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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 Apr 10. 2023

예식장 계약했습니다.

시간을 달라던 남자친구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하게 됩니다. 

시간을 주겠다는 글을 남자친구에게 보여줬습니다. 다행히 이야기가 잘 통해서 재미있게 데이트 중입니다. 그 이후 남자친구는 저나 우리 집에서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저도 더 이상 독촉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며칠 후, 남자 친구가 저녁 약속을 마치고 저와 함께 퇴근했습니다. 술이 약한 남자 친구는 얼굴이 빨갛더라고요. 맥주 2잔 마셨다고 하던데 얼굴과 코까지 붉었습니다. 벚꽃이 많이 떨어진 성내천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남자친구가 결혼하자고 하더군요. 흐음. 알겠습니다. 그래요... 그러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취한 거 아니라고 했습니다. 음. 이게 프러포즈인가? 얼굴을 발그레 빨게 길거리에서? 전 공대 여자라 그런지 큰 감흥은 없더군요. 


남자 친구의 그 말 이후로 뭔가 급작스럽게 준비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 둘의 대화는 결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니깐요. 경제 사정과 신혼여행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견례는 다음 주에 잡았습니다. 남자 친구가 신부로서 로망이 있냐고 해서 딱히 로망도 없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엄마한테도 결혼식 안 올리고 그냥 혼인신고 하고 살면 안 되냐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시더군요... 코로나를 지나며 예식장이 많이 망하고, 결혼식을 많이 미뤄서 1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는 말에 올해는 힘들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엄마가 동네 예식장에 다녀오셨습니다.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10월부터 12월 중에 딱 하루 11월 4일 11시에 빈다고 전화가 왔더군요. 그런데 당사자가 아니라 견적도 못 받으니 둘이 당장 가보라고 했습니다. 토요일에 한강 자전거를 타기로 약속해서 가기 전에 예식장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집은 천호역인데 주변에 3군데 예식장이 있는데, 각기 장단이 있지만 큰언니가 한 곳에서 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저렴하기도 하고요. 


10시에 가서 상담받는데, 11월 4일은 어제 2시 상담 손님에게 예약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 이후나 그 이전은 언제냐고 했더니, 내년 1월 이후, 올 8월 9월이라고 합니다. 


9월 2일 11시, 9월 9일 2시, 9월 16일 12시 20분, 9월 23일 2시 4개가 비었답니다. 마감 임박!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각자 부모님께 전화하며 물어보고 고심 끝에 9월 16일로 예약했습니다.


시간을 달라던 남자 친구이었건만 더 빨라졌습니다. 이왕 하는 거 빨리 하고 함께 잘 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11일 휴가 내면 3주간의 여행도 가능합니다. 계약서 쓸 때는 무덤덤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러분 저 시집 가요. 이 사람과 만나려고 그동안 그렇게 먼 길을 혼자 살았나 봐요. 앞으로 둘이서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 남자 친구는 브런치의 존재를 모릅니다. 계속 비밀로 하고 싶네요. 모두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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