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린 의뢰인> 쇼케이스 현장을 다녀와서.

주연 배우 이동휘, 유선과 영화감독 장규성의 진솔한 이야기.

by 차돌


4월 10일 수요일 저녁, 퇴근 후 서둘러 종각역으로 달려갔습니다. 오는 5월에 개봉하는 영화 <어린 의뢰인>의 쇼케이스 무대에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죠. 주연 배우들과 감독의 열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영화는 어린아이에게 벌어진 사건을 다뤘기에 결코 가벼운 작품은 아닙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사회 고발적인 성격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자칫 무겁게 흐를 수도 있던 그날의 분위기는 그러나 이동휘 배우와 장규성 감독의 재치와 언변으로 시종 유쾌하게 진행됐습니다. 그와 동시에 여배우 유선 씨가 한 아이의 엄마로서 특히 공감하고 느낀 바를 털어놓은 진솔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KakaoTalk_20190414_191956995_04.jpg


영화의 바탕이 된 실화,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이번 영화를 계기로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아니, 실은 흉흉한 일들이 워낙 많은 세태에서 언젠가 뉴스로 접해 놓고도 어느새 잊었는지 모르겠습니다. 2014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로 보도된 이 사건은 계모가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그 언니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함으로써 죄를 감추려 했던 끔찍한 범죄였습니다. 가정 내 아동학대 문제였던 동시에 어른의 거짓말로 자칫 아이가 누명을 쓸 뻔한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던 것이죠.


IMG_1059.JPG


쇼케이스는 '봄밤의 진심 토크'라는 부제를 달고 시작됐습니다. 영화 예고편과 캐릭터 영상을 감상한 뒤 그 주인공들을 바로 무대에서 볼 수 있어 더욱 반가운 느낌이었네요.


IMG_1064.JPG


익숙한 두 배우들 뿐만 아니라 감독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왜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영화로 만들게 됐는지, 어떤 점에 유의하며 작품에 임했는지 등 참석자들이 질문한 내용에 장규성 감독은 술술 대답했습니다. 달변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이동휘, 유선 씨도 진솔한 촬영 후기와 의견을 보탰습니다. 널리 알려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할 사건을 영화로 조명했다는 점에 대해 그들 모두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저는 특히 이동휘 배우가 자신이 맡았던 '정엽'이라는 인물(아이의 변호사)에 대해 말한 게 기억에 남네요.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던, 어찌 보면 평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정엽이 사건을 계기로 성장해 가는 과정 말입니다. 이후에 감독이 보탠 말까지 종합해 보자면, 이 정엽이라는 인물은 현실적인 동시에 영화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각자의 정의감을 그에게 이입하며 분노를 발산할 수 있기도 하답니다. 어떤 느낌인지 짐작이 가시죠? 저는 어두운 사건, 특히 실화를 다룬 영화에서 이 지점을 나름대로 중요시하는데요. 아무리 고발할 필요가 있는 내용이고 중요하다고 해도 영화적인 카타르시스 없이 지나치게 솔직하다면 영화관을 나설 때 마음이 너무 무겁잖아요. <어린 의뢰인>의 결말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쇼케이스를 통해 짐작한 바로는 적어도 영화를 보고 난 후 답답하지는 않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IMG_1072.JPG


온라인을 통한 사전 질문들 외에도 쇼케이스가 시작하기에 앞서 참가자들은 다양한 질문을 포스트잇으로 붙여 놓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배우와 감독이 즉석에서 해소해 주는 재밌는 시간이었는데요. 제 기억에 남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어린 배우들과 촬영을 하며 어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배려했는지인데요. 장규성 감독의 말에 따르면 아역 배우들은 마치 스펀지처럼 감정을 흡수할 수 있기에 행여 작품으로 인한 상처나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도록 늘 심리치료사를 동행해 아이들의 감정을 체크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한 번도 이상 징후가 없었고, 아이들은 컷이 끝나면 아주 발랄하게 잘 지냈다고 하네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정선이 훌륭한 어린 배우들은 '극' 자체에 몰입하는 능력이 뛰어난 만큼 벗어나는 데도 능숙한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이동휘 배우는 두 아역배우 명빈, 주원을 일컬어 '선생님'이라고 표현해 좌중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위트 있는 겸손은 그렇게 아이들의 뛰어난 연기에 대한 기대감도 높여주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다른 하나는 배우 유선이 극 중 '지숙'이라는 의문의 엄마(?) 역할을 맡은 소감을 물은 질문과 그에 대한 유선 씨의 답변이었습니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영화를 찍기까지의 결심은 사명감, 책임감 덕분에 의외로 어렵지 않았으나 촬영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그녀는 털어놓았습니다. 심지어 유선 씨는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해 일순간 좌중은 그녀의 힘들었던 감정을 짐작해 볼 수 있었는데요. 앞으로 영화도 잘 되고 아동학대 문제도 줄어들어 그녀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많이 풀어질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IMG_1079.JPG


배우들이 고른 포스트잇 질문의 주인공들은 단상으로 나와 선물도 받고 배우, 감독과 셀카도 찍을 수 있었는데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몇몇 팬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나왔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라기 보다는 그날의 분위기가 워낙 훈훈해서 그랬다고 해 둡니다.



IMG_1081.JPG


쇼케이스가 끝나갈 무렵에는 참가자 전원이 함께하는 작은 이벤트도 있었는데요. 미리 받은 캠페인 종이에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고 두 손 높이 들어보는 시간이었답니다. 잠시나마 그렇게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떠올리고 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던 것 같습니다.


KakaoTalk_20190414_191956995_01.jpg 눈 감아도 예뻐요.(미안해요 사진이 한 장뿐이라)

쇼케이스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도 이벤트는 하나 더 있었습니다. 작고 예쁜 화분의 다육식물을 세 분의 주인공들이 직접 나눠줬답니다. 저는 뒷줄에 있던 덕분에 가장 먼저 호명받아 나가면서 화분을 받았는데요. 당황한 나머지 유선 씨 쪽으로 제대로 가지도 못하고 이동휘 씨와 서로 크게 인사를 나누며 받았습니다. 함께한 여자 친구조차 나오면서 그러더군요.

바보, 나 같으면 그래도 여배우한테 받았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참 좋았던 쇼케이스 무대였는데, 살짝 남은 아쉬움은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풀어야겠습니다. 예쁘기만 한 역할은 아니겠으나, 스크린으로나마 유선씨와 마음의 악수를... 아, 이동휘 배우님과의 인사도 물론 굉장히 좋았어요. 이번 쇼케이스를 통해 진짜 그분의 팬이 됐습니다. 진심입니다만.



* <어린 의뢰인>의 작은 주인공, 최명빈 양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의 모습이라네요. 참 예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재능을 만난 권태가 집착이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