 강력히 추천할 만큼 좋았던 바닷가였으므로 1년 만에 우연히 다시 찾게 되어 더욱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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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가 높아진 덕분인지 작년에 비해서도 눈에 띄게 달라진 서피비치였다. 팻말도 많이 생겼고 공간도 더 넓어져 있었다. 날이 워낙 덥고 볕도 뜨거운 평일이라 사람이 없지 않을까 했으나 내가 있는 동안에도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늘었다. 심지어 서핑 강습 중인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edit_IMG_6041.JPG 아웃포커싱의 좋은 예

뜨거운 해변에서 무거운 장비를 들고도 초이는 불평 한 마디 없이 곳곳을 촬영하고 다녔다. 내 예상보다 일하는 자세가 프로페셔널해서 보기 좋았다. 이마(와 그 너머 뒷머리까지)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인상을 쓰고 있는 녀석의 두상이 예쁘고도 험악했다. 짙은 선글라스에도 불구하고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는, 햇살이 너무나도 눈부신 양양 해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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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만큼은 나도 촬영자를 따라서 계속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나마 해먹에 홀로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문득 나 혼자서라도 여기 하루 더 머물며 서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바다를 봤더니 서핑에 좋을 만큼의 파도는 충분치 않았다. 작년에도 강습에는 나쁘지 않았으나 자유롭게 서핑을 하기에는 아쉬웠던 기억이 났다. 저녁에 일도 있겠다, 서핑은 다음에 날씨를 봐서 좋을 때 꼭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8월도 중순에 접어든 지금까지 양양에는 다시 못 가고 있다. 역시 작든 크든 파도는 밀려올 때 올라타야 하는 건가 싶다.


IMG_6057.JPG 서핑.... 좋아하시나요?

바다는 바다였다. 전날의 풀파티 아닌 풀파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열기와 열정이 느껴지던 해변, 올 들어 가장 뜨거웠던 태양 아래 구릿빛 피부를 드러낸 채 서핑 보드에 걸터앉은 여성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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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저녁 일정이 있어서 급히 상경하느라 1박 2일의 길고도 짧았던 여행은 끝이 났다. 돌아오는 길에는 휴게소에 딱 한 번 들러서 소떡과 핫도그로 식사를 대체했다. 나도 번갈아 운전대를 잡긴 했으나 초이의 차였던 만큼 대부분의 운전은 그가 맡았기에 녀석이 훨씬 피곤했을 것이다. 게다가 연이은 촬영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녀석이 운전을 하다가 졸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요 대단한 일이었단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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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이틀 안에 1천 킬로미터를 여행하는 일 같은 건 없을 듯하다. 아니, 해외를 나가더라도 그런 일은 앞으로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비행 거리를 제외한다면).


수박 겉핥기 식의 발도장 여행은 기피하는 편인 나로서도 이번 여행만큼은 꽤나 의미가 있었기에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세 편으로 쪼개어 올린 것 같다. 촬영 컨텐츠 위주의, 지극히 사적인 친구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였을지언정 그 안에는 여러모로 특이점이 있었다. 국내 여행답지 않은(?) 의외의 장소들 뿐만 아니라 지역 축제, 드라이브에 좋은 동선까지 포함돼 있기에 나름 훌륭한 여행길이었노라 생각한다.


다음에 또 다른 의뢰 건으로 초이 녀석과 트립 투 코리아 시리즈를 찍게 된다면, 그때는 한 번 실험적으로라도 유튜브 영상을 기획해 볼까 싶다. 우리끼리 낄낄댄 영상 하나를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혼자만 보기엔 아까운 것이다. 요새 핫한 '크리에이터'는 아무나 하는 거겠냐만, 그냥 그렇다는 또다른 포부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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