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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이 Oct 31. 2024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1. 익숙함에서 멀어질 나이

 창밖으로 보이는 천변에 줄지어 늘어선 가로수가 눈에 띄었다. 바람결에 매달려 있는 나뭇잎이 흔들렸다. 낙엽이 지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눈부시게 화려한 꽃을 피우고 뜨겁던 여름을 보낸 벚나무다. 벚나무는 일 년 동안 열심히 살아왔던 옷을 벗어던지고 이제 낙엽을 떨어뜨리며 익숙함에서 멀어져 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그 모습이 익숙함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나의 나이와 닮았다.


 그동안 아이 둘을 키우느라 앞만 보고 달려왔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교 미끄럼틀에서 떨어졌을 때 엄마의 심장도 함께 떨어졌다. 친구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 앞니가 부러졌을 때 엄마의 치아도 함께 부러졌다. 대입 시험을 보기 위해 시험지를 부여잡고 있을 때 엄마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겨울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대문을 잡고 있었다. 


  아이들이 아픈 만큼 엄마도 아팠다. 친구들과 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엄마도 함께 성장했다. 아이들이 사춘기로 방황하면 엄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모른 채 흔들렸다. 세상에 태어나 엄마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툴다. 그저 한걸음 뒤에서 지켜만 볼 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긴 방황의 터널에서 잘 빠져나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기다려 주는 것이 전부이던 때도 있었다.


 공자는 50이라는 나이를 일컬어 하늘의 뜻을 알고 순응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하여 지천명이라 했다. 지천명이 넘어서야 삶에 대한 용기가 생긴 것일까. 익숙한 것만 하던 내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졌다. 익숙한 하루를 잘게 쪼개서 보면 어제와 똑같은 삶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일상을 큰 덩어리로 보면 어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똑같은 반복이다. 큰 이벤트가 없는 삶, 어쩌면 그것이 더 감사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분 좋게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식탁에 앉았다. 며칠 전 선물로 받은 커피가 생각났다. 커피 향이 궁금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고흐 작품이 그려진 포장지에는 푸른 저녁 빛 그림이 그려져 있다. 미술작품은 커피를 더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만들었다. 예술 작품을 찢듯 커피 포장지를 뜯었다. 원두 가루가 들어있는 봉지를 꺼내 흰색 머그잔에 걸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원두 가루와 뜨거운 물과 만나면서 나오는 70%의 아로마 향을 그대로 전해진다. 부드러우면서도 은은한 커피 향이 세련되고 되게 고급스럽다. 흡사 고흐의 작품과 닮아있다. 천천히 우려낸 커피를 준비하고 식탁에 앉았다. 커피 맛이 쓰다는 건 편견이라는 걸 가르쳐 주는 맛이다. 상큼하고 깔끔하다.


 무심히 핸드폰을 들었다. 인스타 피드에 지리산 둘레길 걷기 모집공고가 눈에 띄었다. 순간 익숙함에서 잠시 멀어지게 하기에 좋은 이벤트겠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라면 몇 시간을 걷는지? 어떤 코스를 걷는지? 이러한 현실적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자연과 하나 되는 행복한 상상과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만남에 설렜다.


 드디어 약속된 날짜가 되었다. 여느 날과 같이 새벽 기상으로 애견 마루와 산책하러 나갔다. 전날 가을비치곤 제법 많은 비가 내렸기에 땅이 촉촉했다. 젖어있는 바닥을 싫어하는 마루는 신발이 없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듯 걷기를 주저했다. 어쩔 수 없이 마루를 앉고 산책을 마쳤다. 새벽 기온이 걷히자, 아침 태양이 뜨겁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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