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에 레스토랑을 열기까지, 거장의 발자취.
요리도 비즈니스라고? 장인 정신으로 오로지 요리의 완결성만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선뜻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문학, 미술, 음악... 대개의 예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술가들의 창작열이 반드시 대중의 인정과 돈벌이,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그걸 목적으로 한다 해도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시장이 녹록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대는 분명 변화해 왔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라든지 팝아트가 예술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으로 떠들썩하던 시기는 이미 꽤 지난 데다, 수준이 높아진 대중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순수 예술'의 열정만을 부르짖는 건 고루한 느낌마저 준다. 요컨대 모든 예술가가 대중의 인정을 받지는 못하나, 대중의 인정을 받은 예술가는 거의 틀림없이 '거장'의 칭호를 들으며 사업적인 성공까지 거두는 시대라는 말이다. 19세기의 반 고흐는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을 거의 팔아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만약 오늘날 자기 작품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유튜브 방송을 한다면 엄청난 수입을 거두지 않을까.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인플루언서'가 되어 자기 귀에 면도칼을 들이댈 정도로 미쳐가지는 않았을 테다.
다시 처음에 꺼낸 얘기, 요리와 비즈니스로 돌아가 보자. 이번 영화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은 요리의 영역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요리는 예술과 생존 모두에 걸친 특별한 분야여서일까. '미슐랭(가이드)'로 널리 알려진 미식의 세계에서 예술적인 요리는 곧 돈이 되는 요리이기도 하다. 미슐랭 별점 ★~★★★ 은 미식가들 뿐만 아니라 대중의 인정을 통해 높은 인기와 수입을 보장하는 덕분이다. 제대로 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 지라도 미슐랭은 알고 있을 정도로 그 권위는 실로 대단하다.
이에 미슐랭의 인정을 받은 요리사는 사업적으로도 성공하고, 생계 걱정을 덜어낸 그는 더욱 철저히 맛의 영역에 몰두함으로써 연이은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게 일반적이라지. 어라, 그러고 보니 이 역시 요리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테다. 아무튼 이제는 예술과 자본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세상이고, 요리도 하나의 예술로서 마찬가지의 속성을 보이기에 훌륭한 요리사는 훌륭한 사업가가 될 가능성도 높다고 하겠다.
알랭 뒤카스를 잘 모르던 나로서도 그의 이력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던 게 바로 미슐랭의 힘이었다. 일단 세계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미슐랭 3스타를 획득했다는 소개에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현재까지 미슐랭 스타 21개를 획득해 전 세계에 31개 파인 다이닝을 운영 중이라는 사실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던 것이다.
영화는 '요리'보다는 '비즈니스'에 철저히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랭 뒤카스는 더 이상 요리 실력으로 검증이 필요한 젊은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요리, 그걸 만드는 요리사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인정받은 나이 지긋한 '거장'이자 요식업계의 큰 손인 그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세계 곳곳의 뒤카스 레스토랑들은 성업 중이다.
2년 동안 알랭 뒤카스를 따라다니며 촬영했다는 필름 화면은 생생하면서도 꾸밈이 없다. 그러나 길다면 긴 시간을 무리하게 압축하거나 싹둑 잘라서 편집했을 정도로 내용까지 투박한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요리사이자 사업가인 뒤카스가 프랑스 최초로 베르사유 궁 내부에 레스토랑 '오흐'를 오픈하기까지의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도쿄, 홍콩, 런던, 베이징, 마닐라, 파리, 뉴욕, 리오를 넘나들며 좋은 요리와 훌륭한 요리사들을 찾아다니는 거장의 발걸음에서는 품격이 느껴진다.
최상의 식자재를 추구하느라 미국의 커다란 농장과 중국의 철갑상어 양식장을 둘러보는 그의 행보를 두고 서민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남성 잡지에서 '댄디하면서 편안한 카디건 - ₩1,750,000'이라고 적힌 지면을 봤을 때 느낀 이질감에 비하면 차라리 소박했다. 이는 물론 이후에 조명되는 그의 다양한 자선 사업들 - 파인 다이닝에서 남는 식자재로 빈곤 계층에 식사를 제공하는 일과, 동남아에 요리 학교를 열어 청년 요리사들을 후원하는 - 의 영향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의식주에서 '식'에 해당하는 먹거리에 있어 최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의'와 '주'에 비해 덜 사치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내가 이 영화를 본 시각은 저녁 7시 반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넉넉지 못했음에도 햄버거 세트는 챙겨 먹고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웬걸. 이후 80분 동안 굉장히 배가 고팠다는 사실을 꼭 알려야겠다. 물론 화면에 등장하는 화려한 음식들에 비한다면 팝콘이나 핫도그가 대단히 만족스러울 거라고는 못하겠으나, 그마저도 없다면 괜한 공복감에 시달리며 영화를 봐야 할 것이다. 거장에게는 거장의 역할이 있는 것이고, 관객에게는 관객의 역할이 있는 것이니. 맛의 세계에 탐미하는 알랭 뒤카스의 행보를 마냥 넋 놓고 볼 미식가나 요식업 관계자가 아니라면 이 점에 유의해서 관람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