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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고미 Jun 23. 2024

61. 어쩌다 한국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 계획은 계획일 뿐

실습만 끝내고 하고 있던 과정을 끝내기로 마음 먹었다.

실습에서 주는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과연 이렇게 가는 게 맞나라는 물음표가 너무 많이 떠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 담당 선생님께 그만둘 거라는 의사를 전달하고 8주간의 실습 중 3일만을 남겨 놓은 그 날...

갑자기 한국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장 한국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실습지에서 눈물바람으로 옷을 갈아 입고 짐을 챙겨 나왔다.

다들 무슨 일이지 쳐다보긴 했지만 그걸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마침 재택근무 중인 남편에게 연락을 해서 중간지점에서 만나 거의 기대서 오듯 겨우 집으로 왔고

당장 그 다음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짐을 어떤 정신으로 쌌는지도 모르게 짐을 싸고 다음 날 난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갑작스러운 롱디에, 이런 일로 한국에 가는 게 참 마음도 몸도 무거웠다.

고장난 눈에선 눈물만이 계속 흘렀다.


여권이 6개월이상 남지 않은 남편은 바로 여권을 새로 발급받아서 나를 따라 한국으로 오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우린 기약없는 롱디...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가는 길은 직항이 없다.

몸도 마음도 힘든데 최소 경유 1번으로 대한항공을 예매했다.

먼저 스톡홀름에서 런던으로 가는 SAS 비행기를 탔다.

이제 영국이 EU국가가 아니라서 절차가 좀 더 추가되서 시간이 더 걸렸다... 번거롭군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런던 공항에 도착해서 COSTA에서 시간을 때우며 토스트랑 커피를 사먹었다.

배가 고픈 줄은 몰라도 어지럽긴 했다.

공항에서 기다리며 남편과 보이스톡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익숙한 한국어가 많이 들렸다.

스웨덴에서부터 한국 땅을 밟기까지 한 17시간쯤 걸렸다.

스톡홀름에서 런던까지 약 2시간 반

환승시간 2시간 반

런던에서 인천까지 12시간


공항에서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용산역으로

그리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도착할 것 같아서 우선 친구집으로 하룻밤 신세지러.

용산역 뚜레쥬르에서 사먹은 샌드위치와 커피

한국에 온 것을 실감했다.

하루에 한끼로 연명하는 고된 여정...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친구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지만 편의점에서 좋아하는 김밥과 보리차로 끼니를 때웠다.

역시 한국이다!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엄마랑 한숨 돌리러 카페로 왔다.

끼니도 못챙기면서 버티려니 체력적으로 참 힘들었다.

그렇다고 뭐가 먹고 싶은 건 아니고...

커피랑 디저트로 당을 채우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 카페들은 참 예쁘고 다양하고

이런 것들을 즐기러 온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왔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나를 걱정한 친구가 불러내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본인도 야근하면서 친구 끼니를 걱정해주는...

1+1의 늪이다...

보리차

그리고 가장 최애 햄스페셜토스트

타지에서 퇴근하고 날 보러 와준 친구와 함께

부대찌개

다들 갑작스럽게 내가 한국에 온 것을 알고는 놀라고

다들 내 끼니를 걱정하고

할 수 있는 말은 없지만 그냥 서로 바라보고 한숨쉬고

그래도 그것도 위안이 되었다.

고맙다.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김밥

한입에 다양하게 먹을 수 있고 간단하고

이것저것 먹을 필요없고

좋다!

그리고 소금빵

실컷 먹어보고 있다.

호텔을 전전하다가 에어비앤비도 잡아서 묵었다.

처음으로 묵어보는 복층

이런 느낌이구나.

보기엔 좋아도 살기엔 썩 편하지 않은 거 같다.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셨다.

부모님은 일정상 다시 고향으로

나는 혼자 남아서 이곳을 지켰다.

버티려면 먹어야 해서 혼자서 대구탕을 먹으러 갔다.

혼자 온 내가 신기했는지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자꾸 쳐다보고 혼자온 것을 두어번 씩 확인했다.

늦은 점심이라 제일 늦게 들어가서 제일 늦게 최후의 1인으로 남아서 먹고 나왔다.

한 그릇에 14 000원... 한국도 많이 올랐다.

여권을 해결하고 3주가 넘어 남편이 왔다.

든든하고 위안이 된다.

사실 남편이 한국어도 서툴고 뭔가 실질적으로 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그래도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정신적으로 내가 의지할 수 있었다.

내가 혼자 있는 거 보다 남편이 오니 부모님도 덜 걱정을 하시는 거 같았다.

한국 속 스웨덴 찾기

남편이랑 밤에 숙소로 돌아가면서 이마트를 탐방했다.

우리의 가장 좋아하는 마트 구경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다.

내가 한국에 온 지도 거의 한달이 다 되었고 남편은 이제 겨우 시차를 이겨내는 거 같다.

비가 주룩주룩 많이 내리는 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새삼 시간이 더딘 거 같으면서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매일매일 생각중이다.

부디 잘 풀리길

부디 잘 해결되기를

부디 잘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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