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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Nov 24. 2019

온통 무채색이었다가 빛난다

가을비 내린 날의 4컷 포토에세이




  오후엔 비가 올 거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하늘은 눈살을 찌푸렸다. 차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데 멀리 비행기 한 대가 구름을 헤치는 모습이 유난스러웠다. 그때 머리 위로 눈길을 더 끄는 풍경이 보였다. 새가 무리 지어 삼각 대열로 날아가는 거였다. 먼 곳의 고요한 기계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면, (비교적)가까이서 날개를 파닥이는 생명체는 너무 현실적이라 감탄스러웠다.

      


  추위를 피해 가는지 비를 피해 가는지 궁금했다. 답을 들을 수 있다면 소리쳐라도 물었겠으나 그럴 수 없으니 한참을 바라만 봤다. 그들이 말없이 멀어지고 오래 지나지 않아 과연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렸다. 다행히 비는 조금씩 내려서 새들이 비행을 멈추진 않을 거라 여겨졌다. 새들이 가는 곳마다 비가 내리는 건지, 비가 멈추는 곳마다 새가 머무는 건지 문득 또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볼 새도, 바라볼 새도 더 이상 하늘엔 없었다.    

   




  차에서 내려 길을 걸을 무렵엔 땅이 물기를 제법 머금고 있었다. 가을비는 춥지 않게, 무리 없이 내리는 중이었다. 둘씩 짝지어 우산을 쓴 이들의 신발이 젖지 않을 정도로 빗방울은 가볍고 느렸다. 나는 작은 우산을 쓰고 산책로를 천천히 홀로 걸었다. 이미 떨어져 있던 낙엽들은 비에 젖어 더 이상 날리지 않았으나, 갓 지는 낙엽들은 작은 바람에도 한없이 뒹굴었다. 나는 어느 쪽일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가을비 내리는 풍경은 온통 무채색이라 마음에 더 차분히 드리웠다.

 




  밤의 아스팔트 도로는 매끄러운 고래등이다. 

비 내린 뒤의 불빛 아래 까망은 더 빛나며 윤기가 흐른다. 오늘 하루는 온통 무채색이었지만 결국엔 반짝이며 저물 것이다. 이 모든 게 새들이 지나간 뒤에 내린 가을비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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