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안함에 대하여

되도록 가까운 이들에게 덜 미안하기.

by 차돌


타인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편이라 생각한다. 내 이익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미안할 일은 하지 않는 게 배려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행할수록 미안함에 대한 내 생각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때론 부모님께 죄송했고, 때론 절친에게 미안했으며, 때론 애인에게 미안했다. 먼 사람에게 미안해 하지 않기 위해 가까운 사람의 배려를 당연한 듯 여겨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감정을 헤아려 볼 수 있으리라.


pen-gaa0528091_1280.jpeg


뒤늦게 미안함을 느낄 때면 미안함은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난 뒤다. 가까운 이가 나로 인해 상처 받았단 사실을 깨닫는 순간의 미안함이란-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후회까지 더해져 감정의 무게를 더욱 버겁게 만드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따위의 후회를 어떻게든 만회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때를 놓쳐 더는 보상할길이 없을 때의 미안함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응어리진다. 이렇게 결석처럼 단단히 굳어버린 감정은 다른 감정들이 오가는 과정에서조차 건드려져 마음을 수시로 아프게 한다.


couple-g2070b50b6_1920.jpeg


다행히 미안할 일이 줄기 시작한 건 먼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는 욕심을 버리면서부터다. 배려랍시고 신경쓴 것들에 남들은 그리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가까운 사람도 못 챙기면서 남 챙기는 건 순서가 바뀐 일이란 사실 등을 나는 오래 경험한 끝에 미련하게, 그러나 그 덕에 깊이 있게 깨달은 것 같다.


되도록이면 가까운 이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먼 미안함 쯤은 감수하려 한다. 내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멀리 베푸는 호의나 노력 따위에서 더는 의미를 찾기 힘들어서다. 이 글을 본 불특정 다수의 독자분들이 혹시 '이거 뭐 하나마나 한 얘기잖아'라며 시덥잖게 여길 지라도- 그쯤은 감수해야 가까운 사람들이 기다리는 글줄이나마 꾸준히 발행할 수 있으니, 미안하지만 욕심은 버리고 이쯤에서 마무리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손톱을 깎을 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