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달빛쌤

by 크리스티나

읍내에 하나뿐인 여고 1학년이었죠. 말이 없고 친구도 사귀지 않았고 점심시간에도 늘 혼자 밥을 먹던 아이. 체육시간에는 벤치에 앉아 다른 아이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아이. 특별한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던 주근깨 투성이 아이. 그게 저였어요. 열일곱 무렵, 매사 신경질적이었고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신조차 싫었던 그런 아이 말예요.


그런 아이를 지그시 지켜보는 선생님이 계셨죠. 영어 담당이셨고 아마 당시 그분 나이가 삼십대였을거예요.


이번 일요일에 읍내 성당 앞에서 만나자, 기다릴게, 라고 어느 날 말씀을 건네오셨어요. 달빛쌤이라고 부를게요. ^^

집과 학교만 오고갔던 저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일요일에 시간 맞춰 성당으로 갔어요. 미사 시각이었던지라 신자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있는 성당 문 앞에서 달빛쌤을 만났죠. 사모님도 함께 나타나셨어요.


그날 처음 접했던 미사 전례와 검은 옷을 입으신 신부님 수녀님도 세상의 분위기와는 무척이나 달라 보였어요. 미사가 끝난 후 너른 성당 마당에 자리를 펼치고 앉아 사모님께서 손수 만들어오신 김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가을볕이 좋았던 날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아요.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말할 수 있어야 건강한거야, 라고 하셨고 그날 마더 데레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런 삶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달빛쌤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달빛쌤과는 학교에서도 친밀하게 관계를 이어갔어요. 그 때는 야간자율학습이 강제로 시행되던 시절이라 정규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이 있었어요. 쌤은 가끔 달빛이 쏟아지는 교정에서 저에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어요. 그분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했었고 어느 지점에서 실패했는지 왜 마음을 다쳤는지... 그런 이야기들 말예요.


일요일이면 성당에 갔었고 사모님이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셨어요. 그런 만남은 제가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성당 미사에 더이상 참석하지 않게 되었던 그해 겨울 직전까지 지속되었던 것 같아요. 좀 언짢아하셨었어요. 성당에 더이상 가지 않겠다는 저의 선언에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사랑이었어요. 걱정하는 그분의 마음이었고 저를 향한 관심이었네요. 너는 인생의 목적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곳에 도착해야 삶이 의미있다고 믿는데.. 살아가는 건 과정이란다. 너를 저 나무들처럼 다듬어 어여쁜 아이로 키우고 싶다. 교정의 나무를 전지하는 광경을 함께 지켜보며 나누었던 대화였네요. 뜻이 모호했던, 그래서 더 기억에 또렷이 새겨졌던 그분의 말씀들이,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기억의 수면에 떠오르고 잠 못 드는 밤이면 뒤척일 때마다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어요.


긴 세월이 흘러, 저는 변한듯 변한게 없는 이 읍내로 돌아왔고 달빛쌤은 퇴직하셔서 이미 학교를 떠나셨어요. 수소문하면 연락이 닿을 수도 있겠지만 추억은 그저 그 자리에 두고 싶습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쳐들던 그 교정에, 그리고 볕이 환했던 성당 마당에 말입니다.


귀향했던 해 봄에 성당에 가보았습니다. 미사가 없는 월요일을 택해 방문했던지라 성당은 고요했어요. 성모상 곁에 드리워진 목련나무가 아름다웠고 신부님께서 봄볕 아래 책을 읽고 계셨어요. 사람은 인연의 수명이 다하면 떠나지만 옛날은 남는 것 같습니다. 긴 시간을 건너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 까닭은 단지 하나는 아니겠지요. 그 이유들 가운데 달빛쌤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가는 길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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