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현미경 시점의 자연과, 그에 대한 기억.

생태 다큐 영화 <물의 기억> 시사회 리뷰

by 차돌


기적을 영상으로 구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시사회가 끝난 후의 간담회에서 진재운 감독이 한 말이다. 그는 영화를 위해 봉하 마을에서 1년을 지냈다고 했다. 10여 년의 친환경 농촌 생태 사업으로 우리나라 어느 지역보다 '생명 농법'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봉하 마을이야말로 '낮은 곳'에서 생태계를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도 했다. 소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연을 배려하고 교감하며 겸손해질 줄 알아야 한다는 소신도 밝혔다. 상영 내내 특별하고 경이롭던 영상에 과연 잘 어울리는 감독의 진중함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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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감독은 전작 <위대한 비행>을 통해 세계적으로 능력을 입증받은 연출자다. 3만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새들의 경이로운 여정을 화면에 담아내 해외 유수의 영상제에서 수상한 업적이 있기에 그렇다. 그런 그의 말이라서 더욱 설득력이 있던 걸까.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위대한 비행>에서의 여정과 달리, <물의 기억>은 파랑새가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파헤친 과정이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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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 봉하에서의 생태 사업을 주도한 그의 생전 영상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문득 '정치'는 배제하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생각조차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두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든다. 영화 <물의 기억>은 어떤 인물이나 이슈에 대한 다큐가 아니다. 있던 그대로의 기억과, 있는 그대로의 자연환경을 버무린 생태 보고서일 뿐. 거기서 굳이 의미를 찾아내려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관련된 기억들까지 억지로 틀어막는 건 개인적인 감상에 방해가 될 테다. 다큐든 픽션이든, 마침내 상영된 작품은 제작자의 의도를 떠나 관객 각자의 감상으로 평가될 뿐이다.


이에 나의 감상부터 밝히자면 영화를 보기 전 한 번, 보고 난 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대비되는 '물의 기억'이 떠올랐음을 고백한다. 강(물)을 정비한답시고 터무니없이 많은 세금을 쏟아부어 자연의 물길을 훼손한 어느 한쪽의 시대가, 어린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자연을 선물해 줘야 한다며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던 한 자연인의 소망을 극적으로 부각시킨 아이러니 때문일 것이다. 다큐 그대로에만 빠져들기에는 기억의 상처가 워낙 깊음을 새삼 느낀다. 물의 기억은 자연의 기억인 동시에 환경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시대에 관한 기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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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생태 다큐 같은 정적인 작품에 익숙한 편은 아니다.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했다느니 하는 얘기로 포장할 성격도 못 된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 작은 동식물들의 모습과 봉하마을의 풍경에 경외감을 느꼈단 감상평이 진정성을 얻길 바랄 뿐이다. 흥미와 자극 같은 건 어벤져스에서 충분했으니, 때론 이러한 감상을 통해 어떤 '균형감'을 가져야 옳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있다. 일말의 양심 혹은 의지랄까.


끝으로 진재운 감독의 말 중에 와 닿았던 내용을 떠올려 본다. 그는 '환경을 지키자'는 구호, 운동만으로는 사람들이 불편해서 오래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말했다. 자연은 이미 우리를 품고 사랑하는데 우리가 자연을 사랑한다느니 하는 식으로 선언하는 건 겸손하지 못한 일이라고도 했다. 격하게 공감했다. 조금은 소극적이더라도, 한 발짝 물러서서 관조하되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려는 마음가짐이라면 오래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참, <물의 기억>에는 극 중 인물도 등장하기는 한다. 50년대에 어린 소년이었던 한 남자 아이다. 그에 대해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진 감독은 시간의 교차를 의도하기는 했으되, 이를 판단하는 건 관객의 몫이라고도 했다. 나는 이해가 갔다. 그 소년이 등장하기에 이 영화는 <마이크로 코스모스>와는 또 다른 우리만의 영화이자 물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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