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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ug 07. 2023

볼이 뜨겁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초전도체 뉴스를 접하고 든 생각 하나



  휴대폰의 열기로 볼이 뜨겁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손에 쥔 휴대폰이 아주아주 뜨거워질 때까지 전화를 놓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먼저 끊으라 하기를 수차례, 결국 누구도 끊지 않고 하하호호 웃다 다시 또 달콤말랑한 이야기로 밤을 새던 연인들.



  더는 간밤에 긴 통화를 하지 않게 된 사람들에게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음날의 출근을 위해, 뜨겁던 사랑도 차갑게 식을 수 있단 경험적 두려움으로 인해, 체력이 전과 같지 않은 나이로 인해... 그리하여 휴대폰으로 볼이 뜨거워지는 사랑이야말로 한때의 열정이자 청춘의 사랑으로 여겨지곤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과학자가 '상온 초전도체'를 발견했다는 뉴스로 과학계가 술렁인다는 소식을 접했다. 천상 문과인 나조차 알고 있기로도 그것이 만약 진짜로 밝혀질 경우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력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 걸쳐 획기적인 열효율의 개선은 물론이요 다방면의 기술 발전으로 이어질 거라 한다.


  그중 한 가지가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가 상용화된다면, 휴대폰을 아무리 사용해도 뜨거워지는 일 같은 건 없을 거라는 사실(과학에 기반한)이다.





  2033년의 어느 뜨거운 여름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청춘 남녀가 각자의 방에서 통화 중이다. 그들은 사랑의 설렘으로 몸을 배배 꼬다 못해 초스마트폰(?)을 가까이하지 않고 화상 통화가 가능함에도 그걸 손에 붙들어 볼에 부비며 사랑을 속삭인다. 아직 서로의 얼굴을 보며 통화하기에는 쑥스러운 시기이며, 무선 이어폰 같은 걸 꽂을 겨를도 없이 시작된 통화에 몰입하느라 서너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것이다.


  다음날 걱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들의 통화는 밤새 이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휴대폰은 뜨겁기는커녕 시원하고 보송하다. 최첨단 에어컨디셔너가 관리하는 쾌적한 방 온도와 한치도 다름없는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이다. 손에 쥔 휴대폰은 물론이고 무릎에 올려놓은 노트북, 방에 달린 에어컨 등의 모든 기기에 초전도체 칩이 탑재되어 있어 발열 현상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미래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 가지 확신을 가지고 있다. 틀림없이 두 남녀의 볼은 뜨겁다 못해 터질 듯이 빨간 거라는 사실(경험에 기반한)이다. 휴대폰이 초전도체로 이루어졌다 한들 우리의 사랑, 청춘의 열정이 상온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과학에 따르면 전도체의 발열이 저항 때문이라고 하듯, 사랑에 의한 발열도 우리 몸의 화학적 변화 같은 걸로 설명할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초전도체가 흔해진 시대에는 기술의 진보 덕에 몸의 발열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닐 것 같다. 냉철한 과학자라 한들 볼이 뜨겁지 않은 사랑을 사랑으로 여기지는 않을 거란 믿음 때문이다. 


  이상, 초전도체와 관련한 소식에서 청춘 남녀의 사랑을 떠올리고야 말아 뜨겁게 끄적여 보았다. 이 정도 예상에 조금이라도 발열을 일으킬 만한 과학자는 없을 거라는 믿음도 있기에, 나는 상온 초전도체가 흔해진 미래에도 청춘 남녀의 볼만큼은 뜨거우리란 예상을 굳이 거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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