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태나 : 삶과 죽음의 경계, 적은 누구인가?

무비패스 네 번째, 크리스찬 베일이라 믿고 본 미국 서부극

by 차돌


★★★★

* 흐름에 따라 스토리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결정적 내용이나 결말에 대한 스포는 없습니다.


#1. 제목, Hostiles / Mont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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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서부극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던 영화 <몬태나>,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미국 서부 몬태나 주의 이름 그대로가 제목인 이 작품의 원제는 'Hostiles'이다. 직역하자면 '적대적(감)' 정도일 텐데,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단어야말로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였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몬태나라는 이름으로 개봉을 앞둔 이유는 극 중 인물들의 최종 목적지라는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미 서부의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라 보인다.




#2. 이미지, 피트와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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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의 포스터를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가을의 전설>이다. 이 영화는 미 서부의 한 가문에 얽힌 삶의 굴곡과 로맨스가 광활한 자연,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진 말이 필요 없는 명작이다. 어려서 워낙 인상 깊게 봤기 때문에 지금껏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가을의 전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도 미국 몬태나 주였다는 점에서도 묘하게 연관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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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에 제목만큼이나 '레전드' 반열에 올랐던 브래드 피트의 젊고 야성적인 매력과는 달리, <몬태나>에서 짧은 머리에 덥수룩한 콧수염을 한 군인인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은 어딘지 핼쑥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차이만큼이나 영화 <몬태나>는 <가을의 전설>과는 완전히 다른 고뇌를 2시간 넘는 러닝타임 동안 풀어내는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명배우라 할 지라도 패기만으로는 다 감당할 수 없었을 노련한 대위 '조셉 블로커'(극 중 주인공)는 완숙한 중년의 크리스찬 베일이라서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다행이었다.




#3. 초반, 인디언과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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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는 평화로운 한 가정이 인디언들에 의해 유린당해 로자먼드 파이크(로잘리 퀘이드 역)만 살아남는 '죽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또 다른 인디언들이 미국 군인들에 의해 잔혹하게 포획당하는 모습이 나옴으로써 영화의 큰 대립이자 상반된 선악의 모순이 일찍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대위 크리스찬 베일(조셉 블로커 역)은 인디언들과의 치열한 전투 경력을 쌓아온 미국 군인으로, 퇴역을 앞두고 그가 받는 마지막 임무를 통해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블로커 대위에게 내려진 임무란 바로 과거에 악명 높았던 인디언 추장 '옐로우 호크' 일가를 고향 몬태나까지 무사히 귀환시켜 주는 일이다. 이러한 '군령'을 그가 수행한다면 주인공의 목적은 어쨌든 인디언의 무사 귀환이 될 테니 그들과 어우러져야 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관객으로서 나는 이미 단서를 갖고 있었기에 이 영화가 백인과 인디언의 갈등을 이분법적으로 다루지는 않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예고편에서 '우리는 모두 적이었다'라는 과거형 문구와 함께 펼쳐지는 인물들의 여정이 결코 과거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인디언들에게 강한 적개심을 보였던 블로커 대위는 심한 고뇌 끝에 결국 군령을 받들기로 결심한다. 심경의 변화에 대한 주변 이야기라든지 결정적인 계기 같은 건 없다. 대통령의 분부이므로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는 상사의 강력한 지시가, 과거 자신의 동료들을 살해한 인디언 추장을 호송하는 일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을 짓누른 것이다. 잠시 절규하는 크리스찬 베일의 메소드 연기는 짧고 강렬했다. 다만 그럼에도 상부의 지시에 따르는 전형적인 군인의 모습에서, 나는 미 서부 개척시대의 완고함 같은 걸 얼핏 엿보기도 했다.




#4. 전개_1, 서부극의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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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서부극 장르라 할지라도 '이동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몬태나>는 비슷한 인물 수로 한 마을을 '지켜내는' <매그니피센트 7>과는 무척이나 다른 영화다. 후자가 명작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오락 영화이며 한국 배우 이병헌이 출연했다는 점에서 높은 주목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몬태나>는 일단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부러 코믹적인 요소 같은 건 집어넣지 않은 진지한 영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 일행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또 이동하는 로드 무비다.


물론 이 작품은 무차별적인 총격전으로 많은 인물들이 그야말로 탕, 탕, 탕 죽어 나가는 서부 영화임에 분명하다. 그 속에서 주인공 크리스찬 베일의 극복과 생존이 돋보이는 건 영화적으로는 매우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 다소 허무한 건 어쩔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나는 현대 미국의 총기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문득 떠올랐다. 드넓은 대륙에서 생존하기 위해 집집마다 총기를 소지하는 게 당연해진 미국의 역사는 어디까지나 습득한 지식일 뿐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총기 사건을 뉴스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지식 따위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기관총 난사로 수십 명이 순식간에 죽어 나가는 현대의 비극에 비한다면 리볼버와 샷건 단발로 한 명 한 명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는 영화 속 모습은 차라리 더 현실적이라고까지 느껴졌다.


이렇듯 영화 <몬태나>에는 이주민 백인들과 원주민 인디언들의 갈등 구도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둘러싼 철학 또한 녹아있다. 가족을 잃고 비통함에 빠져있던 퀘이드 부인이 블로커 일행에 합류하며 던진 한 마디, "신을 믿나요"라는 질문이 단적인 예다. 잔인한 죽음을 딛고 생존을 향해 나아가는 개인의 자조적 반문이자, 거칠었던 미국 근현대사를 헤쳐온 청교도인들의 근본적 고뇌라는 생각이 들었다.




#5. 전개_2, 횡 대열의 평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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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에 대한 단상이든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이든, 분명 영화는 영화다. 지나친 추론이나 생각은 오히려 순간의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기에 때로는 그저 스크린을 응시하는 게 최고의 몰입이며,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평할 때 '영상미'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그런 면에서 <몬태나>는 미 대륙의 광활한 낮과 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화 중간중간에 펼쳐지는 횡적인 이동의 풍경은 특히 내 눈에 띄었던 시각적인 요소다. 감독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크린의 안쪽으로 시선이 죽 들어가는 행렬의 수직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좌우로 길게 이어진 수평적인 구도에서는 어떤 따스함이나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의외로 곳곳에서 긴박한 영화의 스토리로 인해 비교적 평화롭게 거니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이완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퀘이드 부인 가족을 살해한 코만치 족의 추격뿐만 아니라 몇몇 극적인 에피소드가 있는 덕분에 <몬태나>는 다소 긴 러닝타임과 서사에도 불구하고 늘어지지 않았다. 물론 훨씬 박진감 넘치고 기발한 영화들에 비한다면야 잔잔하다고도 볼 수 있는 영화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걸 기대하고 영화관에 들어서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흐름에 꽤나 만족했다.




#6. 절정, 죄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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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갈등은 군인과 인디언의 대립이 아닌 미국 군인 사이에서의 입장 차이를 통해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야말로 다시 한번 <몬태나>가 결코 단순하거나 일방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블로커 대위는 몬태나로 가던 중간에 들른 병영에서 또 하나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군사 재판에 회부될 죄수 한 명을 추가로 호송하는 일인데, 인디언들을 멋대로 살육한 죄로 갇혀 있던 이 군인은 과거 어느 전투에서 블로커를 보좌한 부하였던 구면의 인물이다.


죄인의 신분으로 몸이 구속되어 끌려다니는 그는 블로커 대위에게 의미심장한 말들을 쏟아낸다. 과거 동료들의 죽음을 기억한다면 저 인디언들(옐로우 호크 일가)을 지켜줄 수는 없을 거라며, 블로커가 안고 있던 고뇌의 아픈 지점을 질책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당신과 내가 대체 다른 게 뭐냐며, 오히려 당신이야말로 자신보다 심하게 인디언들을 죽이지 않았냐며 모든 일행 앞에서 블로커 대위를 비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죄인의 불평에도 블로커 대위가 생각만큼 분노하지 않은 건 그도 얼마만큼 마음에 죄책감을 안고 있기 때문인 걸까. 비교적 담담하게 응답하는 조셉의 이 한 마디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But I was just doing my job.


묶여있는 자신과 눈 앞에 선 당신의 처지가 어쩌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비난'에 대위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내뱉은 말이다. '난 그저 나의 일을 했을 뿐'이라는 대답은 그러나 무책임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물론 인디언의 입장이라든지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어떤 옳고 그름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본다면 결국 '우리는 모두가 적이다'라는 영화의 포스터대로 모두를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7. 결말, 증오없는 새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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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영화 포스터로 돌아가 볼까 한다. 가족을 잃고 정신을 놓았던 퀘이드 부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총 한 자루를 결연히 쥐고 있는 모습과, 산전수전 다 겪어 냉철할 것만 같은 블로커 대위가 회한 가득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인디언 옐로우 호크의 표정은 대위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나는 이러한 포스터의 이미지야말로 'Hostiles'라는 원제만큼이나 영화의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몬태나>를 관통하는 시대적 진실은 비록 미국의 것이라 할지라도 착취와 정복, 방어의 역사라는 점에서 우리의 과거와도 충분히 맞닿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단순히 승자의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모두의 역사로서 증오 없는 삶,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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