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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Jun 19. 2023

카세트 플레이어와 구형 헤드폰

레트로와 아날로그의 매력



  올드팝에 꽂혔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나오는 곡들의 스타일이 딱 좋다. 게다가 극 중 주인공 스타로드가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모습은 제법 근사해 보이기까지 했다.



  부모님 댁 서랍에서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 박스를 발견했다. 부모님이 모으신 것들에 더해 내가 학생 때 샀던 테이프까지 하여 많은 팝송 테이프들이 있었다. 마이클 잭슨, 엘튼 존, 존 레넌부터 해서 MAX3~5집에 이르는 컴필레이션 앨범까지. 오예, 싹 모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자, 그런데 갑자기 카세트 테이프를 무슨 수로 듣는담? 어릴 때 쓰던 aiwa 워크맨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난 온라인 쇼핑몰을 뒤져서 라디오 기능이 있고 블루투스 연결까지 지원하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하나 구입했다. 추가로 막 가지고 다니며 쓰기 좋을 만한 휴대용 워크맨도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샀다. 이걸로 이제 집에서든 밖에서든 카세트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뭔가 하나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모름지기 카세트 플레이어라면 그에 맞는 레트로 스타일의 헤드폰이 있으면 좋겠지. 이 역시 해외 직구로 아주 심플한 걸 하나 찾아서 구매했다. 해외 배송이었기 때문에 모든 조합이 완성되기까지는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까지 충분히 누렸다.





  그리하여 요 일주일 간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며 느낀 만족도는? 한 마디로 기대 이상이다. 우선은 불편함이 제공하는 여유로움에 반했다. 버튼 터치 한 번으로 곡을 휙휙 넘길 수 있던 편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재생 중인 노래에 귀 기울이며 진득하게 감상하게 된 것이다. 


또한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PLAY 버튼이며 STOP 버튼을 누를 때의 그 뭐랄까 - '물성'이라고 해야 할지 - 아무튼 물리적인 조작으로 노래를 켜고 끄며 느끼는 촉각, 청각의 자극이 참 좋다. FF(빨리감기) / REW(되감기) 버튼을 누를 때 테이프가 휘리릭 하고 감기는 모습을 보고 듣는 것도 그렇다. 비유하자면 자동차를 타고 휭하니 다닐 땐 미처 모르는, 자전거 페달을 밟아 바퀴 돌아가는 걸 몸으로 느끼며 주위 풍경을 둘러볼 때의 매력 같다고나 할까. 




  무선 에어팟을 귀에 꽂고 휴대폰 화면을 터치하면 깨끗한 음질의 노래가 바로 재생되고, 이를 애플 워치 화면을 통해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는 게 당연한 요즘이었다. 그런데 카세트를 사용하다 보니 이러한 편의는 편의일 뿐, 필수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테이프가 돌아가며 재생되는 음악, 게다가 이것이 구형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라면 그 과정에서의 음원 손실은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옛 시절엔 그게 당연한 거였고 그럼에도 좋은 음악의 가치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더 좋은 음질의 노래를 듣게 해주는 장비들이 있었으나, 투박한 청음이 당연한 시대였기에 그러한 장비들도 특별한 가치를 지녔던 것이리라.




  날이 더워져서인지 때로는 멀쩡하던 테이프에서 늘어진 소리가 날 때도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카세트 테이프를 냉동실에 넣었다 꺼내면 소리가 돌아온다기에 한 번 해 봤더니 실제로 된다. 음원 파일을 재생할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냉동 볶음밥 옆에 테이프를 두었다 꺼낼 때 느꼈던 기분이란, 마치 내가 냉동 인간이 되었다 깨어 시대를 거스른 복고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아직까지 나 말고는 주위에서 카세트 플레이어와 구형 헤드폰을 꺼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딱히 특별한 건 아닌 듯한데 그렇다고 흔한 취향도 아닌가 보다. 레트로가 뭐 별 거 있겠는가. 유행이랍시고 답답하고 두툼한 헤드폰을 목에 걸고 다니며 최신 유행곡들을 흘려듣느니 난 이게 좋아서 당분간은 애용할 것 같다.


* 요즘 특정 헤드폰이 워낙 인기라서 중고 시장에는 심지어 소리가 나지도 않는 고장난 헤드폰까지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진짜일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제 한여름인데 나라면 차라리 목걸이 선풍기를 걸고 다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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