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덩케르크 (이동진의 라이브톡 관람)

시공간의 변주를 통한 전쟁 영화의 새로운 생존 방식

by 차돌

(본 감상은 지난해 7월의 개봉일 무렵 CGV아트하우스 이동진의 라이브톡 '덩케르크' 관람에 대한 기록을 재구성했으며,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 +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해설
더할 나위 없던 한 편의 대작 감상과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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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이름은 매우 익숙하다. 각종 TV 프로그램을 통한 영화 소개에서부터 라디오 DJ, 출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중들과 적극 소통하고 있는 덕분이다. 지난해 여름, 세계적인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모처럼 내놓은 10번째 장편영화 <덩케르크>를 감상한 뒤 이동진의 평을 자세히 들을 수 있던 라이브톡 관람은 그래서 더욱 특별한 기억이다.





1. 러닝타임 19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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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덩케르크의 러닝타임은 106분이다. 하지만 내가 위와 같은 소제목을 단 것은 영화 관람 후 쭉 이어진 이동진의 해설 90분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거의 영화 시간만큼이나 길었던 그의 해설은 그러나 지루하지 않았고 굉장했다. 단편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아서 거부감이 들지 않았을뿐더러, 어렴풋하게 느꼈던 영화의 이해를 깊이 있게 잡아줘서 친절함을 느끼기까지 한 평론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덩케르크에 관해 아무리 써보려 한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감상의 한계를 느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마치 문제집의 문제를 풀다가 답안지의 해설을 슬쩍 보고 난 듯한 기분이랄까. 그런 뒤에는 아무리 내 손으로 답을 써냈다 한들 과연 이게 내 힘으로 풀어낸 건지 해설 덕분인지 딱 잘라 분간하기가 힘든 그런 느낌 말이다. 이동진의 평론은 그만큼 깊이 있고 다층적인 해설이었다.


영화에 대한 해설과 평가는 어디까지나 평론가의 몫이겠고, 관객으로서 나는 '라이브톡'의 시간을 제외한 관람 시간 내내 몰입해서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다. <덩케르크>는 놀란의 영화 대부분이 그러하듯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토리이지만, 그의 전작들과 비교한다면 차라리 '단순한' 영화에 가까웠다. 감독의 전작인 <인셉션>처럼 다층적인 해석이 필요하지도, <메멘토>처럼 구조적인 이해가 필요하지도 않은 '직선적'인 영화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스텔라>와 같은 SF는 더더욱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 드라마라는 점에서 <덩케르크>는 굳이 평론가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소화해 낼 수 있음에 분명하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복잡한' 영화만이 '깊이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대단한 반전이나 기발한 전개 없이도 '전쟁'이라는 소재를 탁월하게 그려낸 영화라는 점에서 나는 감탄했고 전문 평론가인 이동진 역시 극찬했던 것이다.




2. 왜 하필 '덩케르크'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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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관람 전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덩케르크'라는 다소 투박한 제목뿐만 아니라 포스터의 낯선 주연배우 얼굴 아래에 적힌 글귀도 어쩐지 별로였기 때문이다. '조국은 그들을 버리자 않았다', 내가 제작사나 배급사 관계자였다면 결코 안 썼을 카피다. 만약 누군가가 '그러는 당신이 한 번 써 봐'라고 한다면 당장에 자신은 없다만(어쨌든 내게 그런 책임은 없으니 영화 감상 전의 주관적인 느낌을 논했을 뿐이다).


전쟁 영화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닌지라, 그나마 영화관에서 봤던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14년 작, <퓨리> 일 정도다. 브래드 피트 주연에 '역사를 바꾼 그들의 불가능한 전쟁'이라는 문구까지, 아무리 다시 봐도 <덩케르크> 보다는 <퓨리>가 재밌어 보인 이유는 단순하다. 때문에 나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대로 살펴볼 생각도 없이 단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였기 때문에, 그가 '다크 나이트'를 창조했듯 전쟁 영화를 통해 또 하나의 어떤 '기사' 혹은 '영웅'을 만들어 내려나 보다 하고 짐작했다.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기대가 적었기에, 생각한 방향과 완전히 달랐기에 <덩케르크>는 더욱 놀랍고 신선한 영화였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 악역을 맡았던 킬리언 머피와 톰 하디가 모두 출연한다기에 이번에는 전쟁의 어떤 잔혹함을 드러내는 인물들로 주목할만하겠다던 짐작조차 완전히 틀렸다. 영화는 배역의 설정만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역할에 의존하지 않는 서사 그 자체였던 것이다. 내게 있어 영화 <덩케르크>는 보기 전과 보고 난 후가 철저하게 다른 영화였던 셈이다.


이동진의 해설을 빌리자면, <덩케르크>는 전쟁영화의 대명사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는 대척점에 있는 영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지역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철수 작전을 그려낸 이 영화는 군인들이 적진 한가운데에 침투하는 영웅적인 이야기와 정반대의 내용인 것이다. 말하자면 <덩케르크>는 실제 있었던 전쟁에서의 '철수'를 다룬, 화려한 교전이나 초인적 승리로 포장할 수 없던 스토리상의 한계에 명확히 도전한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역사적 사건을 영화로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영국군의 철수가 주된 내용인 특성상, 영국 출신 감독으로서의 정체성도 제작의 큰 동기와 사명이었을 테다. 또한 그 스스로가 영화를 두고 '전쟁 영화가 아닌 생존 드라마'라고 밝혔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말을 일종의 수사(修辭) 정도로 받아들였으나 관람 후에는 이만큼 본인의 영화를 간결하게 표현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랐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덩케르크>를 통해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그는 기존의 전쟁 영화들이 지닌 보편적인 공식과 불가결한 오락성에서 벗어난 영화적 완성도를 위해 '덩케르크'에 도전했고 보란 듯이 성공해 영화 <덩케르크>에 대한 찬사를 이끌어 냈다.




3. 시공간의 변주를 통한 실화의 재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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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는 서로 다른 세 공간의 시간을 하나의 스토리로 절묘하게 풀어낸 영화다. 각각의 시간들은 육지 - 바다 - 하늘, 즉 육해공 세 공간에서 고유의 압축성을 지닌 채 교차하여 펼쳐진다. 이는 다시 이동진의 해석을 가져오자면 <인셉션>과 동일한 시간 활용법일 뿐 아니라 전작들과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공간의 변주'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덩케르크>는 스토리의 흐름을 비교적 간단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 더해 전쟁 영화로서의 현장감과 몰입감이 스크린 가득 펼쳐져 확실히 사실적인 감상이 가능한 영화다.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는 픽션이었기 때문에 시공간 활용의 폭이 매우 크고 복잡하여 관객들이 신선함을 느꼈던 동시에 다양한 해석 또한 가능했지만, <덩케르크>는 감독이 처음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만큼 특징이 다른 영화라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시공간 변주의 '방법'보다는 '목적' 자체로 이미 영화적 의미와 완성도를 획득한 영화라고 할까.


Take me home


극 중 주연배우 누군가가 내뱉었던 이 대사 한 마디는 그러한 영화의 목적과 감독의 의도를 잘 담아낸 대사이다. '정복' 혹은 '승리'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배재한 채, 심지어 '평화'나 '인류애' 등의 메시지도 없이 영화 <덩케르크>가 관객들에게 제공하려 했던 것은 감독 본인의 말대로 '생존에 대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흥미나 즐거움, 긴박감과 같은 영화적인 요소들만이 아니라 극 중 상황에 대한 이해와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과 같은 사실적 정서라고 본다. 그런데 영화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전자의 충족에 가려져 오히려 후자에 대한 만족도는 간과되기도 했는데, 놀란은 스토리텔러로서 이를 적극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시각으로 전쟁을 그려내고 싶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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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덩케르크가 영국군의 본토와 가까웠다고는 하나, 전쟁 중에 타지에 고립된 군인들에게 물리적 거리는 그리 중요치 않았으리라. 그들의 가슴속에는 그저 두려운 감정과 살고 싶다는 희망만 가득했을 거라고 누구든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전쟁터의 실상을 영화적인 기교를 통해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의 모습으로 그려냈더라도 <덩케르크>는 잘 만든 전쟁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영국군이 느꼈을 공포와 절박한 심정을 '주인공'의 시각으로 풀어내 결국에 그가 생존하는 스토리로 완성했더라도 영화는 많은 관객들을 끌여들였을 지 모른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놀란은 둘 중에 어느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물론 어느 한 가지 길이라고 만만할 거라는 보장은 없었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 '이게 좋겠다' 혹은 '저게 어떨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면 보다 쉽게 작품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비단 영화에서 뿐만이 아니라 많은 창작자들의 고민이 그러할 것이다. 소재가 아무리 다르다 하더라도 기존의 관행과 매뉴얼을 외면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덩케르크>는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전쟁을 그려냈느냐. 영화를 보면 반드시 그 특징과 차이점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참으로 훌륭한 완성작이다. 별다른 극적 요소나 갈등이 없이, 심지어 인물들 간의 특별한 대사 없이도 스토리는 힘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이어진다. 땅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저마다 다른 인물들이 겪어내는 상황이 넓은 화면 가득 펼쳐짐으로써 관객들은 말 그대로 영화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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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살아서 집에 돌아가고 싶던 군인들의 마음이 시공을 초월해 재현된 듯, 그렇게 <덩케르크>는 일반적인 '전쟁 영화'의 프레임 전쟁에서 탈출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존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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