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s #USA #레트로 #미스터리 #호러 #성장드라마
* 강추. 관람 전 참고하기 좋은 내용만 스포 없이 써내려 갑니다.
이번 화까지만 보고 자야지.
그러나 시계를 봤을 땐 어느덧 새벽 5시였다. 주말이었기에 망정이지 하루를 날릴 뻔했다.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의 정주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괴생명체나 좀비가 나오는 걸 딱히 챙겨보지 않는 나로서는 이례적이라 할 만한 작품이었다. 시즌1 1화부터 시즌3 8화에 이르기까지 단시간에 흠뻑 빠져들다 보니 캐릭터 하나하나에 애착이 생기고 스토리에 여운도 많이 남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대표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기묘한 이야기>는 2016년 첫 선을 보인 시즌1이 엄청난 인기를 끌며 그다음 해 시즌2가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세 번째 시즌이 얼마 전 7월 4일 모습을 드러냈는데, 한 해를 더 기다린 사람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합했다는 평을 들으며 인기몰이 중이다. 처음에 나는 이 작품이 제목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엮은 줄만 알았다. 최근에 <블랙 미러>에 빠져들었다 보니, 이와 비슷하게 미스터리와 호러 단편들을 모아서 시즌을 구성했으리라 예상한 것이다. 그만큼 이 장르에 대한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리라. 단, <기묘한 이야기>를 보기 전까지만 해당하는 얘기다.
이 드라마는 '호킨스'라는 가상의 미국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시대 배경은 1980년대로, 시즌1,2,3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와 문화는 정확히 해당 시기를 반영한다. 이른바 '레트로 스타일'로 현재 시청자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 시대의 향수를 지닌 3~40대들의 인기를 끌 요소가 가득한 데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1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므로 어린 세대가 이들의 모험과 판타지에 빠져들기에도 충분한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연령층의 입맛을 사로잡은 <기묘한 이야기>의 인기 비결은 이것 말고도 많은데, 나름대로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이 작품을 요약하자면, 현실 세계와 맞닿은 다른 차원(뒤집힌 세계)의 문이 열린 호킨스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이야기다. 여기서의 차원이란 어벤져스로 유명해진 '평행 우주'처럼 서로 달리 존재하는 시공간의 개념이 아니다. 호킨스에 위치한 비밀스러운 연구소에서 벌어진 실험 때문에 뚫려버린 'The gate'. 이곳을 통해 침입하는 '저 세계'의 괴물은 '이 세계'에 함께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감지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 즉 '뒤집힌 세계'에 사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평화롭고 한적한 호킨스 마을에 괴물이 등장하면서부터 여러 갈등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 우연한 계기로 괴물에 맞서는 인물이 장난꾸러기 4총사 꼬맹이들 뿐이었다면 <기묘한 이야기>는 잔혹한 호러 내지는 얼토당토않은 공포물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시즌1에서 일찍이 신비롭게 등장한 여주인공 '일레븐', 줄여서 '엘'로 불리는 소녀의 등장은 그래서 작품의 완성에 절대적인 요소다. 이 캐릭터를 쉽게 이해하려면 우리나라 영화 '마녀'의 여주인공 자윤(김다미 역)을 떠올리면 된다.(2018년 개봉작인 이 영화는 실제로 '기묘한 이야기'의 내러티브를 잘 살렸다는 평을 들었다) 엘은 염력과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을 사용하는 특별하고 초월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에 극적으로 등장해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자윤과 달리, 장 시간 시청자와 호흡하며 시리즈를 이끄는 엘은 또한 완전히 다른 인물이기도 하다.
몹시 어리고 연약한, 그리하여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 '엘'은 친구들을 만나 함께 성장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연에 불과했던 이들의 역할도 키만큼 쑥쑥 크면서 찰떡 케미를 자랑하는데, 이게 바로 관객들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해주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본다. 요컨대 사람들이 흔히 공포물에서 보일 법한 반응인 '어어, 왜 저래~ 위험할 게 뻔한데!' 대신에 <기묘한 이야기>는 '쟤네 잘해야 할 텐데!'라는 응원마저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극한 상황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곁에는 그들을 지키려는 어른도 있다. 엘을 제외하면 모두가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들, 아니 어쩌면 결핍 투성이의 캐릭터들이지만 의지와 집념만큼은 공포물의 주연들로 부족함이 없다. 1화, 2화, 3화... 회를 거듭할수록 켜켜이 쌓이는 각자의 사연과, 이들이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단순한 공포물 이상의 드라마를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기묘한 이야기>의 스토리가 확실히 탄탄하다고 할 수 있는 건 단순히 핵심 인물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마침내 시즌3에서는 여러 주연들이 골고루 활약하기 때문에 도저히 특정 인물을 주인공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다. 이는 에피소드마다 사건을 다방면으로 해결해 가는 팀, 그룹의 구성이 치밀한 덕분이다. 호킨스 마을 안팎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해내는 이들의 시점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결코 복잡하거나 어수선하지도 않다. 심지어 각각의 찰떡궁합도 저마다 다른 유형으로, 이들이 선사하는 긴장과 조화는 극 전체에 다채로운 재미를 부여한다.
요즘은 '레트로'에서 더 나아간 '뉴트로'의 시대라고들 한다. 말 그대로 레트로를 새롭게 즐긴다는 의미인데, 복고를 복고 자체로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즐기면서 재생산하는 분위기를 일컫는 것이다. <기묘한 이야기>야말로 이에 딱 맞는 스타일이 아닐까 한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친근할 법한 1980년대의 문화는 작품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아이들의 옷과 신발, 음식과 같은 일상적인 요소에서부터 무전기와 TV, 영화에 이르기까지의 스토리 소재 모두가 그러하다. 심지어 '뒤집힌 세계'라는 설정부터가 아이들이 작품 속에서 즐기는 게임과 만화로 자연스럽게 설명되다 보니, <기묘한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SF이면서도 현실적인 드라마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다. E.T. 와 터미네이터, 워크맨과 팝송쯤은 미국인이 아니어도 너무나 익숙한 주류 문화였기에, <기묘한 이야기>를 보며 나 역시 향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흠뻑 빠졌다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간략히 논하기 힘들었던 듯하다. 이쯤에서 마무리하자면 <기묘한 이야기>는 아무튼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 뒤늦게 관심이 가는 요즘이라 개인적으로 더욱 반가웠나 보다. 공포와 미스터리라는 테마는 사람들을 확실히 끌어들일 수 있는 이야기, 서사의 매력 요소임에 분명하다. 무섭지만 궁금하고, 기괴하나 짜릿한 '기묘한' 이야기- 이 여름, 더위를 잊으려면 이 드라마를 서둘러 정주행 하라고 주위에 강력히 권하고 있다. 묘한 전자 사운드의 인트로 음악부터가 이 작품의 커다란 매력 요소이니 일단 한 번 재생해 보시기를.
아, 넉넉한 시간은 반드시 확보한 뒤라야 한다. 다음 화 재생, 또 다음 화 재생의 '저 세계'로 깊이 빨려 들어갈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