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을게요, <김복동> 할머니!

역사적인 이 순간, 그래서 더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

by 차돌


16세 소녀 김복동은 공장에서 일하게 될 줄 알고 끌려갔다. 배불리 먹여준다는 거짓말에 속아 잡힌 또래 소녀들과 함께 그녀가 도착한 곳은 중국 광동이었다. 그곳에서는, 일본이 침략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수없이 들락대는 일본군 짐승들에 의해 소녀 김복동은 깊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그렇게 빨려 들어갔다.


영화 <김복동>은 90년대 이후 누구보다 활발하게 인권 운동에 앞장서 오신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님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다. 작년 여름 개봉한 <허스토리>가 *관부재판 이라는 실화를 명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재현해 위안부 문제를 재조명했다면, <김복동>은 담담하게 할머님의 발자취를 담아낸 것만으로도 더 깊은 울림을 자아낸 리얼 다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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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님은 귀국 이후 부산 제물포에서 장사를 하며 동생과 조카들의 뒷바라지를 하셨다. 지난 슬픔은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살아가야 했던 그녀는, 평생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자식 하나 두지 못한 채 중년의 삶을 견뎌야만 했다. 그랬던 그녀가 상처를 비로소 드러내며 치유를 희망하게 된 건 90년대 들어 비로소 위안부 문제가 사회에 공론화되면서부터였다. 결코 이른 시기가 아니었건만 그러나 시대는 여전히 가혹했다. 김복동의 친언니부터 '조카들을 봐서라도 나서지 말라'며 동생과의 연을 끊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럴수록 김복동은 분연히 나섰다. 죄 없이 고통을 당한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끌려갔던 친구들, 나아가 또다시 그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될 후손들을 위해 남은 인생을 전부 바치기로 결심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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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30년 간 1,400여 차례 이어져(오는 8월 14일이 1,400차 집회다) 세계 최장기로 기록되고 있는 수요 집회. 김복동은 때로는 연단에서 일본 대사를 꾸짖으며, 때로는 함께해 준 어린 학생들을 지켜보고 격려하며 산 증인으로서 역사 알리기에 앞장섰다. 살아계신 여러 할머님들 중에서도 가장 정정하고 언변에 능한 그녀였기에, 김복동은 2000년대 이후로는 해외 각지에서 열린 세미나와 집회에 참가하며 일본의 파렴치한 과거를 전 세계에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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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상 곳곳에서 나는 김복동 할머님의 의지와 기개, 낙천적인 성격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할머니는 피곤한 몸을 누이시면서도 늘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으셨다) 감히 헤아리기 힘든 아픔을 그녀가 수없이 털어놓을수록 잊혔던 우리의 역사는 서서히 회복됐으나, 흐르는 세월 앞에 정작 할머니의 몸은 노쇠해져만 갔다. 영화 초에는 계단도 무리 없이 오르내리던 할머님은 후반부에는 휠체어에 의지했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형형하던 눈빛과 말끔했던 피부는 다큐가 진행될수록 빛을 잃어가는 모습이 역력했던 것이다.


일본에 있는 한인학교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장학금을 전달하던 김복동 할머님은 잘 보이지 않는 어린 학생의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조국이 있으니 기운 내라, 언젠가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달라- 90세를 넘긴 할머님은 어쩌면 열여섯 살 무렵의 자신을 그렇게 위로하셨는지도 모르겠다.


4.jpg 할머님의 따뜻한 마음, 평화나비 소녀의 순수한 마음.




영화의 끝에는 가수 윤미래 씨가 헌정했다는 노래 '꽃'의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모처럼 논픽션을 통해 가슴 절절한 감동을 느끼며 그렇게 영화관을 나섰다.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포털에 가득한 일본 관련 뉴스를 피할 수 없었다. 영화 후반부에 느꼈던 '분노'의 감정이 다시 끓어올랐다. 2015년, 피해 당사자들을 철저히 외면한 채 정부(이후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에 의해 무너진 박근혜 정권) 주도로 강행된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그로 인해 설립된 화해와 치유 재단(올해 6월 드디어 완전히 해체됐다). 해당 소식에 황망한 울분을 느꼈을 할머님들의 고통을 아직 다 위로해 드리지도 못했는데 아베 정부가 상처를 다시 헤집고 있는 오늘날이 아니겠는가.


김복동 할머님은 올해 1월 숨을 거두셨다. 그분의 손 한 번 잡아드리기는커녕 이름 한 번 제대로 부른 적 없는 나로서는 영화 <김복동>의 관객이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뭐라 표현하기 힘든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렇게 슬픈 현실을 직시하며 과거를 돌아봤다한들 우리 역사가 결코 후회와 한탄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믿게 되기도 했다. 일평생을, 심지어 병마와 싸우다가 눈을 감으시던 그날까지도 자신의 사명을, 후손들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으신 김복동 할머니를 가슴속 깊이 새긴 덕분이다.


다큐 영화 <김복동>은 오는 8월 8일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의 수익금은 전액 '김복동 센터' 건립과 역사 바로 세우기에 사용된다는 소식이다. 할머니! 잊지 않을게요!


영화 예고편 영상과 함께 윤미래의 '꽃' 듣기


1.jpg 할머님은 소녀상을 항상 소중히 어루만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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