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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ug 31. 2017

쓰다보면 알게 되겠지.

결국, 쓴다는 건 쓰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닐 때 쓰여지더라.



쓰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그 어느 때보다 쓰고 싶은 게 많은 요즘이라 그럴듯한 글 하나 쓰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했다. 샤워를 하면서 '쓰다... 쓰다...' 를 되뇌어 보기도 했고, 운전을 하면서도 핸들 위로 손가락을 톡톡 거리며 과연 내게서 어떤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을 지 중얼거려 봤다. 떠오르는 생각이야 많았지만,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비슷한 걸 쓸 것 같아서 잘 쓰기 위해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더는 미룰 수 없겠다 싶어서 선택한 건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나만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쓰든 남들과는 조금이라도 다를 거라 여겨졌다. 초등학생 반장 시절에 떠드는 친구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어야만 했던 딜레마에 관해서였다. 반나절을 꼬박 집중해서 써 보았는데, 결과물은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졸고였다. 경험의 특이성은 차치하고라도, 읽고나서 내 스스로부터가 드는 의문은 '그래서 뭐?' 였다. 고민은 계속됐다.


장마가 끝났다 싶었는데 비가 다시 쏟아지던 8월도 스무날을 넘어가고 있었다. 우연히 쳐다 본 어느 커플이 함께 우산을 쓴 모습을 보다가 문득, '그래, 이거다. 우산을 쓰다, 이번에는 짧은 단편 소설을 한 번 써 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지난 에세이와는 달리 내 안에서 찾아내는 에세이가 아닌, 주제로부터 소설을 직접 뽑아내야 하는 서툰 작업이었기에 시간은 더 걸렸고, 완성작은 지난 번 이상으로 쑥스러웠다. 남녀가 우산을 함께, 따로 쓴다는 이야기의 원형은 분명히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소설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싶었다.


쓴다는 건 이렇듯 의욕과 시간만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여백이었다. 모르던 바는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고민만 하다가 내린 결론이 아니라서 고무적이었다. 어찌됐든 마음 가는대로 주제를 정하되 일정한 시간을 들인 노력 끝에 두 편의 글을 써냈으니, 나름대로는 만족했다. 그리고 8월도 어느덧 마지막 날을 맞은 오늘, 다시 한 번 '쓰다' 란 주제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쓰다'를 쓰기 위함과 무관하게 내가 원해서 써 오고 있던 여행기를 다시 쓰다가 느끼는 바가 있어서다.





그렇다. 나는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살았던 여행기를 지난 몇 주간 틈 나는대로 써오고 있다. 개인 블로그에 작성해서 올려놓은 기록들이 있기는 하나, 아무래도 그 정도 포스팅을 '썼다'는 완성형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은 더 흘렀지만 본격적으로 최소한의 사진과 최대한의 글로 한 달의 여행을 쓰기로 했던 것이다. 다시금 떠올리는 여행의 추억은 비로소 글이 되어 더 명확한 즐거움으로 새겨지고 있다.


어려움은 있다. 혼자 쓰고 만족하려는 게 아니라, 나의 여행 경험을 타인과 나누고 싶은 욕심이 들어가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역시 잘 꾸며야 부끄럽지 않을 테니까. 물론 여기서의 꾸밈은 거짓이 아닌 포장을 의미한다. 부피의 포장이 아닌, 상대를 위한 정성이 담긴 포장. 워낙에 많은 사람들의 여행 콘텐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요즘이다. 전업 작가가 아닌 일반 개인들도 멋진 여행을 하고 이를 예쁘게 정리해 놓은 솜씨가 종종 감탄스럽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에 더 노력하게 된다.


그거면 된다고 생각한다. 주제가 경험담이든 소설이든, '쓰다' 라는 틀에 맞춰 아무리 써 봤자 그건 억지다.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싶은 말을 정돈해서 기록하는 행위, 쓴다는 건 주제에 무관하게 그런 것일테다. 이런 의미에서 누가 뭐래도 내가 정한만큼의 여행을 쓸 것이다. 여행을 쓰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하기 위해서 쓴다. 제주에서의 한 달을 온전히 잘 써내지 못하고서는 어디로든 다른 여행을 할 여유 따위는 없다.


여행을 쓰다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겠지. 이전 여행과 다음 여행의 사이에서, '쓰다' 라는 주제는 그래서 내게 무엇보다 유효하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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