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이야기(2)
가끔 법조인이 아닌 주변 지인들로부터 “술 마셨다고 형을 감경해주는 심신미약 제도는 도대체 왜 있는 거야?”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면 항상 “술 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 ‘이불킥’ 해본 적 없어?”라는 이야기로 답을 시작한다. 이 글에서는 법률이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많은 국민들이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과 관련된 기사에 사법부를 비난하는 댓글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사실 비난의 대상은 법을 적용하는 사법부가 아니라 그러한 법을 만든 국회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최종적인 판단은 개인의 몫이지만- 적어도 왜 그러한 제도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판단을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이 주제, 정확하게 말하면 범죄의 성립과 처벌을 위한 책임능력에 관한 것은 이미 수세기 동안 수많은 법학자들이 치열하게 논쟁을 벌여온 주제이다.
하지만 과거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형사법 체계에서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의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고, 책임능력을 인정할 수 없거나 그것이 미약한 경우 범죄가 성립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론(異論)이 없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aver?d1id=6&dirId=6020602&docId=313391751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형을 감경하는 것은 대다수 문명국가들의 공통적인 법제도로서 책임능력이 미약한 자에게는 그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능력이 온전한 사람에게와 같은 비난을 가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나이가 어리거나 지적 장애가 있어서 판단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행동을 평균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기준에서 평가하고 동일한 벌을 주는 것이 공평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주변에서 술에 만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사람을 본 적이 있다면 그러한 상태의 사람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판단력을 가진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신의 행동의 의미와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태에서 위법행위를 한 사람과 멀쩡한 정신 상태에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위법행위를 한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비난 받아야할까? 흔히 우리는 잘못인 줄 알면서 하는 행동이 잘못인 줄 모르고 하는 행동보다 나쁘다고 하지 않는가?
형법이 심신미약자에 대해서 형을 감경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이다. 술이나 약물로 인해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행동은 어린아이나 지적 장애인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①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형법의 태도에 대해서 아마 혹자는 술이나 약물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 즉 자의로 심신미약 상태에 이른 것이니 그러한 상태에서의 범죄에 대해 처벌을 감경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심신미약으로 인하여 형이 감경되려면 처음부터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자신이 술에 취하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를 의도를 가지고 혹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자의로 심신미약을 야기한 경우에는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이 불가능하다. 법학에서는 이를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Actio libera in causa)’라고 한다.
예컨대 자신이 술에 취하면 매우 폭력적으로 변해서 자주 주변 사람들과 다투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설령 ‘이번에는 절대 타인과 싸우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술을 마셨더라도, 음주 상태에서 폭행이나 상해의 죄를 저지르는 경우에는 과실(過失)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해당하여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이 배제될 수 있는 것이다.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③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심신미약으로 인해 형을 감경 받는 사람은 범죄나 범죄의 가능성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는 것을 선택했는데 이후 심신미약 상태에서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상태에서 한 것은 범죄가 아닌 ‘술을 마시는 것’이었고, 이후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면 술을 마시는 것 자체는 범죄가 아니니 술로 인해서 심신미약이 야기 되었다고 해서 다른 원인으로 심신미약에 이른 경우와 달리 처리해야할 근거를 찾기가 어렵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범죄를 의도하거나 범죄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음주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닌 경우에는 심신미약으로 인한 형의 감경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사람이 술을 마시면 이성적인 판단력이 저하되고 범죄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술에 만취하는 것 자체에 책임의 근거를 두고 음주 상태의 범행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완전명정죄라는 것이 있다(이 경우에도 선고 가능한 형량은 실행한 범죄의 법정형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 5년의 징역이다. 즉 완전명정 상태에서 살인죄를 저지르더라도 5년을 초과하는 형을 선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범죄 의도나 가능성 인식 없이 술이나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를 처벌하는 별도의 규정을 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입법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 형법 제323조a 완전명정
① 고의 또는 과실로 알코올 음료나 기타 각성제를 복용하여 명정상태에 있는 사람이 위법행위를 범하고 명정상태로 인하여 책임능력이 없거나 책임능력 심사를 배제할 수 없어서 이를 처벌할 수 없는 때에는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② 전항의 형은 명정상태에서 범한 범죄행위에 규정된 형보다 중할 수 없다.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취감경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위 독일 형법에서 “...명정상태로 인하여 책임능력이 없거나 책임능력 심사를 배제할 수 없어서 이를 처벌할 수 없는 때...”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독일을 비롯한 외국의 법률에 따르더라도 주취 상태에서의 범죄는 정상적인 상태에서의 그것보다 형이 감경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