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가 전쟁터에서 쓴 일기이자 철학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AD121-180), 로마제국의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기 자신에게 쓴 일기이자 철학서이다.
한 사람이 동시대를 넘어 여러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고 존경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 어떤 덕목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어찌 보면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사람마다 시대마다 가치를 두는 측면이 다 다르고 계속 변화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족적을 남기고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어떤 보편적이고 변함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너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하고자 한다면, 네가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좋은 점들을 떠올려 보라.
- '명상록' 제6권.
명상록 제1권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주변의 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장점과 가치를 ‘누구로부터 어떠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알았다’의 형식으로 기술하였다. 그가 배우고자 하는 인물들이고 가치를 부여하는 덕목들일 것이다. 우리가 그 인물들을 직접 만나보지 못했으나, 그 덕목들이 2000여 년 시간을 넘어 지금도 유효하며 가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내 할아버지 베루스에게서는
선량하다는 것과 온유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내 아버지에 대한 평판과 기억으로부터는
겸손함과 남자다움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내 어머니에게서는
신을 공경하며 살아가는 경건한 삶, 사람들에게 후히 베푸는 삶, 잘못된 일을 실제로 하지 않음을 넘어 그런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삶, 부자들과는 거리가 먼 검소한 삶을 보았다.
신들에게서 나의 좋은 조상들, 좋은 부모, 좋은 누이, 좋은 스승들, 좋은 권속과 친지와 친구들을 예외 없이 모두 얻었다… 이 모든 일들은 신들과 행운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책 마지막에 붙는 감사의 글이 책 서두에 온 느낌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세계사 속에서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대로 꼽은 로마의 5 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이다.
이 글이 그의 삶과 괴리된 위선이 아니라면, 그의 훌륭한 황제로서의 치적은 그의 감사와 겸손, 올바른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함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죽음은, 너를 이 우주라는 거대한 국가에서 살게 한 자연이, 이제 때가 되어 너를 이 국가에서 내보내는 것이다. 그것은 집정관이 희극배우에게 무대에 올라가서 연기를 하라고 지시했다가 얼마 후에 무대에서 내려오라고 지시하는 것과 같다.
너는 5막이 아니라 3막 만을 마쳤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연극과는 달리 3막만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처음에 여러 가지 것들을 결합해서 너를 만들어 낸 바로 그 존재만이 너의 인생을 언제 끝낼지를 결정할 수 있고, 그 결정을 따라 너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해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태어난 것이나 죽는 것은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결정을 선의로 받아들여서 순순히 떠나라. 너를 떠나보내는 자연도 선의를 가지고서 너를 떠나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 '명상록' 제12권
그곳이 궁정이든 전쟁터이든,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우주적 이성 앞에서 반성하고 흐트러지지 않으려 다잡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마치 성직자 이상으로, 이미 성인의 경지로 느껴진다. 그의 사상의 근간은 스토아 철학이다. 이 철학은 어떻게 종교만큼이나 강력하게 마르쿠스의 삶 전체를 관통하였는가.
스토아 철학은 윤리 도덕적인 삶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 밑바탕에 신(우주)의 섭리적 세계관이 매우 강력하여, 이를 통해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제시한다. 신과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우주의 모든 것은 섭리에 따르며 이것이 인간에게는 운명인 것이다. 세상 어떤 일도, 나의 죽음조차도, 우주적 이성 앞에서 선하다. 이 섭리를 따라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다. 인간의 삶은 선한 성품과 미덕을 표현하는 삶이 되어야 하며, 윤리적인 삶을 통해 공동체에 헌신해야 한다. 그의 독백을 통해 전해지는 스토아 철학은 이러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높은 수준의 실천 윤리를 제시하며, 설득력을 가진다.
스토아 철학이 강조하는 것은 부동심, 아파테이아(Apatheia)이다. 어떠한 유혹이나 시련, 슬픔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다. 그는 평정심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성경책에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는 잠언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자기 자신을 계속 다잡는다.
모든 쾌락이 보잘것없음을,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비롯됨을,
다른 사람의 평가에 나의 행복이 달려있지 않음을,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를 휘두를 수 없으며, 오직 그로 인한 나의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임을,
인생에서 선한 자에게나 악한 자에게나 똑같이 일어나는 죽음과 삶, 명예와 불명예, 고통과 쾌락, 부와 가난은 선도 악도 아니며 유익한 것도 해로운 것도 아님을,
육신에 속한 모든 것은 강물처럼 흘러가며, 호흡에 속한 모든 것은 꿈이고 신기루이고, 인생은 전쟁이고 낯선 땅에 머무르는 것임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일대기를 살펴보니, 그는 매일의 다짐대로 그의 삶을 일관되게 살아냈다.
로마제국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시대의 5번째의 현제로서 또한 철학자로서, 빈부격차와 이민족들의 침입으로 혼란해져 가는 로마를 지혜롭게 통치하여 당대까지 전성기를 유지하였다. 여러 전쟁을 이끌어 승리를 거두었고, 전쟁터에서 병사하여 59세에 최후를 마칠 때까지 로마인으로서 당당하고 정의롭게 자신의 소임을 완수하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