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잘할수록 줄어든다

by 차돌

어릴 때 나는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비교적 과묵했고, 대체로 신중했다. 학창 시절 내내 그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수다스러워지기도 했지만,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보통 말을 아끼는 쪽이었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잘 믿지 않는다. 성인이 된 뒤, 말이 트이듯 쏟아지기 시작한 언변이 '과묵'과는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어느덧 청년에서 멀어지고 있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말을 가리는 법을 익혔지만, 2-30대의 나는 10대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입시를 준비하며 눌러 담았던 욕구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필요를 느꼈고, 당시의 분위기도 말을 잘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했다. '자기 PR의 시대'라는 말처럼, 침묵보다는 유려한 언변이 권장되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원래부터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국어 시간에 책을 소리내어 읽는 시간이면, 손을 들고 나서진 않아도 은근히 내 이름이 불리길 기대하곤 했다. 주목받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걸 밖으로 꺼내는 데 서툴렀던 셈이다.


20대에 들어서며 나는 그 서툶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 무리 속에서 웃기다는 말을 듣고, 발표를 도맡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말은 할수록 느는 것이었고, 나는 점점 '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을 이제 와 돌아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성향의 가치를 다시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는 능력을 갈고 닦은 지금에서야 오히려, 말하지 않는 선택이 더 나은 순간이 있다는 걸 자주 깨닫는다.


사람마다 할 말이 넘쳐나는 시대다. 모두가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그만큼 타인의 말에 쉽게 피로해진다. 화려한 언변은 순간의 주목을 끌지만, 결국 오래 남는 건 말의 양이 아니라 태도다. 조용히 듣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 더 신뢰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말수가 적다고 해서 무조건 나은 건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말이 많아질수록 실수와 뒤탈도 함께 늘어난다는 점이다. 가만히 있었으면 지나갔을 일도 괜한 한마디로 꼬이기 시작한다. 재미를 주려던 말이 주책이 되고, 가볍게 던진 농담이 누군가에게는 선을 넘는 무례가 되기도 한다.


겪어보니 그런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받은 상처에는 민감하고, 자신이 준 상처에는 둔감하다. 누군가의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남는 건, 말로 확인된 결과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나는 말을 줄이는 쪽을 택한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꺼내는 대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하나씩 덜어낸다. 말을 참는 일은 나 혼자 감당하면 되지만, 말을 잘못 꺼내면 그 책임은 여러 사람에게 번지기 때문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필요한 말을 하는 것, 그리고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것. 그 사이를 지키는 일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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