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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Jun 07. 2022

미안함에 대하여

되도록 가까운 이들에게 덜 미안하기.



  타인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편이라 생각한다. 내 이익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미안할 일은 하지 않는 게 배려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행할수록 미안함에 대한 내 생각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때론 부모님께 죄송했고, 때론 절친에게 미안했으며, 때론 애인에게 미안했다. 먼 사람에게 미안해 하지 않기 위해 가까운 사람의 배려를 당연한 듯 여겨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감정을 헤아려 볼 수 있으리라.



  뒤늦게 미안함을 느낄 때면 미안함은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난 뒤다. 가까운 이가 나로 인해 상처 받았단 사실을 깨닫는 순간의 미안함이란-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후회까지 더해져 감정의 무게를 더욱 버겁게 만드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따위의 후회를 어떻게든 만회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때를 놓쳐 더는 보상할길이 없을 때의 미안함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응어리진다. 이렇게 결석처럼 단단히 굳어버린 감정은 다른 감정들이 오가는 과정에서조차 건드려져 마음을 수시로 아프게 한다.



 다행히 미안할 일이 줄기 시작한 건 먼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는 욕심을 버리면서부터다. 배려랍시고 신경쓴 것들에 남들은 그리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가까운 사람도 못 챙기면서 남 챙기는 건 순서가 바뀐 일이란 사실 등을 나는 오래 경험한 끝에 미련하게, 그러나 그 덕에 깊이 있게 깨달은 것 같다.


  되도록이면 가까운 이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먼 미안함 쯤은 감수하려 한다. 내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멀리 베푸는 호의나 노력 따위에서 더는 의미를 찾기 힘들어서다. 이 글을 본 불특정 다수의 독자분들이 혹시 '이거 뭐 하나마나 한 얘기잖아'라며 시덥잖게 여길 지라도- 그쯤은 감수해야 가까운 사람들이 기다리는 글줄이나마 꾸준히 발행할 수 있으니, 미안하지만 욕심은 버리고 이쯤에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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