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 와로(WARO)레몬하우스에서의 2박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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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 후 훌쩍 떠났던 그 한 달의 여행에 철저한 준비나 목적 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오히려 그러했던 덕분에 더 많은 것들을 온전히 느끼고 즐길 수 있었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막상 한 달이라는 기간을 홀로 지내는 동안 아쉬운 점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숙소였다. 좋은 호스트 덕분에 여러모로 호의를 입었으나 사람 욕심이란 참 그랬다. 돌아다닐 때야 여럿이면 몰라도 하루의 일정을 끝낸 뒤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어느 때보다 소중했던 시기였다. 이에 한 달 여행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게 바로 온전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지닌 사람들의 경험과 염원이 전해져서일까. 어느덧 '한달살기'는 확고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이에 따라 무엇보다 중요한 숙소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와로(https://waro.co.kr)가 특히 눈에 띄었던 건 내가 근무했던 초창기 스타트업을 떠올리게 해주는 열정과 풋풋함이 왠지 강하게 느껴진 사이트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WARO가 직접 운영, 관리하는 한달살기 숙소 '레몬하우스'에서 이틀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한 숙박을 하고 돌아왔다. 여유만 된다면 그곳에서 스무여덟 날을 더 지내다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을 만큼.
일기예보를 보니 종일 그러할 날씨였다.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괘념치도 않았다. 작년 한 달의 기간 동안 며칠 간 비 오는 날의 제주를 겪었던 덕분이리라.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제주는 제주라서 그냥 좋을 뿐이다.
비가 오고 있었기에 레몬하우스에 체크인을 하러 더 일찍 찾아갔다. 난 보통 여행을 하면 야외에서의 한낮을 충분히 즐기느라 아무리 좋은 숙소라도 저녁 이후에 체크인을 하는데 날씨 덕분에 숙소가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공항 인근에서 렌터카를 인수해 내비게이션에 레몬하우스의 주소(귀덕6길 24)를 입력했다. 30분이 채 안 되는 거리,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하귀-애월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가 내륙 방면으로 조금만 진입하면 나오는 곳이었다.
인근 지도를 미리 보고 예상은 했으나, 레몬하우스 건물은 생각보다 한적한 벌판에 위치했다. 해안에서 내륙으로 진입하는 1차선 도로가 마치 숙소로 향하는 별도의 통로인양 매끄럽게 이어져 있었다. 날씨 탓에 아무래도 희끄무래한 풍경이긴 했으나 그건 또 그것대로 특별한 첫인상이었다.
미리 친절한 안내를 받은 덕에(황 팀장님, 현지 매니저님 감사요) 주차 후 짐을 꺼내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예약을 확인하고 열쇠부터 받아야 하는 일반적인 펜션의 체크인에 비해 확실히 젊고 세련된(?) 인상을 받았다. 두 동 건물 자체의 외관은 수수했으나 하얗게 칠해진 현관 입구에서는 왠지 모를 설렘 같은 걸 느꼈다. 문 위의 작은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니 바다와 숲이 그림처럼 눈에 박혔다.
여행 첫날의 체크인 이후 마주하는 숙소 거실의 모습은 앞으로 이곳이 여행 동안의 휴식처라는 확인을 시켜주며, 여행 마지막날 체크 아웃 시에 돌아보는 거실의 모습은 이곳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되새겨 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레몬하우스 거실의 깔끔함은 이곳이 한 달을 지내기 충분하도록 준비된 공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 주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넓은 창이 시원해 보였고, 탁자며 거울뿐만 아니라 부엌 사이에 놓인 테이블의 배치가 좋았다. 펼치면 2인이 눕기에 충분한 소파베드에 털썩 앉아보니 푹신하니 무척 편했다. 벽이며 가구, 바닥의 대리석까지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이라서 더욱 깔끔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원래 여행기에 숙소에 대한 언급은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도착해서 찍은 곳곳의 사진을 간단히 소개한다. 안쪽 방에는 싱글베드가 나란히 두 개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다용도실에 세탁기와 함께 빨래를 널 수 있는 건조대까지 잘 구비돼 있었다. 청소기도 있는 걸 보며 진짜 이곳은 며칠 놀다 가는 게 아니라 한 달을 통째로 임대하는 아파트 같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이나 한 공간에서 지내려면 은근히 부엌이 중요하다. 매일 간단한 아침 식사를 편하게 해 먹을 수 있어야 하며, 가끔은 저녁도 직접 조리해 먹을 수 있어야만 연이은 외식으로 인한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실과 방 사이에 널찍하게 위치한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사이로 다양한 식기들이 눈에 띄었다. 작년에 내가 이곳에서 지냈다면 최소한 전복 해물탕은 해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화장실, 욕실의 편리함 또한 숙박시설에서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하면 아이유 임슬옹 듀엣곡이다. 내 기준에서 레몬하우스 욕실은 규모로나 깔끔함으로나 딱 적당했다. 비데까지 있는 걸 또 확인하며 확실히 한 달의 여행 동안 어느 면에서나 지저분해질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2박 여행을 떠나기 전, 아무리 그래도 최대 4인이 사용 가능한 공간을 나 혼자 쓰는 건 너무 사치라고 생각됐다. 여자 친구와 친구 부부를 꼬셔서 이번 일정에 동참시킨 이유다. 덕분에 아주 살뜰하게도 숙소를 누구보다 잘 이용하고 왔다고 여겨진다.
작정하고 마음을 걸어 잠그지 않는 한, 30일의 여행 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만나기 마련이다. 실제로 나는 작년에 기존 지인들의 제주 방문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새로 사귄 사람들로 인해 혼자서 지낸 시간이 한 달 중 열흘 남짓이었을 정도다. 그래서 더욱 지난 여행에서는 독채가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이틀이나마 레몬하우스에서 친구들과 넷이서 지내본 결과, 조용히 혼자 지내기뿐만 아니라 여러 명이서 더불어 단란하게 머물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숙소였다. 시간 여유만 됐더라면 술도 더 마시고 TV도 같이 보며 여유를 부렸겠지만 그러기에는 어렵사리 함께한 커플 동반 여행의 2박은 아무래도 짧았다.
아무튼 나의 초대로 급히 비행기 티켓만 끊고 온 친구 부부에게 나와 여자 친구는 마치 우리의 신혼집을 소개하듯 숙소를 안내했다. 슬몃 제주에서의 신혼 생활을 꿈꿨을 정도였는데, 여자 친구의 의중은 아직 잘 모르겠다.
때문에 이들 사이에 위치한 레몬하우스의 접근성은 말하자면 표선 해수욕장에서 놀고 해비치에서 숙박하는 수준이랄까. 오히려 붐비는 해안에서 얼마간 떨어져 있는 한적한 숙소라는 점에서는 해비치나 여타 리조트들보다도 낫다는 생각이다. 아침 일찍 조용히 주변을 산책하며 제주도 특유의 돌담길을 거닐고 싶은 사람에게는 특히나 그러할 것이다.
체크 아웃을 한 날은 첫날에 비해서 맑았지만 여전히 흐릿한 날씨였다. 그만큼 2박 3일 내내 좀처럼 쨍한 햇빛을 허락해 주지 않은 제주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그 덕분에 좀 더 '머묾'에 집중할 수 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나서며, 제주를 떠난다는 느낌보다는 숙소와 작별한다는 아쉬움이 어느 때보다 컸다. 그날 저녁 비행기인 덕에 여행 시간이 아직 남아있던 영향도 물론 있었겠지만, 더 머물고 싶은 공간이 아니었다면 그런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주가 정말 살아볼 만한 곳이라고 느꼈던 작년과, 그중에서도 한 달 이상이라면 이런 곳에서 지내야겠다고 느낀 올해. 다음 해에는 과연 제주에서 나는 또 어떤 생각을 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