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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 May 01. 2023

인생 편하게 살아서 좋겠다.

맞아요. 저 편하게 살았어요. 뭐 불편하신 거라도...?

고등학교 수능이 끝났습니다. 대학 발표를 하고, 정든 독서실에 가서 짐정리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인생 편하게 살아서 좋겠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데, 너는 놀면서 공부했는데 좋은 대학 가고 운이 좋은가 봐.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부터 독서실에 등록해 학습지 2권을 구독하고, 시중에 나온 거의 모든 문제집을 풀며 새벽 6시부터 밤 2시까지 잠을 쪼개 자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들어본 지방대의 낯선 학과에 갈 수 있다던 제 성적은 쭉 상승해 서울 상위권 대학,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전 아주 기뻤습니다. 그동안의 고생은 다 잊고 내 앞에 꽃길만 펼쳐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같은 학교였던 친구는 저보다 공부를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성적이 비슷비슷했는데, 수능 2교시에 밖에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의 노력이 폄하된 거 같아 많이 속이 상했습니다. 내가 친구에게 수능시험 중간에 나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괜히 내게 시비인가 당황스러워서 그냥 그 말을 듣고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신나게 놀았던 대학 시절을 보내다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이제 꽃길이 없는 건 알지만, 그래도 내가 벌어 내가 신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선배가 또 제게 말하더군요. 

뭐가 그리 즐거워? 인생이 우스워? 웃지 마, 기분 나빠.

고3 때의 그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배라 뭐라 반박도 제대로 못하고 내가 너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웃고 있나 생각하며 웃음을 감추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저런 말을 듣고 나면 왠지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에는 고난과 좌절이 있어야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 같은데, 누구나 겪는 수능생활, 취업 준비 생활을 하고 있어 삶의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대학 시절 동안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보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보며 어른이 되어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억울합니다. 왜 나는 그들 앞에서 내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을까.

어 나는 운이 좋아서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와 원하는 대학에 갔어.
네 저는 즐거워요. 인생이 즐거워요.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것도 정말 운이 좋은 일입니다. 게다가 저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부모님과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아 잘 웃고, 우리 집 안에서 귀히 자랐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고생하며 우울한 얼굴을 하며, 삶의 모진 풍파를 겪기를 원할까요? 


그 이후 또 이야기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아가씨처럼 살았나 보다고 해, 우리 부모님이 아가씨처럼 예쁘게 키워주셨다고 답했습니다. 더불에 그분께 자녀 분을 어떻게 키우고 싶냐고 되물어봤지요. 그랬더니 떨떠름해하시더군요. 그분이 제게 그렇게 말한 의도와 생각은 알 길이 없지만, 내가 그분의 말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며 괜히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자란 아가씨입니다. 맞아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니깐요. 모진풍파는 겪지 않았어요. 그래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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