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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Dec 07. 2017

제주 한달살기 Day28 : 제주 환상자전거길의 풍차

단 하루의 라이딩이라면 반드시 이 코스.

# 카페 조천리 - 신창~용수 해안도로 - 수월봉  
# 전기 자전거 대여 C코스





제주에서 자전거를 탈 시간이 하루, 혹은 반나절만 주어진다면 나는 주저없이 신창-용수 해안도로를 다시 택할 것이다. 그만큼 짧지만 강렬했던 그날의 코스는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전기 자전거를 빌려서 탄 덕분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페달을 밟을 수 있어서 더욱 수월한 라이딩이었다.



  


온종일 자전거를 타려고 마음 먹었다면 아침부터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얼마남지 않은 시간, 아득바득 여행하기 보다는 평소처럼 여유로운 수준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원했다. '집착'말고 '집중'해서 남은 여행 시간을 효율적으로 나눠 쓰고 싶던 것이다.


그래서 오전에는 카페 조천리에 갔다. 첫 방문 때 인상적이었던 창가의 풍경과 여유를 꼭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인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카페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고, 푸짐한 브런치를 먹으며 오후의 라이딩에 대비한 에너지 보충도 해 뒀다.   



한가한 아침의 카페는 어떤 장소보다 여유롭고 아늑했다. 실내에는 잔잔한 연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만약에 대중음악이 울려퍼졌다면 결코 어울리지 않았을 은은한 분위기였다. 앉아서 프렌치 토스트와 소시지를 반 쯤 먹다가 환한 바깥이 좋아보여서 통유리 창가 옆의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얼굴에 와닿는 공기가 따스했다. 주변의 풀들을 스쳐오는 바람 소리에 새들의 지저귐이 섞여 들려왔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몇 번이고 들러서 하루의 시작을 함께했을 카페였다. 그런 장소가 이곳 말고도 여러 군데 있을 생각을 하니 한 달의 여행이 과연 제주의 얼만큼을 알게 해 주었을지 궁금했다. 하긴, 1년을 살아도 모든 곳을 갈 수는 없을테니 지나간 여행의 플러스만 생각할 일이지 아쉬움에 매인다면 한도 끝도 없을 터였다.  



그냥 작별하기에 아쉬워서 아주머님께 명함을 하나 부탁드렸더니 아직 만든 게 없다며, 사장님 내외의 연락처를 손수 종이에 적어주셨다. 마지막까지 마음이 참 좋고 정겨운 카페 조천리였다.





라이딩 코스를 정할 때는 나름대로 여러가지를 고려했다. 이왕이면 많이 보지 못한 해안 중에서도 차량으로의 접근성이 좋고 자전거를 쉽게 빌려탈 수 있는 장소여야 했다. 대형 자전거 렌탈 업체들은 대부분 제주 공항 부근에 있었는데, 제주 북부를 중심으로 좌우로는 차로 워낙 많이 다녔던 길이라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예전에 여행업 관련 업무 차 오가며 잘 알고 있는 렌탈점이 있었음에도 그곳을 선택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신창-용수 해안도로 라이딩 코스에 대해 알게 됐다. 일반 자전거 뿐 아니라 전기 자전거를 전문적으로 대여해 주는 업체에 대한 정보도 찾아냈다. 바로 그리로 향했다.

 


'제주 환상자전거길'은 올레길처럼 제주도를 빙 둘러 조성된 자전거 길을 일컫는다. 올레길을 걷거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다가 종종 표지판에서 그 이름을 확인하고 궁금해 한 기억이 있었다. 자전거 렌탈을 하기 위해 선택한 '제주 환상전기자전거'샵은 서부의 풍차 해안도로를 중심으로 적당한 코스를 나누어 놓고 손님들에게 바이크 장비를 대여해 주는 곳이었다.


해안에서 얼마간 내륙 안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한적한 식당 건물 1층에 렌탈점이 있었다. 바깥의 널찍한 공간에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자전거들이 늘어서 있음을 확인했다. 미리 연락해 놓지는 않았기에 혹시나 휴무나 부재중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사장님이 안에 계셨다. 간단히 A,B,C 코스의 차이와 대여 시간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2시간 이상인 C코스를 선택했다.



전기 자전거의 사용 방법은 간단하나 처음 타 보는 기종이므로 설명이 필요했다. 사장님이 직접 한 대를 밖에 가지고 나와서 설명을 해 주셨다. 포즈를 한 번 잡아보라더니 사진도 찍어주셨다. 둘 뿐이었던 바이크샵 앞에서 사장님은 사진을 찍고 손님은 똥폼을 잡는 모습을 누가 봤다면 꽤나 재밌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자전거 대여점의 안내대로라면 내륙 일주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서 바다쪽으로 돌아오는 코스였지만, 처음에 신이 나서 달리다가 방향을 잘못 잡았는데 굳이 돌아가기는 싫어서 해안 도로로 바로 나와 버렸다. 바다를 오른편에 두고 반시계 방향으로 달리는 게 제주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반적인 방향이긴 하지만, 이왕 짧은 시간을 타는 김에 방향이야 어떻든 해안 도로를 왕복하고 싶었다.  


마주오는 차량이나 자전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긴 했다. 주말이나 연휴의 제주 해안 도로에는 차량과 자전거가 많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우측 통행을 지키는 게 안전할 것이다. 어쨌거나 자전거를 탄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너무 행복했다. 올레길을 처음 걸었을 때와 오름에 처음으로 오르던 때의 환희가 생각났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는구나 싶었다.



여행 초반에는 2~3일 이상은 자전거로 돌아다닐 계획이었다. 중간에 생긴 뜻밖의 일정들만 아니었다면 사실 그리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여행의 끝무렵이었던지라 자전거 여행은 다음으로 미뤄야 겠다고 포기하던 차에, 너무 편하고 쉽게 제주 환상자전거길을 달리니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며칠씩이나 자전거를 타고 제주 해안을 달리는 일을 거창하게만 생각했는데, 다니기 시작하면 3~4일 쯤이야 금방 지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는 일단 출발해서 균형을 잡으면 페달을 돌리는 단순함의 반복만으로도 잘 나아가는 법이니, 그걸 타고 하는 여행은 더욱 그 속성을 닮아가지 않을런지.


처음 30분 동안은 정말 수시로 멈춰섰다. 해변과 바람과 자전거가 너무 좋아서 사진을 남기고 싶었고,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풍경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너무 오래 걸려 제 시간에 돌아가기 힘들겠다 싶을 무렵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페달을 밟아 나갔다.



신창 풍차해안이 눈 앞에 펼쳐졌다. 해외의 어느 풍경과 비교해도 손색없어 보였다. 풍차들이 잘도 돌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며 나 역시 바람을 실컷 맞았는데도 전기 동력 덕분에 힘이 많이 들지 않아서 편했다. 그동안 렌터카 대신 이걸 타고 다니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중산간 지대의 언덕과 비오던 날의 서귀포가 이내 떠올라 현재나 즐기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근에는 '바다목장'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는데 바다 위를 육교처럼 가로지르는 다리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인적이 드물어서 고요한 바닷가 너머로 풍차들이 줄지어 돌아가는 모습이 한없이 평화롭게 느껴지는 장소였다. 삼각대를 세워 놓고 자전거를 탄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혼자서 그 사진을 흐뭇하게 확인하며 난간에 기대어 서서 풍경에 취해봤던 기억이다. 배가 고파서 초코바를 하나 꺼내어 먹었는데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어쩐지 정적을 깨는듯 느껴졌을 정도로 주위는 차분했다. 





슬슬 방향을 돌려서 또 다른 반환점인 수월봉을 구경하러 가야했다. 오후가 깊어지며 노오란 태양빛이 구름 사이로 번져나왔고 그 아래에서 바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무척 짙었다. 





왔던 길을 거슬러 남쪽의 수월봉을 향할 때는 바다를 오른편에 두고 달렸다. 아까 봤던 해안이 한 번의 감상으로는 부족했는지 새로운 모습인양 펼쳐졌다. 이번에는 되도록 멈추지 않고 달렸다.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동력의 도움으로 빠른 속도를 내는 전기 자전거였다. 발에서 전해져 오는 묵직함이 자동차 엑셀을 밟을 때와는 또 다르게 좋았다. 윙윙윙 모터 소리에 맞춰 규칙적으로 발을 구르며 리듬감을 느꼈다.



당산봉을 끼고 돌아 엉알해안을 지나서 드디어 코스의 끝인 수월봉에 도착했다. 멀리 차귀도의 모습이 훤히 내다 보이는 전망 좋은 봉우리였다. 알고보니 그곳의 해안절벽을 따라 화산쇄설층 단면을 잘 볼 수 있어서 트래킹 코스로 유명하다고 한다. 일몰 풍경으로도 인기 높은 명소인데,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몰랐음에도 서쪽에서 이 정도의 전망이면 해질 무렵이 참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다. 



수월봉 전망대에서 내려와 자전거를 반납하러 돌아가던 길, 방파제에 줄지어 자리잡은 사진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따라 나도 잠시 낚시꾼들의 뒷모습과 바다를 감상했다. 차귀도 위로 저물어 가는 태양이 주황빛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배가 몹시 고팠다. 아무리 전기 자전거였다고는 해도 긴 코스를 열심히 달렸던만큼 배터리처럼 내 체력도 몇 칸 줄어든 게 당연했다. 근처에 유명한 수제 버거 맛집이 있어서 그리로 갔는데, 하필 사장님이 일찍 문을 닫고 들어가는 중이었다. 맛집을 더 알아보고 말고 할 겨를도 없어서 그냥 차를 타고 가다가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국밥집이었다. 원하던 메뉴에서 확 바뀌었음에도 허겁지겁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었다.


팔당이나 양평의 자전거 코스에는 초계 국수집들이 즐비한데, 제주도에서는 라이더들이 주로 뭘 먹는지 잘 모르겠다. 라이딩 후의 국밥이 맛있기는 했어도 지난 번 수영하고 난 다음에 먹었던 고기 국수에는 미치지 못했다. 자전거를 서너 시간은 더 타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제주도 자전거 여행의 속성 코스를 체험한 날이었다. '진짜' 라이더들이 보기에 두어 시간의 라이딩,  그것도 전기 자전거라면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날의 두 시간은 그것마저 해보지 않았더라면 제주에서 자전거 타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 짐작조차 못했을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예 모르면 모를까, 그 맛을 알아버린 후로 선선한 날이면 어김없이 제주의 환상자전거길이 떠오른다. 어디 식당 같은 데서 천장에 달려 돌아가는 팬을 보기만 해도 해안도로의 풍차가 떠오르곤 한다. 카페 조천리에서 브런치를 먹고 난 후 오후 내내 자전거 타기, 이게 바로 제주에 다시 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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