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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 Jan 23. 2023

키 때문이야.

2022년 여자 평균 신장보다 8.4cm 큰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2022년 우리나라 평균 신장은 남자는 172.5cm, 여자는 159.6cm이다. 그나마 1979년에는 남자 166.1cm, 여자 154.3cm 였는데 경제성장 만큼이나 평균 신장도 급성장했다. 

우리 가족은 딸만 셋인 집이다. 아빠는 170cm, 엄마는 160cm, 큰언니 160cm, 작은언니 162cm, 그런데 나는 168cm이다. 부모님은 키 큰 막내딸을 항상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리고 나 스스로 키 큰 것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도 키 순서로 번호를 정하고 뒷자리에 앉으니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 주목을 안 받으니 편했다. 심지어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많이 먹어서 키도 크고 몸도 컸다. 

약간의 흑역사라면 중학교 입학 때 교복에 맞는 구두를 사러 명동 백화점 1층 여성화 코너에 갔더니 260mm의 여성 구두는 없으니 남성 구두 코너로 안내받고 그 자리에서 울었다. 뾰족하고 날렵한 숙녀화를 원했는데 아빠 신발을 신으라니 13살 평생의 굴욕이었다. 부모님이 맞춤 구두를 사주며 세상에서 하나 뿐인 신발이라고 해도 큰 위로가 되지 않았고, 지금도 맞춤구두를 신지 않는다.

테레비 속에서는 180cm 넘는 멋진 남자들이 많았는데 현실세계, 특히 내 주변에는 큰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회사원이 되어 7cm짜리 굽의 구두를 신고 나갔더니,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남자 선배들에게 타박을 받았다. 그 이후 그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다. 

소개팅을 하면서도 내 큰 키는 장애물이 되었다. 남자들은 아담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냥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데 내가 그렇지 않아서 그런 핑계를 댄거 같다. 여하튼 엄마가 아는 분의 친척을 소개해주셨다. 바닥에 딱 붙은 구두를 신고 만났는데도 시선이 만나버렸다. 심지어 남자분은 참 말랐다. 나는 뚱뚱한데. 그래도 대화는 즐거웠다. 그렇게 몇 번을 만나고 맛집도 다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세, 네달이 지났다. 가족들은 그렇게 만나는 것은 서로 마음에 있는 것이라며 어서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착한 딸인 나는 그에게 우리집에 가보는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내게 너무 크다고 했다. 본인이 남자니 결혼식장에서 위급상황에서 나를 안고 가야할텐데 본인에게 내겐 너무 커서 안될꺼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또 키가 내 앞길을 막고 있구나. 

평생을 배두나나 공효진처럼 여리여리한 몸을 꿈꾸지만 이 세상에는 맛있는 것이 너무 많고 난 먹는대로 살로 가는 솔직한 몸이다. 식욕억제제를 먹으며 15kg 이상 뺀 적이 있지만, 난 그녀들처럼 마른 몸이 안되더라. 주변에서는 내가 살을 뺐는지도 모르고 큰 차이를 스스로도 모르겠더라. 야금야금 요요가 와서 지금은 또 이전 내 몸이 되었다. 이제 그냥 생긴대로 살자고, 결혼 못하면 어떠냐고 남자가 키가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했다. 이렇게 혼자 잘 지내다 보니 내 몸이 탄탄해 보이고, 키가 크니 옷 줄이지 않아도 되니 맵시가 산다. 얼마전에는 내게 살 빼지 말라는 남자친구도 생겼다. 그분이 나보다 키가 작은줄 알았는데, 사진을 찍고 나니 쪼금 더 크다. 그분도 스스로 맘에 들지 않은 부분을 내게 말하는데 내 눈에는 귀엽게만 보인다.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키가 167.6cm으로 0.4cm 줄었다. 키가 앞으로 계속 계속 야금야금 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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