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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Oct 30. 2017

제주 한달살기 Day17 : 남자 둘의 우정여행_2

카페 조천리의 발견과 성읍에서 즐긴 카트 레이싱

# 조천 성당 - 카페 조천리 - 성읍 카트장 - 표선 해수욕장



오랜만에 든든한 아침 식사를 했다. 호텔 조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둘 다 늦잠을 포기한 것이다. 생각보다 음식들이 신선하고 좋았다. 야외 테라스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라 더욱 근사하고 상쾌한 하루의 첫 끼였다.





형은 아침에 성당 미사를 보겠다고 했다. 요즘 주말마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중이라며, 여행지에서도 예외는 아니라는 거였다. 형을 차로 데려다주고 나도 잠깐 성당 구경을 했다. 함덕 해변에서 멀지 않은 언덕길에 위치한 작고 예쁜 '조천 성당' 이었다. 천주교 순례 코스의 출발지이기도 한 걸 보면 꽤 알려져 있는 곳인 듯했다. 형이 미사를 보는 시간을 활용해 나는 근처의 카페에 머물고자 성당 밖으로 나왔다.




근처의 언덕은 아주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멀리 바다가 잘 보였고 풀밭 위에는 흰 나비들이 꽃가루 날리듯 흩어져 너울거리고 있었다. 사진으로 미처 다 담지 못한 그 풍경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전원주택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넓은 정원에 까치가 앉아 있어서 보고 있었는데, 곧이어 현관이 열리더니 여자 아이가 나오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더 둘러보고 사진도 남기고 싶었으나 개인 주택이므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이런 곳에 언젠가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동네에서 무턱대고 좋은 카페를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인터넷 블로그에 리뷰가 있는 몇 군데는 문을 닫았거나 지나치게 작은 카페라 주차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냥 미사나 볼 걸 그랬나 하던 순간, 지도에서 새로운 카페를 한 군데 발견해서 마지막으로 가 보기로 했다. 출발지였던 조천 성당 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운 셈이었다.



그렇게 발견한 곳이 제주 여행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카페가 된 건 도착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조용하고 넓은 실내, 탁 트인 전망, 맛있는 브런치, 친절한 주인 부부, 순하고 귀여운 개. 카페 조천리에는 이 모든 게 있었다.



빨강 야외 쿠션에 종일 드러누울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여유롭고 전망이 좋았다. 친절한 사장님과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카페를 오픈한 지 한 달 정도 됐다고 하셨다. 워낙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는 데다 평일 오전이라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녀간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창하되, 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지지 않을 정도로만 유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페 조천리의 마스코트 '구찌'는 이름만큼이나 고급스러운 하얀 털의 순한 애완견이었다. 녀석이 정원에서 뛰노는 모습은 마치 드라마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점심은 멀리 성읍 민속마을 근처에서 먹었다. 가시식당에서 혼자 먹었던 두루치기를 형에게도 맛 보여 주기 위해서 갔는데 하필 휴일이라 근처인 성읍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앞서 몇 번이고 휴일인 식당에서 발길을 돌린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아쉬웠다. 단지 그걸 먹기 위해 꽤 멀리 이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신 찾은 '만덕이네 식당'의 전복 두루치기 모듬 한 상도 꽤 괜찮은 맛이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형과 고기를 좋아하는 내 입맛 모두를 만족시켜 준 장점도 있던 메뉴였다.




성읍 민속마을은 굳이 자세히 둘러보지 않았고, 흑돼지를 구경할 수 있다는 곳에 차를 멈추어 잠시 들어가 봤다. 보아하니 식용의 사육이 아니라 식당의 단체 손님을 위한 관상용 애완돼지였다. 다가가자 돌담에 앞발을 올리고 킁킁대는 녀석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처량해 보였다. 방금 두루치기를 먹고 나온 사람으로서 괜히 미안해지던 순간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재밌어 보이는 놀거리를 발견했다. 카트장이었는데, 형도 나도 아직 그걸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다는 걸 서로 확인하고 바로 들어갔다. 여자 친구와의 액티비티도 그랬지만 카트 역시 혼자만 여행했다면 타 보지 않았을 텐데 친한 형과 둘이서 놀기에는 딱이었다.



일반 관광객들이 쉽게 즐길 수 있게 개조해 놓은 차량이라 카트의 속도는 적당한 수준이었다. 좀 빨리 달려 보려고 엑셀을 한참 밟으면 뒤쪽의 엔진이 큰 소리를 내는 통에 안전이 우려되어 속도를 더 낼 수도 없었다. 그래도 뭐 금세 조작에 익숙해져 신나게 타면서 잘 놀았다.



카트장을 나와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주말이라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있던 표선 해수욕장이었다. 이른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해변이었다. 뭘 하고 있든 모든 이들의 표정이 밝게 빛나는 제주 바닷가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카트장에서 놀다 온 30대 남자 둘의 흥은 바닷가에서도 이어졌다. 셀카봉으로 사진을 이리저리 찍어봤다가, 아무래도 전신이 나오는 게 나을 것 같아 아예 삼각대를 놓고 포즈를 잡아봤다.





우리가 지냈던 호텔의 1층 식당은 오전에는 조식, 그 이후로는 카페, 저녁에는 호프로 알차게 이용되는 장소였다. 게다가 투숙객들에게는 생맥주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적당한 안주 판매까지 이뤄내고 있었다.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늦은 저녁 겸해서 맥주 한 잔과 함께 모듬 안주를 시켜서 먹으며 그날 하루도 편하게 마무리했다.


확실히 혼자일 때와 여자 친구와 함께일 때가 달랐고, 친한 형과 다닐 때는 여행이 또 달랐다. 차이점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건 같이 다닌 여행은 혼자 생각할 겨를 없이 함께 즐기느라 바빴다는 거다. 카페에 앉아서 각자 보냈던 잠깐의 시간 외에는 온통 나의 기분과 상대의 기분이 어우러진 가운데 장소와 시간을 협의해서 다녀야 하는 동행. 돌이켜 보면 잠깐이나마 의견이 안 맞는다거나 불편했던 순간의 기억은 흔적도 없고 함께 즐거웠던 순간들만 떠오른다.


여행은 어디 가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건 결코 흘려 넘길 말이 아니기에, 난 혼자 여행이 아니고서는 정말 편한 사람과의 동행만을 추구한다. 단 둘이 있을 때 불편해지는 순간, 그건 이미 여행이 아닌 수행이 되므로. 함께 다녔던 사람과의 편안한 여행을 떠올리는 일이야말로 즐거운 생각의 여정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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