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여행 마지막 날 애월 봄 바다의 카약과 협재 여름 바다의 풍경
# 이호테우 해변 - 하귀 애월 해안도로 - 애월 카약 - 협재 해수욕장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북부 해안을 따라 서부로 이동했다. 오후 늦은 비행기로 제주를 떠나기로 한 형과의 마지막 일정에 역시 애월이 빠질 수 없었다. 이제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제주시를 지나는 도로가 익숙했다. 가다가 이호테우 해변을 구경하기 위해 차를 멈췄다. 눈에 익은 목마 등대 두 개가 환히 서 있었다.
제주시내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데다 일몰 명소로도 유명한 이호테우 해변은 이미 몇 차례 들렀지만 매번 새로웠다. '이호테우'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빨갛고 하얗게 우뚝 서 있는 조랑말 모양의 등대가 매우 특이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사내 둘이서 딱히 예쁜 말을 주고받거나 와~ 하며 감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처럼 서로 독사진도 찍어줬던 걸 보면 배경의 흰 등대처럼 하얗고 순수한 마음을 각자 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바람)이다.
한쪽에는 씨워킹 장비들이 뗏목 위에 놓여 있었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없고 나란히 헬멧(?)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어딘지 재밌기도 하고 바다와 참 잘 어울려 보였다. 한 번 써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참았다. 때로는 작은 일탈이 여행을 즐겁게 해 준다고 생각하지만, 괜히 남의 물건을 건드리느니 참는 게 나았다.
하귀-애월 해안도로로 접어들어 드라이브를 하다가 잠시 또 차를 세웠다. 해안에 작은 무대처럼 솟아있는 검은 바위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기어코 올라가서 인증샷 하나를 남기고 옆 쪽의 튀어나온 바위에 앉아도 봤다. 출입 금지 구역은 아녔던 데다, 씨워킹 장비처럼 누군가의 소유물 혹은 소유지도 아닐 것이었다. 까불다가 내 몸 다치면 그저 내 손해이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므로...라고 하면 안 되겠지. *디딜 곳을 충분히 살펴보며 안전에 유의했습니다.
참 특이하고 근사한 지형인데, 아무 푯말도 없었고 지도에서 지명을 따로 찾을 수도 없던 곳이었다. 용두암 같은 명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건만, 이름 없이 우뚝 서 있는 그곳을 보고 있노라니 과연 어떤 차이일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희소성? 보존 상태? 심미적 가치? 설령 이 모두에 더해 내가 모르는 학술적 의미까지 있더라도, 당장 내가 우연히 발견한 이곳의 주관적 가치가 용두암 이상인데 무엇이 더 필요하랴 싶었다.
"우연이란 축적된 필연의 결과다"라는 올브라이트(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의 명언이 갑자기 떠오른다. 제주 북서부 바다에서 왠지 눈길을 끌었던 바위는 그 자체로 범상치 않기도 했지만, 그 전까지의 여행을 통해 이미 축적한 과정을 통해 나는 그곳에 반드시 멈추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던 게 아닐까. 이름 모를 해안 바위를 얘기하며 유명 정치인의 말까지 끌어 쓰는 게 좀 거창했나 싶다가도 그때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 느꼈던 바닷바람을 떠올려 보면 '그럴만했다'라고 여겨진다.
애월 바닷가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해물라면을 먹는 거였다. 봄날 카페 바로 근처에 있어서 오다가다 자주 봤던 '놀맨'이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이런저런 해산물을 넣어 굉장히 비싸게 파는 다른 해물라면들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데다 맛도 있어 꽤 유명한 집이었다. 명성대로였다. 꽃게와 홍합, 새우가 들어간 국물은 진하고 맛있었다. 요즘 식당들 가운데는 라면도 요리라고 선언하며 온갖 재료와 함께 조리해 내놓는 메뉴가 다양한데, 라면이 요리일 수는 있지만 요리가 너무 복잡해지면 그건 이미 라면이 아니라고 본다. 적당한 재료로 적당히 심플하면서 무엇보다 라면 본연의 면발이 살아있어야 하며, 가격 또한 적정선을 지켜야 비로소 라면이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식사 후에는 인근에 있는 카약 탑승장으로 갔다. 30분에 1만 원이면 1인승 카약을 앞바다에서 탈 수 있었다. 금액을 지불하자마자 옷이 젖지 않도록 방수 치마를 두르고 카약을 골랐다. 2인승 투명카약이 더 인기라고는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형과 함께 그걸 탈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여자 둘이서 못 하는 건 별로 생각나지 않는데, 남자 둘이서는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는 것들은 여러 가지를 금방 떠올릴 수 있다. 굳이 나열하지는 않겠다.
수심이 깊지 않은 해안에서 타는 카약은 별다른 준비 없이 쉽게 탑승할 수 있다. 형이 먼저 타는 걸 사진 찍은 뒤 나도 얼른 올라 타고 노를 저어 나갔다. 슥슥 물살을 가르며 이동하기가 생각보다 쉬웠다.
휴대폰의 방수 기능에 새삼 편리함을 느끼며 카약 위에서 서로 촬영도 했다. 아무리 잔잔한 바다였다고는 해도 출렁이는 카약에 앉아 무릎 위에 노까지 올려놓고 균형을 잡으려면 조심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형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사진 찍기를 워낙 즐기는 내가 포즈를 좀 취해 보라고 한다든가 나를 찍어달라고 했으니 적잖이 귀찮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행 중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헤아림을 한참이 지난 후에 하는 걸 보면 그때가 확실히 속편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망망대해- 까지는 아니었지만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기분은 기대 이상으로 행복했다. 제주 곳곳을 다니며 몇 군데 카약 장소를 봤으나 대부분이 정해진 코스를 이동하며 줄지어 다니는 식이었는데, 애월은 그렇지 않고 넓은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서 가장 좋았다.
우리는 구태여 나란히 노를 젓거나 함께 다니느라 애쓰지 않고 각자 자유롭게 바다를 누볐다. 나는 거의 한계선(해수욕장 부표처럼 더 이상의 진출을 제한하는)까지 빠르게 노를 저어 갔다가 가만히 둥둥 떠 있기도 해보고 반대편 해안에 바싹 붙어보는 등 잘도 돌아다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가 출렁여서 스릴이 있기도 했지만 카약이 안정적이라서 한동안은 노젓기를 멈춘 채 평화로운 기분에 취했다.
여행을 일상처럼 여기는 것과, 일상을 여행처럼 여기는 것 중 어느 게 더 쉬울까? 둘 사이에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뛰어넘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다. 전자의 경우, 경제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여유'만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겠으나 후자는 이 모두를 지니고도 결코 쉽지 않은 삶의 태도다. 요컨대, 카약을 타면서 그저 재밌고 맘 편하게 즐겼던 여행은 당시로서는 나의 일상으로 쉬이 여겨졌으나, 반대로 현재의 일상에서 아무리 여행의 추억을 떠올려 기분을 되살리려 한들 쉽지가 않다는 말이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뒤, 주말에 짤막하게 하는 나들이를 여행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도 있지만 이 또한 큰 틀에서는 일상의 범주에 속하는 시간들로 봐야 할 것이다. 잘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고민들, 인간관계를 둘러싼 여러 감정들로 일상은 어수선하다. 이에 결코 나만 생각하며 자유로울 수 없는 일상은 자유로운 여행에의 동경을 낳을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여행과 더욱 대비되는 일상은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것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여행을 꿈꾸고 계획하는 이유가 아닐까.
카약과 친한 형을 생각하며 떠올려 본 당시의 여행과 현재 일상의 차이는 생각하면 할수록 현격해질뿐이다.
뭍으로 나오니 바닷물에 옷이 꽤 젖어있었다. 출렁이는 파도가 카약 안으로 넘쳐 바지를 많이 적셔놓은 거였다. 잠시 쉬며 몸을 말리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카페 봄날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몽상 드 애월은 말할 것도 없이 어수선했다. 한담 해안산책로를 오며 가며 봐놓은 카페가 한 군데 있어서 그리로 갔다. 같은 곳을 세 번이나 지나는 데다 길이 단조롭다 보니 길눈이 밝지 않은 나조차도 훤히 알고 있는 코스였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cafe&villa'라는 곳이었다. 넓은 출입 창을 활짝 젖혀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평소대로 나는 아메리카노, 형은 모카를 마셨다. 바람이 시원하게 내부까지 불어와 몸을 말려줬다. 젖어있던 옷이 갈수록 차갑게 느껴져서 아이스 음료를 시킨 걸 살짝 후회했다. 잠시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니 다행히 몸은 따스해졌다. 제주 애월 바다의 봄이야말로 내가 움직이기에 따라 더없이 따뜻하고 좋은 날씨였다.
애월에서 곽지, 한림을 지나 협재 해수욕장으로 갔다.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인데 정작 한 달 여행 중에 처음으로 하는 방문이었다. 형과 함께하는 마지막 방문지라서 이왕이면 더 크고 좋은 바닷가로 택한 협재는 도착하자마자 마음이 탁 트이는 풍경이었다. 전날 갔던 표선 해수욕장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백사장에서 저마다의 휴양을 즐기고 있었다.
애월의 봄에서 훌쩍 건너온 협재는 여름이었다. 해수욕장의 공식 개장일 이전이었음에도 파라솔을 펴고 태닝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고, 바다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럭비공을 가지고 편을 나눠 '비치 럭비'를 즐기던 외국인들의 모습이 특히 시원해 보였다.
날이 맑아서 비양도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어린 왕자'가 모자를 보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했던 대목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어릴 때 참 인상적으로 읽었던 내용인데, 나이가 들수록 그 진의와 상징이 더 와 닿는 걸 보면 역시 명작답다는 생각이 든다. 섬의 모습에서 그러한 내용을 떠올린 건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해야 할지 경험의 소환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전화를 받고 있는 나를 어느새 형이 촬영한 걸 나중에 발견했다. 밀짚모자와 파란색 PK티셔츠가 분명히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듯 빛나 보이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통화하던 그때가 몹시 그리워지는 사진이다. 친구 한 녀석이 마침 제주에서 볼 일이 생겼다며 내가 언제까지 있을지 묻는 전화였다. 결국 그 친구와는 일정이 맞지 않아 만나지 못했는데, 제주에 정착해서 살게 된 사람들이 처음 1년 정도는 손님을 맞느라 정신없다는 얘기가 확 와 닿았던 순간이라 기억에 남는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슬슬 형을 공항으로 데려다줘야 할 시간이었다. 마지막 식사를 인근에서 갈치조림으로 해결했다. 솔직히 여자 친구와 덕승식당에서 먹었던 갈치조림 보다 맛이 덜했는데도 전복이 들어가 있어 가격이 꽤 비쌌다. 그래도 맛있게 먹기는 했다. 형이 마지막으로 밥을 사줘서 더 고맙게 먹었다. 여행 내내 더치를 하는 대신 밥이며 숙소까지 형이 많이 지불해 준 덕에 내 예산이 많이 절약됐다.
친구든 형이든 동생이든, 만나서 식사라도 한 번 같이 하려면 돈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는 나이에 접어든 지 오래다. 대개 사회적 관계에서 돈 씀씀이는 곧 마음 씀씀이로도 해석되는 요즘 현실이다. 나는 그렇다. 평소 잘 알던 사람일수록 그의 돈 씀씀이 수준은 파악하고 있기 마련인데, 알뜰한 사람이 그 자신에게는 사치인 수준으로 내게 선물을 한다거나 한 턱 낼 때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더 고맙기 마련이다. 반면, 평소 자신에게 쓰는 수준이 꽤 여유로움에도 함께 있을 때 유독 인색한 사람에게는 어쩐지 섭섭하고 아쉽다. 그런 사람과는 아무리 깔끔하게 더치 페이를 한들 어딘지 모를 찜찜함이 남곤 한다. 그럴 바에야 시원하게 내가 더 내는 게 속편하다는 주의였던 시기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 역시 이것저것 이해타산을 따지게 되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돈 씀씀이를 곧 마음 씀씀이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노력했건만, 훌쩍 떠나기 전까지 밥을 사 준 형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는 비행기 시간이 꽤 남았음에도 면세점 쇼핑을 할 거라며 쿨하게 돌아서서 떠났다.(그 자신에게도 인색하지 않은 편이라 해서 내게 써 준 씀씀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건 결코 아니었다) Pierre와 여자 친구에 이어 2주일 사이에 제주공항에서의 이별이 벌써 세 번째였다. 익숙하게 공항 게이트를 찾아 차를 잠시 세워놓고 형을 보낸 뒤에 돌아와 보니, 조수석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내일부터 비로소 다시 혼자 여행할 생각에 제주에 막 도착한 듯 차 안에서 흥얼거렸다. 라디오를 켜자 익숙한 DJ의 방송이 흘러나와 서울과 비슷하네 싶다가도, 이내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한라산의 풍경이 새삼스러웠다. 나흘 만에 돌아온 숙소 앞에서 차의 시동을 끄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귀가는 귀가가 아니었다. 여전히 집이 아닌 숙소였기 때문이다. 아직 여행이 여러 날 남았음을 상기하며 짐을 챙겨 올라갔다. 방은 나오기 전 정리해 놓은 그대로였다. 생각보다 포근한 분위기에 금세 마음이 놓여 편히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