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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ug 22. 2017

'떠드는 사람'을 쓰던 기억을 쓰다.

쓰다 보면 쓰디쓴 항의에 부딪힐 수밖에 없던 초등학교 반장 시절의 딜레마



아 쟤가 떠들 때는 안 쓰고 왜 나만 갖고 그래!


반장은 교실에서 '떠드는 사람'의 이름을 칠판에 써야만 했다. 적어도 초등학교 무렵까지는 그랬다. 선생님이 잠시 교실을 비울 때뿐만 아니라 본인의 책상에서 어떤 업무에 몰두해 있을 때에도, 친구들을 조용히 시키는 역할이 그 시절 반장의 주요 책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난 일찍이, '리더'로서 '통제'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힘겹게 겪어야만 했다. 


그런 반장을 왜 했냐고? 그 시절 반장은 일견 인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공부와 운동 모두 잘하는 소위 '모범생'인 나였다. 그런 내게 있어 학급 친구들의 투표를 통해 뽑히는 반장 선거는 꼭 참여해야 할 연례행사로 여겨졌고, 결국 해마다 한 번씩 내 이름은 가장 많은 친구들로부터 투표용지에 쓰여 반장(혹은 언젠가부터는 학급회장으로 명칭이 바뀌기도 했던)에 선출됐다.




고작 열두어 살 언저리의 초등학생 반장에게 주어진 책임이라고 해봐야 간혹 선생님이 지시한 무언가를 반에서 걷는 보조 역할이라든지 체육시간에 "기준!"을 크게 외치는 대표 역할의 반복이었다. 어긋남 없이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고 친구들과는 평화롭게 지내던, 영민한 내게 있어 그리 어렵지 않은 의무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고민과 스트레스의 흔적은 분명히 남아 있다. 거칠고 짓궂은 친구들과 또래 집단으로서 재미있게 어울리는 일과, 피 훈육자로서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착한 학생이 되는 일을 동시에 이뤄내는 게 이따금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던 것이다.  


대표적인 스트레스의 기억이 바로 교실에서 떠드는 친구들의 이름을 쓰던 일이다. 해마다 각기 다른 선생님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상과 벌을 내렸는데, 그 중심에 늘 변치 않고 일관되게 쓰인 방식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칠판에 이름 쓰기'였다. 이는 선생님이 부재중이냐 업무 중이냐에 상관없이, 얼핏 학생들의 자치 방식인 듯하면서 실제로는 대리인을 통한 간접 통제의 성격을 띤 교실 내 소란의 제거 방식이었다.   

   



더 큰 소란을 불러오기 일쑤였다. '지각한 사람', '숙제 안 한 사람'처럼 이미 어떤 기준에 의해 칠판에 쓰인 친구들의 이름은 문제 될 게 없었지만, '떠드는 사람'이라는 항목으로 반장이 쓰고 지워야만 했던 이름들은 그 당사자들로부터 수많은 반발에 부딪혔다. 누구누구는 떠들었는데도 안 쓰더니 자기 이름만 썼다며 불평하는 건 예사였고, 설혹 그냥 넘어간다 해도 단단히 삐쳐서는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반장의 치사함을 비난하고 삐딱하게 굴던 녀석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적대적인 친구들과 언쟁을 거듭하는 일은 평화주의자였던 내게는 적잖이 곤혹스러운 경험이었다. 요컨대 가장 많은 친구들로부터 이름이 쓰여서 되었던 반장이 정작 다른 친구들의 이름을 쓰면 쓸수록 비난 받음으로써 적잖은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반장, 떠든 사람 이름이 왜 이거밖에 안 쓰여 있어?

 

그런 상황에서 선생님의 공개적인 지적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교실로 돌아온 선생님이 밖에서 느꼈던 시끌벅적함에 비해 칠판에 쓰인 아이들의 이름이 적다고 여겨지면 반장에게 원인을 따지던 상황이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비교적 당당히 앞에 나가서 떠드는 친구의 이름을 칠판에 쓸 수 있었다. 내 눈빛에는 '봐라, 나는 선생님을 대신해서 써야만 한다'는 메시지가 섞여 있었을 테고, 그걸 본 친구들은 제 아무리 짓궂다 해도 애는 애인 지라 선생님의 권위를 의식해 한동안은 성질을 죽였던 것이리라. 물론 이것도 며칠을 가지 못해서 문제이긴 했다.




권위, 통제, 규율 따위의 거창한 개념들로 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린 시절이었다. 그저 내가 느꼈던 당혹감과 어려움은 친구의 이름을 칠판에 쓰는 행위를 통해 그가 받을 벌까지도 함께 해야만 할 것 같은 책임에서 비롯된 일종의 연대의식이었을 거다. 또한 아무리 이렇게 친구의 입장을 헤아린다 한들 그의 이름을 칠판에 쓰는 순간부터 받아야 했던 비난은 내게 너무 쓰디쓰고 싫었다. 살다 보면 누군가로부터는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인간관계의 교훈 따위는 이후 20여 년을 더 살면서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명제인데, 선생님이 시켜서 한 일로 친구와 갈등을 겪는 일이 꼬맹이에게 어디 쉬웠겠는가. 


아직도 모르겠다. 더 단호하게 이름을 쓸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내가 유약했던 것인지, 그러지 못해 힘들었던 게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라 많은 반장들이 겪은 곤란함이었을지 말이다. 어린 시절의 일들이 대개 그러했듯, 어떤 선택과 확신보다는 '헤쳐나감' 이 중요했고, 이에 반복된 곤란함이었을지언정 나는 그럭저럭 겪어냈던 것이다. 분필이 칠판에 부딪는 명쾌한 소리와 흩날리는 가루는 어느덧 찾아보기 힘든 요즘 세상이다. 반장들이 교실에서 떠드는 친구의 이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칠판이든 화이트보드든, 혹은 태블릿 PC 라 할지라도, 떠드는 친구의 이름을 쓰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거라고 밖에는 쓸 도리가 없다. 그 시절, 칠판에 떠드는 사람의 이름을 쓰던 일은 내게 쓰디쓴 기억으로 마음에 쓰여 있음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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