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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Mar 10. 2023

고등어야 미안해.

- 잘 먹었어.



  친구와 맛집으로 이름난 일식당에 갔다. 시그니처 메뉴인 고등어 회를 먼저 고르고 소주 한 병도 시켰다. 흔치 않은 별미를 기다리며 우리는 기대에 부풀었다.



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싱싱함이 돋보이는 특별한 플레이팅인 건 알겠는데, 아무래도 눈길이 생선 대가리에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싸나이. 친구와 난 얼른 회 한 점씩을 집어 맛을 보았다. 과연 맛집답게 싱싱하고 고소했으며, 비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우... 이거 봐!
어? 으으- 완전히 살아있잖아!


고등어 대가리가 파르르르- 미동도 아니고 거의 파다다닥 수준으로 떠는 거였다. 주둥이도 뻐끔거리면서. 오징어나 낙지 같은 해물이야 아무리 꿈틀대도 익숙한데, 눈 뜬 생선 대가리가 잘린 채 그러는 모습을 보려니 너무 싱싱하다 못해 참혹할 지경이었다.


고등어야 미안하다...
뭘 미안해 인마ㅋㅋㅋ


사죄하는 마음을 담되, 친구와 히히거리며 소주잔을 부딪혀 건배했다. 돌이켜 보면 그 광경이야 말로 고등어의 입장에서는 비참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고등어 회를 먹는 테이블이 여럿 있었지만 우리처럼 호들갑 떠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그 식당과 메뉴에 익숙해서인지, 어차피 회 메뉴니까 그러려니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싱싱한 고등어의 희생 덕인지 소주가 술술 들어갔다. 그런데 시간이 제법 흘러 회도 몇 점 남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야야야- 이거 봐, 이거 봐!
어? 와- 뭐야 이거! 아직도야?



이번엔 꼬리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횟감 아래의 접시 바닥 쪽으로 고등어의 한쪽 면이 싸악 회 떠진 채로 꼬리까지 붙어 있었다. 신경은 여전히 연결돼 있었을 테니, 완전히 죽지 않은 녀석은 마지막 힘을 짜내 꼬리로 몸부림 쳤으리라. 고등어 꼬리는 그렇게 한참을 파닥파닥, 부들부들 떨다가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상, 모처럼 고등어 회를 먹다가 생생함을 느낀 뒤 끄적인 경험담이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서너 개 더 먹었으나 처음의 고등어를 도저히 잊을 수 없어 글로 남긴 것이다.


만약 우리의 접시에 고등어 대가리와 꼬리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한 점 두 점 회를 맛있게 먹기만 했겠지. 살아있는 고등어의 몸부림 같은 건 상상하지도 않았을 거다.


이렇듯 난 살아있는 횟감에 때로는 호들갑을 떤다. 친구와 함께한 술자리의 유쾌한 에피소드와, 살아있는 생선을 회 떠먹는 인간의 잡식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 사이 어디쯤에 나의 사고(thinking)는 파닥파닥 살아 숨 쉰다.


당분간은 살아있는 무엇을 먹든 그 녀석이 살아있었음을 한 번쯤 떠올릴 것 같다. 이제는 적어도 고등어 한 마리만큼의 무게는 더 얹어서 생기 있게 지내야겠다.  


P.S. 술자리 초반에는 까맣던 고등어 눈이 소주 두 병을 비웠을 무렵에는 탁해져 있었다. 취기 오른 나의 두 눈이 행여 그와 같지는 않았기를. 고등어야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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