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 Mar 29. 2018

정문정 작가와의 만남

모처럼 참 좋았던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사실 베스트셀러가 한창 인기리에 판매 중일 때는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삐딱하다면 좀 삐딱한 구석이 있는 성격 탓일까,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책이라 한들 서점에서 대놓고 홍보하고 진열하면 어쩐지 남들 따라하는 듯해서 구입해 읽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서점에서 보고 바로 사서 하루 만에 다 읽은 책이 있다. 제목과 표지가 너무 끌렸고, 작가의 이름을 어딘가에서 분명히 본 듯하여 펼쳐본 책의 이름은 바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하는 법'이라는 자기계발서식 제목에도 불구하고 첫 장을 읽고 나서 나는 이 책을 에세이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대 여성이 명확한 독자로 여겨진 초반부 서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내 꼭 그렇지만도 않은 책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술술 읽었다. 그만큼, 나는 작가의 글이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런치 메인에 '저를 발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정문정 작가와 만남의 자리가 있다는 공지를 봤을 때 어찌나 고맙던지. 차 안에서 막 흥얼거린 노래를 마침 바로 틀어준 라디오 DJ에게 느꼈던 마음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의 반가움으로 신청하는 방법을 봤더니 또 웬걸,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한 글귀를 댓글로 작성하면 되는 게 아니던가. 노트 한 장씩이나 옮겨 적었던 공감의 문구들이 있어서 그중 하나를 고르기 쉬웠다. 바로 '결핍은 그 자체로는 연약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무엇이라 믿고, 남에게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위대해질 수 있다'라는 문구였다. 나는 또 마침 '결핍'에 대한 소소한 에세이를 브런치에 쓰던 중이었다.


여러모로 겹쳐진 우연 끝에 실제로 북토크 참석자로 초대를 받고 나자, 작가와의 만남이 어떤 필연이자 인연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이렇게나 장황했다.





약간 일찍 도착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작가님을 바로 코 앞에서 볼 수 있을 공간은 처음 방문한 장소였지만 꽤나 편하게 느껴졌다. 브런치팀 스탭분들이 포스터를 붙이고 참석자를 확인하며 조금은 분주한 가운데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소한 간식과 맥주, 예고된 선물들이었으나 막상 받고 보니 더 고마웠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미리 간단한 요기를 하고 갔기 때문에 목만 마른 상태였던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맥주를 홀짝였다. 옆에 앉으신 어떤 분의 낯가림 없는 건배 제의에 반갑게 짠도 한 번 하고.


좌석을 가득 채운 40여 명의 참석자들 중 역시나 남성 독자는 많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서 3~4명 정도? 문과대에서 간혹 겪었던 일인데 오랜만에 그렇게 일방적인 성비 속에 있으려니 괜스레 쑥스러운 기분이었다. 간혹 그렇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지라도 나 혼자 괜히 신경을 쓰는데 그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아이고 뭐라는 건지, 북토크에 대한 솔직한 후기를 쓰려다 보니 사족도 생겨버리고 만다.



이윽고 정해진 시간이 되어 정문정 작가님이 등장했다. 실제로 본 그녀의 모습은 훨씬 더 친숙했다. 밝게 웃으며 브런치팀의 진행자 키미님과 나누는 대담에 금세 몰입할 수 있었다. 독자들의 질문들 중 처음으로 나의 닉네임과 댓글이 언급되어 반갑고 좋았다. 딱히 정해진 형식 없이 물 흐르듯 진행된 북토크를 따로 메모할 새도 없이 편안하게 집중했는데,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아래에 기록해 본다.

  




# 글쓰기의 시간과 조건에 대해


글에는 신기할 정도로 글쓴이의 감정이 드러나요. 퇴근 후에 피곤한 상태에서 쓴 글에는 감정의 찌꺼기가 묻어날 수밖에 없어서, 저는 제 자신이 가장 좋은 상태에서 글을 쓰려고 해요.


# 작가가 되고 싶은데 막막하다는 질문에 대해


반드시 훌륭한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도 20대에 주위에서 이미 상을 받기 시작한 친구들을 보며 뒤쳐지는 느낌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그 친구들 중에 지금도 글을 쓰는 사람, 거의 없어요. 자기가 정한 높은 기준에 미달할 경우에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를 해요. 기준 자체를 너무 높게 갖지 말고 열심히 쓰다 보면, 제가 이렇게 책을 써냈듯이 다른 분들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내가 좋은 글과, 남에게 좋은 글에 대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 번다는 거, 우리 사회가 잘못 주입한 직업에 대한 이상이라고 봐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쓸 때는 기본적으로 쉽게 써야 합니다. 저도 대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생각으로 에세이를 썼어요. 글을 쓰다 보면 흔히 멋있어 보이고 싶은 문장, 그럴듯해 보이는 글을 쓰고 싶은 유혹을 받아요. 저는 입말(책을 읽는듯한 글말과 달리 읽기 쉬운 말을 정문정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로 쉽게 읽히는 문장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글 잘 쓰는 사람들 참 많은데, 그들 중에서도 제가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기 위해서는 명확한 타게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랬기 때문에 저와 비슷한 여성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책에 사례를 많이 들었는데, 이때도 꼭 어렵거나 있어 보이려고 한 게 아니라 쉽고 흔한 예(김숙, 이효리)를 썼어요. 독자분들에게 '작가님은 작두 타시는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들을 수 있던 건 이렇게 쉽게 쓰려고 노력한 덕분인 것 같습니다.  


#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 무례한 상황들에 대해


저는 일단 무례한 상황이 오면 그 자리를 정리해요. 남들 앞에서 감정을 꼭 노출시킬 필요는 없으니까요. 특히 일과 일의 관계들로 묶인 직장에서는 스스로를 많이 노출시키거나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나도 모르게 남에게 무례할 수 있는 사람인데, 누군가가 저지른 언행 때문에 내 감정을 소비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말로 환기를 시키는 노하우가 있으면 좋아요.("그게 무슨 말이예요?"와 같은 반문) 한때 저는 TV에서 연예인 강**씨를 보면 그렇게 싫었어요. 그런데 심리학을 공부해 보고 시간이 지나니, 그게 저한테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거더라구요. 그걸 깨닫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다 보니 언제부터인가는 괜히 싫어하는 마음 같은 게 사라졌어요.

 

+ 내가 현장에서 궁금함을 느꼈으나 미처 묻지 못한 아쉬운 질문

Q. 책이 성공한 지금, 이후 작가님의 행보는 굳이 이 자리에서 여쭙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만약에 이 책이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작가님은 힘을 내서 또다른 에세이를 쓰셨을지 아니면 방향을 바꾸어 소설 같은 글을 쓰셨을지가 궁금합니다.

(정말 그 자리에서 딱 이 질문이 떠오른 건 아마도 글을 써 나가는 힘이랄까 원동력, 글쓰기의 방향과 관련해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해서였던 것 같으며, 그 궁금함이 여전하기에 덧붙인다)




역시 메모가 없어서인지, 개인적인 사정 상 북토크 후 바로 기록하지 못한 혼탁한 기억의 구성 탓인지 그 좋았던 내용의 일부를 떠올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대담의 순서나 말의 앞뒤가 뒤엉킨 기록이나마 굳이 써 본 건, 인상적이었던 작가님의 진솔한 말들을 조금이나마 더 붙들고자 한 개인적인 욕심이랄까. 적어도 하셨던 말씀의 알맹이에 왜곡은 없는 선에서 옮겨 적고자 노력했으니, 행여 이 글을 보신 작가님이 '어, 내가 그렇게 말한 건 아니었는데'라고 하실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다지 북토크라는 자리에 익숙하지도, 책을 읽고 작가 개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편도 아닌 사람임을 굳이 고백한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았음을 서두에 밝혔듯, 그만큼 내가 이번 북콘서트에 꼭 참석하고 싶었고 결국 참석한 일이 '개취'를 뛰어넘는 호감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생각을 정말 잘 풀어서 쓴 정문정 작가에 대해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여러모로 더욱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침 엊그제 여자 친구에게 책을 빌려준 탓(덕분)에 저서 앞장에 싸인받지 못하는 아쉬움을 작가님께 말했는데 경황없던 와중에 그녀가 기억하실는지. 나만의 '일기' 에 머묾이 아닌 타인에게 향하는'편지'를 얘기했던 그녀의 말마따나, 모처럼의 좋았던 책과 북토크에 대해 끄적인 나의 이 일기가 언제고 편지가 되어 정문정 작가님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스시는 언제나 옳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