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의 사진 여행 : 경주-창원-대구-강릉-양양 편 두 번째.
(1편 https://brunch.co.kr/@hyuksnote/126 에 이어)
다양한 치킨/맥주 업체들의 홍보 및 판매 부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풀파티 장소에 입장하기 전에 근처를 우선 한 바퀴 둘러봤다. 초이는 업체에 보낼 행사 현장 사진과 영상을 촬영했고, 나는 그런 그를 간혹 촬영하며 좀 더 여유롭게 축제 현장을 스캔했다.
야, 어르신 아니면 애들인 것 같은데?
그렇지 뭐. 평일에 우리처럼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놀러 오겠냐ㅋㅋ
하긴. 풀파티도 너무 기대하면 안 되겠지?
평일 이른 저녁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인파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대구 사과 축제 같은 걸 보러 간 건 아니었으므로 뜨거운 여름에 걸맞은 풍경을 바라는 건 당연했다. 검색을 하다 보니 재작년인가는 공연 라인업에 씨스타가 있어서 매우 핫한 분위기였다는 리뷰를 봤는데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올해의 출연진을 한 번 검색해 봤다. 요일마다 두세 팀 정도의 라인업이 꽤나 빵빵했다. 다이나믹 듀오(男s), 넉살(男), 비와이(男), 민경훈(男)... 이들 중 우리가 간 날의 메인은 래퍼 넉살이었다. 어차피 공연을 챙겨볼 생각은 없었으므로 행사가 어떠한지 정도만 알아보려고 한 번 찾아본 거였다. (해체한 씨스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솔직히 걸그룹 한 팀 정도는 있을 줄 알았건만)
야, 맥주나 일단 빨리 마시자
다 마셨지? 더운데 얼른 물에나 들어가자
우리는 '치맥 비치존' 이 있는 풀파티 장소로 향했다. 생각보다는 큰 튜브형 풀장과 미끄럼틀이 있었다. 더위를 피해 물놀이를 하고 있던 비키니 입은 여성들과 대구를 찾은 외국인들........ 은 대구역 9와 3/4 승강장을 통과해야 했나 보다. 진행 요원들과 청년 봉사자들 몇몇 외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에 풀파티는 무슨 풀파티랴. 어쨌든 티켓은 미리 사 두었기 때문에 초이와 난 맥주 한 캔씩을 받아 들고 안으로 입장했다.
반팔 티셔츠를 입은 채 물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웃통을 벗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헬스를 하느라고 했는데도 여전한 몸뚱이를 드러내려니 어쩐지 창피했다. 게다가 밖에서는 축제 현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풀장을 한 번씩 쳐다보며 '쟤네 뭐 하는 건가'라는 분위기였단 말이다.
에라, 바지를 벗는 것도 아니고 촌스럽게 뭘 망설이나 싶어 훌렁 벗었다. 셔츠 안에 민소매를 입고 있던 초이도 잠시 후 나를 따라서 웃통을 완전히 벗었다. 우린 그렇게 치맥 비치존의 유일한 Beach Boys 였다.
낮 동안 데워진 풀장의 물이 미지근한 것까지도 그럭저럭 견뎠다. 이왕 갔으니 최대한 재미있게 놀 수밖에. 한가한 풀장에 튜브들도 많이 있고 해서 초이랑 둘이서 그냥 신나게 놀았다.
워터 슬라이드 몇 번 타고, 물에 둥둥 떠서 놀다 보니 금세 해가 저물었다. 그동안 진행요원, 봉사자들 외에 몇몇 사람들이 더 들어오기는 했으나 눈길이 갈 만한(?) 풍경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슬슬 밖으로 나가서 치킨도 좀 먹고 축제 구경이나 더 하기로 했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며 치맥을 먹을 수 있는 '치맥 아이스 카페'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합석이라도 해볼까 싶어서 두리번거렸을 텐데, 삼십 대 아재들인 게 다행인 건지, 한놈은 유부남에 한놈은 여자 친구에게 늘 고마워도 모자랄 놈인 덕분인지 아무튼 우리는 현장 분위기에 한껏 취해 돌아다니기만 했다.
낮에는 가보지 않았던 반대편 넓은 공간에는 큼직한 스크린 주위로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치맥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일 시원해 보이던 프로즌 비어 한 잔을 마시면서 잔디밭을 돌아다녔다. 주로 가족 단위의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자리에 드러누워서 여름밤의 운치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 : 야, 여기 분위기 좋다.
초이 : (후루룩) 맥주 시원하다.
나 : 사진 괜찮은데?
초이 : 치킨도 좀 먹기는 해야 할 텐데 이제.
분위기 타령이든 치킨 타령이든, 둘이 합쳐 환갑을 넘어가는 나이가 지나고부터는 좀처럼 자기 할 말만 하는 게 사내들인 것 같다. 혼자 있었으면 그 말조차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적적했을 테니, 그냥 한 놈이 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동행에는 의의가 있는 법이다.
혹시나 하여 다시 비치존으로 가보았으나 여전한 분위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어쨌든 페스티벌인데 이대로 돌아다니면서 맥주나 홀짝이기에는 꽝꽝 울리는 음악 같은 게 그리웠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수들의 공연 같은 걸 아직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끝까지 가보지는 않았던 반대편 행사장으로 쭈욱 걸어가 봤다.
나 : 오!! 이거지!!
초이 : 그래!! 난 요새 EDM이 좋더라!!
드디어 우리의 대화가 일치했다! 콘서트 무대가 마련돼 있는 두류 야구장에는 클럽 파티가 펼쳐지고 있던 것이다!
마침 멀리서 보기에도 매력적인 여성 DJ의 무대가 신이 나서 흔들흔들하며 영상으로도 담았다. 이 얼마만의 클럽 분위기던가. 낮에 김광석 거리에서 '서른 즈음에'를 흥얼거리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 어느덧 내 나이는 서른 즈음에서도 멀어져 가고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 괜히 조급한 마음에 페스티벌을 즐기고 싶던 터라 클럽 무대가 더욱 반가웠을 수밖에.
클럽이니 밤문화니 하는 것들을 원래 그리 잘 누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열기를 좋아하기는 했다. 그러던 내가 아무튼 언제부터인가 '토토가'를 필두로 향유되고 있는 90년대 대중음악에의 향수가 더 익숙한 '아재'로 숙성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겠다. 그래서 오히려 가끔가다 이렇게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에 광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잠시 후, 4인의 여성 댄스팀이 무대에 나와서 춤을 춰 주기 시작하시는 거였다.(나도 모르게 존대가...) 초이도 나도 깜짝 놀랐다. 뭐랄까, 이름만 풀파티였던 비치존에서 잃었던 열정을 뜻밖의 무대에서 되찾았달까. 한참을 춤추며 무대를 후끈 달궈준 이름 모를 댄스팀(?)의 노고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그만해야겠다. 치맥 페스티벌 후기는 쓰면서도 뭔가 나의 철학과 맞지 않는 글이 되어가는 듯하여 부끄럽다.
차마 거기서 넋 나간 듯 신나 하고 소리 지를 수는 없었다. 내 여자 친구와 초이의 아내가 이 글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현장의 분위기를 업무용 스냅샷에 담기 위해서만 잠시 구경했을 뿐, 금방 자리로 돌아온 우리는 차분히 치맥을 즐기며 삶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토론했다.
모처럼 흥겨운 야외에서 술과 음악에 둘러싸이려니 속이 다 시원했다. 맥주는 맥주였던지라 여러 번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던 만큼이나 더위와 짜증도 금방금방 비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단기 여행의 묘미란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오래 머물며 안주하지 않는 데 있다. 치맥 페스티벌을 짧고 굵게 즐긴 우리는 대구 막창을 먹기 위해 자리를 또 옮기기로 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