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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이 Nov 01. 2024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2.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익숙함에서 벗어날 채비를 마치고 약속 장소인 영월 터미널로 내비게이션을 입력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가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켜 핸들을 꽉 잡았다. 자동차 엔진소리는 나에게로 떠나는 정의 신호였다. 확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느낌은 마치 꽉 막힌 하수구가 뚫리듯 마음마저 시원했다. 평지를 지나고 운무가 드리운 산등성이를 지났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는 터널이 유난히 많았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은 지리산 허리를 뚫고 터널을 만들어 좀 더 빠르고 곧게 만든 도로였다. 인간들의 편리함을 위해 자연을 훼손한 느낌이 들어서 가는 내내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우리는 자연에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지리산 아래로 울창한 숲은 모든 것들을 다 품어줄 것처럼 포근해 보였다. 산꼭대기쯤 다다랐을 무렵 휴게소가 보였다. 지리산 휴게소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 휴게소가 있다니 신기할 정도였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휴게소에 잠시 구경하듯 들렀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가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길에는 휴게소가 없었다. 25년을 쉬지 않고 워킹맘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누군가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한 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가족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보다 늘 가족이 우선이었다. 모든 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었다.


산등성이에는 운무가 하얀 이불을 덮은 듯 운치 있게 흩뿌려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하얀 이불이라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구름을 보며 하얀 이불이라고 표현한 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큰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쯤 되었을 것이다. 결혼을 시작하고부터 줄곧 맞벌이했으니, 출퇴근길에도 아이들은 늘 자동차 뒷좌석에 함께 따라다녔다. 비가 오는 날이면 평소보다 출근 준비가 더딘 데가 우산까지 들어야 하니 짐도 많았다.


기저귀 가방을 챙기고 아이 둘을 차에 태우는 것까지도 버거울 때가 있었다. 잠이 덜 깬 아이를 보듬어 안고 집을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분초를 다투는 아침 시간이다. 아이 둘을 뒷자리에 태우고 유치원으로 가는데, 신호등에 차가 멈춰 섰다. 큰 아이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엄마! 그런데 산이 하얀 이불을 덮고 있어요? "

"어디? 산이 이불을 덮고 있니?"


 신호등에 파란불만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그때야 앞산을 바라보았다. 그랬다. 산허리쯤 돼 보이게 하얀 이불을 덮고 있었다.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하얀 구름이 반쯤 산을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 아이 눈에는 이불을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 표현이 어찌나 예쁘던지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표현이 맑아이들은 가끔 시인이라는 생각이 때가 있다. 시인들은 아이들과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다.


 지리산 고개를 넘으니, 날씨가 더 흐렸다. 짙은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곳을 지날 때는 속도를 더 늦추었다. 산허리를 돌아갈 때는 빗길이라 더 조심해야 했다. 이럴 때는 천천히 가는 것이 더 빠르게 가는 방법이다. 우리 인생도 앞을 볼 수 없이 막막하기만 할 때는 나에게 집중하면서 조금 느리게 가는 것이 현명하다. 인생의 속도를 늦추어야 할 때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를 돌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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