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 Jul 25. 2022

비 여름밤 술 한 잔.

도쿠리, 하이볼, 꼬치, 참소라



 추적추적 비 내리는 밤, 인적 드문 거리를 걷다 이자카야를 지난다. 

'어 여기 이런 술집이 있었네?'

비를 피해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한다. 무더웠던 한낮에 차가운 음료만 들이킨 배에서 따뜻한 술 한 잔과 짭조름한 꼬치구이를 원하는 듯하다. 발걸음을 돌려 이자카야로 향한다.





 주점 안은 사내 네댓 명 한 테이블, 젊은 커플 한 테이블만 차 있다. 적당한 소란함과 적당한 무드가 어우러진 홀에 홀로 들어선 나 역시 혼술 계획은 아니다. 근처에 사는 친구를 이미 불러냈기 때문. 안주를 다양하게 먹기 위해서도, 침묵에 생각을 가두지 않고 살아있는 대화로 꺼내기 위해서도 술친구는 소중하다. 



 처음 가 본 술집에선 아무래도 무난한 안주가 편하다. 메뉴판을 훑으며 가게의 전체적인 느낌을 살핀 끝에 결국 모둠꼬치와 도쿠리 한 병을 주문한다. 물론 술은 따뜻하게 데워서. 비 오는 여름밤의 뜨끈한 사케 한 잔은 겨울 냉면과도 같은 별미임에 틀림없다.





 홀짝홀짝 따뜻한 술을 마시며 그날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가로운 주말의 대화란 굵었다 가늘었다를 반복하는 창 밖 빗줄기처럼 불규칙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얘기 도중 길쭉한 꼬치에서 쏙쏙 빼먹는 꼬치 안주가 다채로워 더 좋다. 이번엔 은행을, 다음엔 염통을. 와, 이거 참 맛있네.


 꼬치가 더 맛있는 이유를 알아냈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믿음직한 주방에서 사장님이 꼬치를 정성스레 굽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갈 때마다 도쿠리는 가벼워지고 꼬치는 듬성듬성해지며 술자리는 농익어 간다.





 가벼운 한 잔과 안주 하나만 하려던 계획을 변경해야겠다. 비는 계속 오고 술과 안주는 맛있는데 여기서 멈추기란 도저히 아쉬워서다. 

"사장님~ 메뉴판 좀 주세요!"

반납했던 코팅 메뉴판이 다시 돌아왔다. 처음에 눈여겨보았다 모둠꼬치에 밀린 안주를 추가로 주문한다. 참소라 버터구이, 이 술집 제대로다.


 이번 술은 하이볼이다. 냉온탕을 오가며 건강을 점검하듯 젊은 날의 술자리란 따스했다가 급격히 차가워져도 괜찮다. 많이 취하고 싶었으면 도쿠리 한 병쯤은 더 시켰으리라. 하지만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다. 빗길에 가던 길을 멈추어 들른 충동만큼이나 마음 가는 대로 이것저것 맛보고 싶은 날- 한 잔은 짐빔 하이볼, 또 한 잔은 산토리 가쿠 하이볼을 주문하여 서로 조금씩 맛보기로 한다.





 사장님은 오늘 아침에 담근 거라 신선하고 맛있을 거라며 방울토마토 매실청 절임 대여섯 알을 내어 주신다. 한 입 베어 물자 상큼 달콤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지며 술자리를 기분 좋게 마무리해준다.


 비 오던 밤 이자카야. 한 잔의 술, 한 개의 꼬치마다 쓸데없는 생각일랑 삼켜 버린 날. 참방참방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마다 시원하여 한여름도 잠시나마 잊혔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안함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