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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 Feb 11. 2021

공무원 선배가 본 공무원의 죽음에 대하여...

신규들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며칠 동안 언론에서 공무원의 자살에 대해 언론 보도가 나왔다. 서울시 2년 차 7급 직원, 고용노동부에 일주일 동안 출근한 9급 직원... 몇 년 전에 서울시에서 연달아 3 4명이 죽었던 보도들까지...


같은 직원으로서 참 안타깝다. 부서에, 주변에 그들에게 괜찮냐고 묻는 단 사람이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은데 같은 동료, 선배로서 참 미안하다. 3가지 신규에 대한 개선이 있다면 좋겠다.


난 8년 차에 접어드는 서울시 공무원이다. 대기업을 3년 다니다가 들어온 서울시는 참 이해가 되지 않은 곳이었다.


첫 번째 신규에 대한 교육이 엉망이다.

대기업에 들어가 교육을 거의 3개월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한 달간은 그룹 연수로 합숙을 하면서 회사에 대한 자존감을 드높였다. 당시 회사에서 가족에게 “인재를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꽃을 받은 동기도 있다고 해서 참 부럽고 자부심이 들었다. 그리고 몇 달간은 동기들과 함께 MS, CAD, 한글 등 회사에서 배워야 하는 프로그램을 배우러 학원에 갔다. 보고서란 무엇이고 어떻게 쓰는지도 전문 강사에게 배우면서 직접 써보기도 하면서 첨삭받고 깨졌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밑천은 지금까지도 주변 직원 중에 컴퓨터를 잘 다루는 직원으로 통하게 되었다.

반면 서울시에 합격을 하면 나 때는 4주, 요즘은 2주,, 코로나 시절에는 재택을 통해 교육을 하고 있다. 현충원에 가서 참배를 하고 서초동 인재개발원에서 지방재정, 새올 등의 교육을 하고, 연극이나 봉사활동 등을 했다. 업무에 가장 필수적인 교육인 새올이나 지방재정은 3시간 선배 공무원에게 일방적인 교육으로 너무나 지루해서 졸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대다수가 인문학, 교양, 체육대회 등 동기간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어 커플이 몇 개나 생겼는지가 더 궁금했던 기간이다.


두 번째로 발령장 한 장에 인생은 케바케다.

신규 교육을 받고 회사에 앉으면, 업무분장이 된다. 신규의 자리는 항상 비슷하다. 힘든 부서의 막내... 업무도 그 전임자가 하던 그대로를 받곤 한다. 이력에 대기업이 있던 나는 - 그냥 적당히 나이 많고, 경력이 있으니 잘할 수 있겠지? - 7급 주임님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예산이 수천만 원에 구청장이 참석했던 주민 참여 회의를 진행하는 업무를 맡았다. 졸면서 들었던 수업, 기안문 작성요령, 지방재정과 관련된 두꺼운 매뉴얼만 옆에 있었다.

선람해, 재기안 해, 예산 써..

도대체 무슨 말인지 생전 처음들어보는 용어들이었으나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난 내일 하고, 너는 네일 하렴? 그런 분위기였다. 몇몇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히 물어봤지만, 어떤 선배들은 두꺼운 책을 주면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친절한 선배를 만난 동기는 쉽게 적응했지만, 업무가 과다한 곳에 배치된 동기들은 서로에게 물으면서 버텼다. 업무가 바뀌면 봐야 할 매뉴얼과 책이 엄청 많다. 법만 있으면 좋겠는데, 법-시행령-시행규칙에 업무별 지침을 얼마나 많은지 계속된 업데이트는 담당 몫이다.

신규는 20, 30대가 많은데, 선배들은 40, 50대가 대다수라 라떼에 대한 이야기와 신규의 무식함을 공감하지 못한다. 그리고 힘든 자리는 계속 신규가 채우게 된다. 그리고 옆자리에 어떤 사수를 만났는지 따라서 평생의 직장관과 업무 스타일이 결정된다.



세 번째 공무원은 공노비다. 조선시대에 공무원 9급은 아마 포졸일 것이다. 사또는 구청장 정도려나?

점점 더 늘어나는 인기에 공무원의 경쟁률이 세졌다. 하지만 회사에서 받는 대우는 생각보다 좋지 않다. 입사하고 나면 시험 보고 들어온 공무원보다 연줄로 온 직원들이 더 많고, 돈도 훨씬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구청장과 시장이 선거로 뽑혀서 그런지 민원 해결이 최우선이다. 나도 알고 있다. 주민이 제일이다. 원칙대로 법대로 하면 소극적으로 일하네, 민원을 발생시키네 등등의 말을 듣기 쉽다. 구청장의 의지에 따라 일이 편하거나 아주 많다. 내가 현재 있는 곳은... 구청장의 권한을 뛰어넘어 서울시 일, 국가 일을 다 하시려고 해서 참 고달프다. 구청장의 업무분장을 누가 좀 보여줬으면 좋겠다.

회사 다니는 친구에게 고된 생활을 이야기하면, “그게 네 일이야”, “공무원 조직은 썩었네.” 등의 반응이 돌아온다. 나도 세금 내고, 사기업보다 훨씬 더 적은 금액을 받고 일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참 슬퍼진다. 얼마 전에 주민을 위한 무료마켓을 열었는데, 각 부서별로 직원들이 돈 걷어서 주민에게 기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도지사, 구청장은 얼마나 기부를 하셨을까.


네 번째. 과도한 의전..

점심마다 과장님을 모신다. 국장님, 과장님의 밥값을 직원이 낸다. 그들이 연봉도 많고 나이도 많지만,,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다. (언론보도에 나온 이후 바뀐 곳도 있지만, 안 바뀐 곳도 있다.)

시보는 시보해제가 되면 떡을 돌린다. 많이 배우고, 얻어먹었다는 보상으로 한 번쯤 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악독한 선배를 만나서 혼자 씨름하면서 겨우 버텼는데 떡까지 사라고 하면 좀 기분이 안 좋다는 동기의 말도 들었다. 승진했다고 사야지, 부서나 구청을 옮겼다고 또 사라고 하니 그런 건수만 찾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보도자료, 확대간부회의자료, 팀장회의자료, 주요 업무보고자료, 구의회 예상 질문 자료, 매주 내야 하는 자료도 엄청나게 많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항상 하는 일을 하는데 매년 양식이 바뀌어 가면서, 국별로, 과별로, 부구청장 양식별, 구청장 보고 별로 같은 내용을 복사, 붙여 넣기 해가면서 글씨체, 자간, 스타일을 바꿔가면서 제출한다. 내가 보기에는 다 비슷한 거 같은데 보고자가 원하는 대로 만드는 게 우리의 일이다. 이런 업무분장에도 안 들어가면서 하루 종일 하는 일이다.


편하게 9시 6시 생활을 할지 알았다. 생각보다 굉장히 눈치 봐야 할 사람들도 많고, 다들 나를 지켜보고 있다. 물론 공무원은 철밥통이다. 나도 잘리지 않지만 저들도 그대로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디나 쉬운 곳은 없다. 돈 버는 행위 자체는 항상 힘들다.


괜히 힘들다고 인사과 찾아갔는데 변하지 않을까 봐 소문날까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죽지는 말자. 차라리 사표를 쓰거나 휴직을 하자. 여기 아니어도 너를 받아줄 곳은 많다. 그냥 존재로 소중하다고 나를 아끼자.




짧은 공직 생활을 하면서 느낀 지극히 저 혼자만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나도 모르게 조직 욕을 하고 있네요.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그러다 나 구청장한테 끌려가는 거 아닐까 걱정하면서 글을 쓰게 되네요. 서울시에도 분명 장점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건 공무원의 아주 일부.. 전체를 겪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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