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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승진변호사 Sep 16. 2021

사형제도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변호사의 일상과 생각 (2)

내가 중고등학생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토론 수업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가 사형제도 존폐에 관한 것이다. 


또한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종종 사형제도에 대해서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고 전문가들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각각의 논리를 내세우며 대립한다.


과연 사형제도는 존치되어야 할까, 폐지되어야 할까?


나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故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사형선고나 인혁당 사건처럼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나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의 인권을 포함한 기본적 인권의 문제 등도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잘못된 판단으로 집행된 사형은 되돌릴 수가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 포털사이트에서 ‘죽기 전까지 결백 외친 남자, 사형 뒤 무죄 증거 나왔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레딜 리라는 미국인 남성이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아 2017년 4월 20일 사형이 집행되었는데 유죄 인정의 결정적 증거인 범행에 사용된 흉기에서 제3자의 DNA가 나왔다는 것이 4년 후인 2021년 4월에 공개되었다는 것이다. 



https://news.v.daum.net/v/20210524021257751

 


만일 위와 같은 사실이 사형 집행 전에 발견되었다면 레딜 리는 사형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형이 집행된 지금에 와서 그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언제나 오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잘못된 판단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낳은 사건은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재심’의 모델이 된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완주 삼례 나라슈퍼 강도살인사건, 그리고 가장 최근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8차사건 등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십 년의 옥고를 치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 물론 이 사건들은 사형이 선고된 것은 아니었으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분들의 인생이 돈으로 배상될 수 없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인간은 언제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혹자는 -위 기사에 달린 일부 댓글을 비롯하여- 오판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사건에 대해서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면 된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오판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건은 사형을 선고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유죄를 선고하면 안 된다. 그것이 국민들이 국가 형벌권을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전제이다. 


그리고 ‘오판의 여지가 없다.’는 것 자체가 오판일 수 있다. 레딜 리의 경우를 보자.  


레딜 리가 유죄라고 판단한 배심원들은 자신이 오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유죄라고 판단할 것일까? 미국의 배심재판에서는 12명의 배심원 중 한 사람이라도 피고인이 무죄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유죄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딜 리에게 유죄가 선고된 것은 12명의 배심원들 모두가 오판의 여지가 전혀 없이 유죄가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오판의 가능성이 없는 확실한 사건’이라는 판단 자체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확실한 경우와 확실하지 않은 경우를 나눌 수도 없다.


따라서 인간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면 사형제도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형제도가 없다면 피해자나 유족들의 억울함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징역(懲役)’이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징역형을 선고 받은 사람들에게는 강제노역이 부과된다. 강제노역의 대가 중 일부는 출소 후 사회복귀를 위한 자금으로 수형자에게 지급되고 나머지는 국고에 귀속된다. 


한편 사형이 선고되는 경우에는 강제노역을 부과하지 않고, 사형이 집행되는 경우에는 피해자와 유족이 손해배상청구를 할 상대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사형을 선고할 만큼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수감 중 노역의 대가를 피해자나 유족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싶다. 물론 피해자와 유족들의 고통이 금전적으로 배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금전적으로나마 위안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피해자와 유족들 그리고 국민들에게 감정적인 응어리를 풀어줄 수는 있겠지만, 인류 역사가 발전하면서 사형과 같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형벌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그것이 보복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극악한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이 조금이나마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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