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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pr 23. 2018

을의 자조와 갑의 횡포.

그저 조가네 갑오징어를 맛있게 씹고 싶었을 뿐이라구요.





매콤한 오징어 요리가 생각날 때면 부모님과 함께 찾는 식당 하나가 있다. 바로 '조가네 갑오징어'. 프랜차이즈 음식점인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군데 점포가 있는 덕에 가끔 들러서 오징어 요리를 맛있게 먹곤 한다.


며칠 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들른 그곳에서 그러나 나는 잠시 불쾌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먼저 확실히 밝히자면 식당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오징어 요리는 여전히 맛이 좋았고, 손님이 북적이는 분위기도 평소와 다름없는 그런 날이었다. 



다만 조가 갑오징어라는 간판에서 사회적 이슈 하나가 떠올랐고, 식당 내 TV에서 그것을 다룬 짜증나는 뉴스를 보느라 그만 밥맛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비행기를 타러 특별히 공항에 갔던 것도 아니고 그저 저녁을 먹으러 간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엉겨 붙은 생각이다 보니, 이런저런 기억들까지 떠오르고 말았다.





이른바 '갑질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수시로 비슷한 뉴스거리를 접하다 보니 무뎌질 법도 하건만, 새로운 기업과 새로운 인물에 의해 벌어진 사태를 접하다 보면 어쩜 그렇게도 참신하게 기가 막힐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그저 남의 일로 여기거나 일부의 상황으로 한정하기에는 이른바 '갑을관계'의 불평등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해 있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분개하고 있다.


사실 특별하다고는 볼 수 없는 몇 년의 직장 생활에서 큰 수모를 겪었다거나 반대로 횡포를 누려본 경험은 더더욱 없기에 나는 절대적인 을도, 갑도 아니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행운이라면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나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기에, 일상적인 경험에서나마 겪어봤던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아래에 짧게 얘기해 보고자 한다.

  



소개할 두 사례를 먼저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기업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겪은 '을의 자조'와, 중소기업(스타트업)에서 본의 아니게 목격한 '갑의 횡포'. 보통은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갑의 횡포와 중소기업에서 겪는 을의 자조를 얘기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내 경우에는 정확히 그 반대다. 갑을의 일반적인 역학에 반하는 상황에 대해 나는 말해 보려고 한다. 요컨대 대기업(갑)도 얼마든 을일 수 있고, 중소기업(을)도 얼마든 갑일 수 있는 상대성을 논하고자 보잘것없는 경험이나마 풀어보려는 것이다. 


#1. 대기업 - 을의 자조

소위 대기업 계열사에 근무하던 신입 사원일 때의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계열사 '을'은 같은 그룹의 다른 계열사 '갑'으로부터의 수주에 크게 의존하는 회사였다. 그러다 보니 내 선배들은 수시로 불만을 늘어놓았다. 같은 빌딩에서 일하는 '갑' 사람들이 다른 고객사보다 오히려 더 지독하다고 시작된 불평은 결국 우리가 '을'이니 어쩌겠냐는 자조로 끝나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선배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들의 불평에 노출된 동기(신입)들이 어느새 우리를 '을'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져 가는 모습이 너무 이상했다. 사람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도 쉽게 타인의 경험을 내재화하는구나 싶었다. 이미 정해져 있던 갑을의 위계에서 출발했기에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을임을 자처하거나, 반대로 갑으로서의 당연함을 누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보기에 불합리한 업무 분장인데도 익숙한 듯 우리에게 추가 사항을 요구하던 '갑'회사의 신입 직원을 보며 그러한 나의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을의 자조는 갑의 당연한 요구를 먹고 날로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2. 중소기업 - 갑의 횡포

이번에는 중소기업에서의 얘기다. 그 전 회사에서 그나마 누렸던 '을'의 지위조차 없는 '병', 그도 아니라면 '정'의 위치에 다름없었기에 나는 '갑을관계' 같은 건 큰 회사들 사이에서나 있던 얘기일 거라 여겼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일당백까지는 아니어도 일당 오십은 해내야 하는 작은 스타트업이다 보니 제휴사, 고객사들을 직접 상대할 일이 오히려 훨씬 많았고 이 과정에서 나는 또다시 '갑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대행사를 거쳐 대형 회사의 마케팅팀에서 다년간 근무했다는 과장급 인사가 나의 상사로 새로 부임한 상황이었다. 우리의 목표치 달성을 위해 어떻게든 광고 대행사를 '쪼아야 한다'던 그녀의 지시는 내가 보기에 작은 갑의 횡포에 다름없었다. 이런 업무에서는 '우리가 갑'이라며 짐짓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려던 그녀의 말은 더더욱 부당하게 느껴졌다. 대행사 출신이라고 해서 대행사를 이해해 주는 게 결코 아니라 이용할 뿐인 게 과연 한 사람의 성격 때문인지 전세의 역전 때문인지 좀처럼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작은 회사에서나마 상사가 '갑'을 자처하며 휘두르는 권위의 단면을 엿본 나는 갑을관계에서 중요한 건 기업의 규모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스스로가 을이라고 자조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막상 조금이라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보면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갑의 횡포는 을의 자조를 내뱉었던 자들의 복수인 것만 같았다.




여기까지다. 내가 겪었던 을의 자조와 갑의 횡포는 그렇게 흔히 여겨지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반대의 구조에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썩 유쾌하지는 않던 기억인 건 분명하다. 요컨대 나는 '우리가 을이니까'라는 자조도 싫었고 '우리가 갑이에요'라는 당부는 더더욱 싫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는 사회에서의 갑을관계를 놓고 불편하니 어쩌느니 하는 건 딱히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냥 성격이 그래서다. 나름대로는 견뎌도 봤지만 결국 나란 놈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잘 해내지도 못할뿐더러 남에게 요구할 일을 관철시키지도 못하는 모자란 놈인지라 수직적인 위계일수록 진저리를 치곤 해왔다.


비록 그러한 나일지라도, 부모님과 사이좋게 들른 식당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을 권리마저 방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오징어 요리는 먹기 좋게 잘 익어 있었다. 좀처럼 결론도 없이 갑에서 을이었네 을에서 갑이었네 되는대로 생각해 내는 걸 보니, 당분간 나는 조가네 갑오징어에서 조가네, 조가네 중얼거리며 오징어나 씹을 팔자인 건지도 모르겠다.

 

<을의 절규>  출처 : 오마이뉴스 김동준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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