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 Nov 29. 2019

느닷없이 따스했던 하루의 안도감

노들 강가에서의 4컷 포토 에세이




  추위가 잠시 풀리는 날이라 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부터 예감한 바였다. '아, 오늘은 안 춥겠구나'

해가 덜 깬 아침에 이 정도면, 한낮엔 따스함도 기대해 볼 만했다. 추워서 이제 못 입겠다 싶던 얇은 코트를, 올해 몇 번 입지 못한 게 아쉬워 다시 꺼내 입기를 잘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노들 강변을 산책했다. 모처럼 햇살이 강바람을 이기는 날을 놓칠 순 없었다. 앞으로 몇 달간 못 누릴 줄로만 알던 야외의 온기라 더 반가웠다. 커피를 아직 마시지 않았는데도 온 몸에 따스함이 퍼지고 있었다.

   



    

  추위가 이어지다 날이 뜻밖에 풀리니 아늑했다. 문득 떠올랐다. 언젠가 이 같은 기분을 날씨와 상관없이 느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날카롭게 굴던 누군가가 의외로 느슨한 구석을 보일 때 받은 느낌이었다. 쌀쌀맞아 정이 안 가던 사람도 오래 지내다 보면 헤헤하는 걸 보게 되는데, 그럴 때 난 안도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거였다. 늘상 느슨한 나로서는 상대도 느슨할 때라야 비로소 안심하는 탓이다.


  그때 구름이 잠시 해를 가렸다. 기온이 뚝 떨어질 리는 없었지만 어쩐지 초조했다. 마침내 구름이 걷히고 나서야 나는 다시 안도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추웠다 따뜻할 때와, 어둡다 밝아질 때의 감사함에 대해. 반대의 경우(따뜻하다가 추워질 때, 밝다가 어두워질 때)에 느껴지는 조급함과는 달랐다. 추운 날들 중의 따스한 하루는 어둠 속의 빛처럼 상대적으로 더 반갑고 포근한 것이다.

 



   

  하늘과 강 사이로는 지하철이 한강철교를 건너는 중이었다.

미처 사진을 못 찍어 아쉬워하다가, 몇 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지하철이 나타나길래 나는 서울의 배차간격을 떠올리며 안심했다. 마음에 드는 구도와 타이밍을 찾아 몇 대가 지날 동안이나 사진을 찍었다.


  느닷없는 따스함에 안도했던 만큼이나 꾸준히 오가는 지하철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계절 내 고만고만한 변화인 기온차에, 잠시 해를 가리다 만 구름에 유난스러웠던 것 같아 쑥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천천히, 그러나 변함없이 한강 풍경을 채우는 지하철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평화로워졌나 보다. 


  어쨌거나 강가에서 여유를 부린 게 따사로운 날씨 덕분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깊은 강의 잔잔함도, 잦은 열차의 꾸준함도 날이 추울 땐 마음에 품을 겨를이 없던 것이다.

         


  

  

  저녁에는 주황 노을이 평소보다 오래 머물렀다. 

하늘도 모처럼의 충만한 온기를 붙잡아 두고 싶은 듯했다. 바람조차 안 불어 고요한 잔디밭을 나란히 걷는 이들의 발걸음도 느릿느릿했다. 


  느닷없이 따스했던 하루에 난 그렇게 안도감을 느꼈다. 이 기분을 잘 기억해 겨울을 견디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통 무채색이었다가 빛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