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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Dec 05. 2017

제주 한달살기 Day27_2 : 이제 정말 혼자다!

세 여인과의 3박 4일 마지막 날 오후, 마침내 혼자인데 3일 남았네.

# 방주교회 - 명랑스낵 - 협재해변 - 금악오름  
# 헤드라잇 상향등을 켜며 혼자 남은 3일을 생각하다




https://brunch.co.kr/@hyuksnote/58


오전의 비오토피아 투어는 마치 다른 세상에 다녀온 기억처럼 특별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로 붐비는 카멜리아힐 주차장에 도착하니 일종의 현실감 같은 게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욱 이타미 준의 건축물에서 느꼈던 여운을 놓치지 않고 가족들에게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타미 준의 또 다른 작품인 방주교회는 이어진 코스로 최적이었다. 카멜리아힐을 구경하고 나온 셋을 태워서 바로 이동하자 5분도 지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동안에 차 안에서는 내가 들었던 이타미 준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에게 해 주었다. 다들 우선 그가 한국인임에 놀랐고, 대체 어떻길래 교회 건물이 명소냐며 호기심을 보였다. 방주 교회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명성 그대로였다.

 




방주 교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하여 물에 떠 있는 형태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옆면은 마치 풍 박물관의 형태와 비슷해 보였고 건물 주위의 얕은 물은 수 박물관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내부 어딘가에는 또 석 박물관을 닮은 무언가가 있을지 몰랐지만 출입이 통제돼 있었기 때문에 안을 볼 수는 없었다.


특히 엄마가 방주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했다. 아빠도 꼭 한 번 같이 오면 좋겠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다. 며칠 전 통화에서 아빠는 "아부지, 집에 혼자 계셔야 하는데 엄마만 여행시켜드려서 섭섭하지는 않으셔?"라고 내가 묻자 "내 걱정은 말고 엄마나 잘 모시고 다녀~"라고 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도착한 날 저녁에는 전화로 "다들 나 빼고 재밌냐~"라던 우리 아부지셨다. 그러고 보면 여행 동안 엄마는 수시로 아빠 얘기를 꺼냈다. 다른 데는 몰라도 비오토피아와 방주 교회는 다음에 꼭 함께 모시고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동생도 방주교회 건물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반 고흐 전시도 그렇고, 녀석이 생각보다 정적인 곳들을 좋아해서 의외였다.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서로 바빠졌다고 못 본 사이에 달라졌나 싶었다. 원래 그랬는데 내가 무심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마침 밝은 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사진 찍기에 좋았다. 닫힌 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자세를 취하며 "찍었어?"라고 확인하는 녀석이었다. 몇 번 촬영하고 나서 검사를 받았다. 처음 찍은 게 제일 잘 나왔다. 원래 그렇다. 여러 번을 찍어야 처음 찍은 사진이 제일 잘 나온 줄 알지, 한 번 찍고 말면 아쉬움이 남는다.  



교회 건물이 길쭉하게 빛나는 아래로 세 여인이 걷는 모습이 정겨웠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기 위해 굳이 다들 서 있으라고 하기는 싫어서 스냅으로 한 장만 찍었는데, 역시 양 옆의 화각이 모자라서 살짝 아쉽다. 너른 공간이라고 할 만큼 큰 부지는 아니었지만, 특유의 건축 양식의 영향인지 방주 교회는 좌우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듯해 실제 규모보다 웅장하게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입구에서 뒤쪽으로 돌아가서 바라본 반대편은 보다 방주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경건함이 중요한 교회 건물로서도 매우 훌륭하다는 생각이 드는 분위기였다.



작은 삼각대를 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비스듬한 각도에서 눈대중으로 구도를 잡고 타이머 사진을 찍었는데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나란히 앉아있는 셋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나까지 사진에 넣고 나니 그런대로 좌측의 큰 건물과 균형이 맞았다. 뾰족하긴 하지만 날카롭게 느껴지지는 않던 방주교회의 지붕이었다.    





협재 쪽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한림읍에 있는 '명랑스낵'이었다. 여자 친구와 바다를 보며 떡볶이와 튀김을 정말 맛있게 먹은 맛집이었다. 분식을 좋아하는 동생과 매콤한 양념을 좋아하는 엄마, 고기를 잘 드시는 이모의 입맛에 다 어울리는 메뉴였다. 일반 떡볶이와 짜장 떡볶이, 흑돼지 튀김, 왕새우 튀김까지 전부 시켜서 아주 맛있는 식사를 했다. 운전자인 나를 빼고는 셋이서 맥주도 한 잔씩 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반 고흐 전시와 더불어 동생이 계속 타령을 했던 곳이 바로 명랑스낵이었기 때문에 녀석은 특히 좋아했다. 특히 엄마가 기대 이상으로 맛있게 드셨고 여행 후에도 가끔씩 그때의 떡볶이를 말씀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 역시도 입맛을 다시는데 금방 어디 가서 사 올 수가 없는 노릇이므로 근처의 분식집에서 사다가 먹는다. 하지만 바다 풍경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어서 아무리 맛있는 떡볶이와 튀김으로도 그때의 느낌은 결코 살릴 수가 없다.



식후 산책은 협재 해수욕장에서 했다. 3일 동안 도무지 해수욕을 할 만한 일정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못내 아쉬워하던 동생이었다. 발이라도 담가야겠다는 녀석과 함께 바짓단을 걷어붙이고 바닷가에서 잠시 놀았다. 마냥 퍼질러 앉아서 모래성을 쌓던 어린 시절 남매의 즐거움이 잠시 떠올랐다. 물이 몹시 차가워서 깜짝 놀랐는데, "이제 가자 얘들아~ 감기 걸리면 안 돼"라는 젊은 부부의 목소리도 언뜻 들려왔다. 모두가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다. 부지불식간에 그런 추억이 떠오른 걸 보면 내 안의 노스탤지어가 여전했나 보다. 



우리가 바다에 나간 동안 엄마와 이모는 멀찍이 올라서서 구경만 했다. 물에 젖기도, 모래 범벅이 되기도 싫은 중년의 여인들이었다. 이따가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하므로 그런 두 분을 나도 굳이 바다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다만 울퉁불퉁한 바위에 혹시나 넘어지시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금방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어릴 때는 나와 동생이 물가에서 노는 걸 걱정받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반대이고 보니 모래성을 쌓던 어린 시절과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자라고, 부모들은 늙는다는 뻔한 사실에 공연히 조급했던 협재 해수욕장이었다. 엄마의 여행이 끝나가고, 덩달아 나의 여행도 곧 마무리라는 생각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제 정말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늦지 않게 저녁 식사를 하고 공항에 도착하려면 한 군데 정도 더 둘러볼 여유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용눈이나 다랑쉬 오름을 안내하고 싶었으나 거리 상으로도 그렇고 무엇보다 엄마와 이모에게 오르막길은 무리일 거라는 판단이었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차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오름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아놓은 건 그래서 다행이었다. 금오름, 혹은 금악오름으로 불리는 그곳은 협재에서도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금방 둘러보기 딱이었다.(* 금악오름은 내가 다녀간 이후 '효리네 민박'을 통해 방송에 나옴으로써 유명세를 탔다. 관광객들이 늘어 몸살을 앓는다는 기사를 보고 알았다. 차량을 통제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고 하니 어쩐지 씁쓸하다)


  

혹시나 내려오는 차와 마주치면 골치 아프겠다 싶은 좁은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이렇게 올라가면 정말 오름의 정상에 갈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다가 이윽고 경사의 끝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정말로 오름의 분화구가 펼쳐져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차 몇 대를 세워놓을 만한 공간도 보였다.



춥다고 내 바람막이를 빼앗아 입은 동생이 절벽 같다며 언덕의 끝을 향해 마구 뛰어갔다. 기운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엄마와 이모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한라산에 데려가는 거였는데.



차로 오르든 걸어서 오르든 오름은 오름이었다. 방송을 보지는 않아서 어떻게 나왔나 잘 모르겠지만, 이효리가 좋아하는 오름이라고 소개한 건 괜한 말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내 눈 앞에는 효리도, 아이유도 아닌 엄마와 이모와 동생이 먼 곳을 내다보고 있었다. 날이 좀 흐리긴 했지만 역시 탁 트인 오름 정상에서의 풍경이야말로 보고 가지 않으면 섭섭했을 필수 코스임에 분명했다.



공항 방면으로 가던 길에 마지막으로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다가 카페 한 군데가 눈에 띄어서 들어갔다. 다양한 코코넛 음료를 파는 곳이라 여러 개 주문해서 맛보며 잠시 앉아서 쉬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카페라 SNS 참여 이벤트도 하는 중이었는데, 동생과 같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서 작은 잼도 선물로 받았다.


그곳 카페에서는 특히 스노우 앱(사진, 동영상에 다양한 얼굴 변화와 스티커 효과 등을 주는 인기 애플리케이션)으로 다 같이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와 이모는 얼굴 사진이 우스꽝스럽게 변하는 걸 보면서 이게 뭐냐고 치우라면서도 엄청 웃으셨다. 그러고는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다른 효과는 뭐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거였다. 그런 두 분을 보며 나와 동생은 또 신나게 낄낄댔다. 여행이 끝나가서 괜히 풀이 죽어있느니 그렇게라도 앉아서 함께 시간을 보내니 아쉬움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 식사는 통 큰 우리 이모가 제주 통갈치조림 한 상을 거하게 쏘셨다. 그 당시에 TV 예능 '미운 우리 새끼'에서 김건모가 제주도에서 그걸 먹는 게 방송을 타서 한창 제주의 갈치 집들이 붐비는 기간이었다. 이모 역시 며칠 전부터 마지막 식사로는 갈치조림을 꼭 먹자고 찜해 놓으셨기에 공항 근처의 맛집을 찾아갔다. 김건모가 방문했던 식당은 한창 유명세를 타는 중이라 재료가 떨어졌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집을 검색해서 갔는데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라 오히려 더 좋았다.


비행기 시각이 임박하여 좀 급하게 먹었던 걸 빼면 마지막 식사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해산물이 가득 들어간 통갈치조림 한 상은 넷이서 배부르게 먹기에 충분했다. 석양이 보이는 바깥 풍경도 좋아서 그 촉박한 와중에 나는 먼저 얼른 먹고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넷이 함께하는 마지막 날 오후에 근사한 노을을 구경할 수 있어서 제주의 날씨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세 여인이 도착하던 날 그 어느 때보다 화창했던 하늘이 기억에 선명했다. 여행 중간에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부는 등 3박 4일의 기후가 다채로웠는데, 처음과 끝은 신기할 정도로 맑은 제주 하늘이 황홀했다.   





제주 공항에서 누군가와 만나거나 헤어지는 건 너무 익숙한 일이었다. 한 달 사이에 무려 네 번째 공항 배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공항에서'라는 장소성이 아닌 '누구와'라는 관계성이었고, 그런 면에서 엄마, 이모, 동생에게 손을 흔들며 나는 또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셋의 방문은 예상치 못한 일정이기도 했고,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의 막바지였기 때문에 어쨌든 가이드 역할은 내가 얼마간 '감수'하는 거라 여겼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가족들과 함께 다니다 보니 그런 생각이 이기적이었다고 여겨졌을 뿐 아니라 좋은점도 많았다.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제주를 소개하며 더 신경을 쓰다 보니 몇 번 가봤던 곳도 한 번 더 살펴보며 자세히 알게 됐고, 혼자 여행할 때는 여유를 부리느라 오히려 지나쳤던 풍경도 다시 봤던 3박 4일이었다.


함덕으로 돌아가던 저녁, 도로가 유난히 어두웠다. 숙소로 이어진 내륙은 더욱 캄캄해서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만 환한 밤길이었다. 맞은 편에서 오는 차가 없는 걸 확인한 후 차의 상향등을 켰다. 확실히 더 멀리 보이기는 했지만 무겁게 깔린 어둠에 비한다면 미미한 차이일 것이었다. 3일 밖에 안 남은 나의 여행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잘 보내려고 애쓸 수는 있겠지만 그래봐야 상향등을 켜는 정도가 아닐까 하는.


밤은 이미 충분히 깊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확보할 수 있는 시야에 한계가 있다면 차라리 내일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편이 현명했다. 남은 여행일이 얼마가 됐든, 어김없이 날은 밝을 거고 나는 또 제주의 풍경을 누릴 테니까. 마지막 3일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홀로 여행을 마무리 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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