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 Jun 01. 2023

꾸준한 게 뭘까?

꾸준히 꿈 많고 호기심 많은 30대의 항변



  이것저것 해 보는 걸 좋아한다. 어려서도 그랬고, 꽤 자란(?) 지금도 여전하다. 식당에 가면 늘 먹던 것보단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 보는 편이고, 여행지에서는 철저한 현지화(= 새로운 경험)를 추구한다. 레저, 스포츠 또한 하나를 오래, 계속하는 것보다 안 해 본 걸 새로이 경험하는 걸 선호한다. 


  덕분에 이벤트성 스포츠로는 하프 마라톤 / 서핑 / 수상 스키 / 래프팅 / 번지 점프 / 패러글라이딩 / 스키 / 스노보드 / 사격 / 골프 등을 한 번 이상씩은 경험했다. 크로스핏은 3개월 정도 해 봤으며 남자 치고(?) 요가, 필라테스도 각각 반년 이상은 수강했다. 좋아서 꾸준히 하는 풋살이나 농구, 수영, 웨이트 트레이닝 외에도 이 정도를 해 봤으니 어디 가서 경험담 이야기할 때 '저도 그거 해 봤어요'라며 낄끼빠빠 하기 힘든 수준인 셈이다.


  최근에는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몇 년 전엔 기타 코드 좀 잡아 보다 꾸준히 하진 못하고 기타마저 전 여친에게 빌려 줬다 헤어져 버렸는데, 가만 보니 내가 예전부터 진짜 연주하고 싶던 건 피아노인 거라. 어릴 때 마지못해 배우다 만 걸 성인이 되어 비로소 자발적으로 다루고 싶은 악기로 선택하고 다시 배우기로 한 것이다.





  So what? 이거 저거 해 본 거 늘어나 놓자고 줄줄 나열한 게 아니다. 아무리 새로운 걸 좋아한다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종종 있어 정리도 해 볼 겸 글로 옮기는 단상이다. 하나라도 꾸준히 해서 방귀깨나 끼는 사람들을 보면 정작 '한 번 해 본', 혹은 '조금 하다 만' 내 경험치가 과연 삶에 어느 정도의 효능을 갖추었나 돌아보곤 한다.


  솔직히 말해 우와 소리 나게 뭐 하나 파고드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일이든 취미든 1만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3~4년은 꾸준히 해야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뛰어 남보다 나은 수준이 되는 건데, 일도 취미도 2년을 채 못 넘기고 휙휙 갈아타는 내 입장에선 때때로 진득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는 타인의 시선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게 자격지심이라 할지라도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하진 않다.


  새로운 걸 수강할 때면 늘 초심자 혹은 신규 회원의 입장이다 보니 잘난 체는커녕 어리바리하기 일쑤여서 더 그렇다. 어릴 때는 내성적이었음에도 그런 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아무리 외향적이라 해도 어린 친구들 앞에서 쩔쩔매면 어쩐지 쑥스러울 때가 많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신규 회원인 건 뭔가 멋져 보이고 새로운 도전 같은데, 어중간한 젊은이가 쭈뼛쭈뼛하고 있는 걸 보면 나부터가 '무슨 사연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





  근데 말이지, 나라는 인간이 전혀 꾸준하지 못하냐고 한다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고 얼마든 항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경험의 카테고리를 상위로 올려 보면 어떨까. 이를 테면 서핑이든 스키든 뭐든지 간에 '스포츠'로 놓고 보면 십수 년 이상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거고 음악도, 여행도, 맛집 투어도, 일도 제법 성실하고도 꾸준히 해 온 인간이란 말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내가 남을 어떻게 보느냐는 관점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란 실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나 스스로가 '꾸준함'의 가치를 높이 산다면 남들이(보편적으로) 꾸준하다고 여길 만한 행위를 지속하는 방법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새로이 경험하며 깨달음을 얻고, 재미든 자극이든 무엇이든 추구해 나가는 태도, 그게 바로 살아가는 방식 자체로서의 의미를 지닌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이 브런치 스토리 채널은 어쨌든 초창기부터 5년 이상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덕분에 이렇게 끄적이는 글이나마 제법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이란 말인가. 그래, 꾸준함이란 지속 가능의 영역 안에 있으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어떤 목표 달성이나 성실함을 수반해야만 가능한 건 아닌 듯하다.

 

때때로 발행에 소홀할 때면 받아보는 알람조차 나보다 꾸준한 건 아니다. 글쓰기는 운동 같아서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그래 인정,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아직 울퉁불퉁한 몸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놓지 않고 몸 근육을 키우고 있거든요. 이게 어느 순간 가속이 붙더라구요. 글 근육도 마침내 그렇게 자라리라고 감히 확신하오니, 행여 '난 꾸준하지 못해' 라며 쓰다 만 분들이 있다면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만. 존버로 득근득근!



  

매거진의 이전글 고등어야 미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