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여정에서 찾은 깨달음
저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은 세계적인 사회인류학자이다. 그는 2016년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은 이후,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 이 책을 썼다. 그는 2024년 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생의 의미’에 대한 강연과 저술에 힘썼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
이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저자가 만난 어떤 이들은 신앙심 혹은 자선활동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어떤 이들은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즐기고 거기에 감사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았다.
저자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고 연구해 온 인류학자이며 인문학자로서,
또한 암 선고로 인생의 막다른 길을 마주하게 된 한 인간으로서,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첫 번째 답을 말한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관계’이다.
‘관계’
이 단어 앞에 내가 작아지는 것은, 내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것을 즐기는 외향적 성향이 아니기 때문이겠다.
그런데 책을 넘겨가니 저자가 말하는 ‘관계’라는 것은 약간은 다른 관점이었다.
상호 간 의무가 없어 자유롭고 가볍고 즐거운 관계가 아니라, 권리와 의무가 가득 찬 친밀한 관계-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등- 를 말하고 있었다.
내 뜻대로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양보하고 타협해야 하는 관계, 나를 버리고 내 야망을 줄이며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관계,
사랑이라는 가느다란 실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 실이 끊어질 때 깊은 심연이 열리고 배신당했을 때 비이성적인 분노를 일으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결되어 돌아와 끌릴 수밖에 없는 관계,
그러나 우리를 비로소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내는 것은 이렇게 의무로 점철되어 서로 촘촘히 연결된 관계라고.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실타래, 사랑의 실로 서로 연결된 관계라고, 저자는 말한다.
...
스물아홉에 결혼을 하고, 직장 생활을 계속하며, 아이들을 낳아 키웠다.
둘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서로 의지가 될 만큼 듬직하게 자라난 아이들과 함께 넷이 되었다.
내가 지난 시간 애써왔던 것은 ‘관계’ 보다는 사실 결과물(?)이었다. 아이들을 바르고 훌륭한 성인으로 키워내고자 했고, 내가 좋은 부모의 모습이고자 했다.
저자는 부모 자식이 의무로 점철된 관계라고 표현했는데, 사실은 의무인지 사랑인지 구분할 겨를도 없이, 나 자신의 자유로움을 갈망할 여유도 없이, 온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부어야 했다. 그러고도 어쩔 수 없이 항상 취약했고, 주변 사람들의 호의와 도움의 손길에 수없이 의지해야 했고, 어려웠지만 그 가운데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 그렇게 흘러간 긴 시간이 주변과 나를 수많은 사랑의 실로 끈끈하게 연결하였다.
만약 그 시간과 노력이 나만을 위해 사용되었다면 내가 더 많이 성취했을까?
더 훌륭한 능력의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러나 저자의 인생의 의미 리스트에서 일곱 번째까지 다 살펴보아도 ‘자아실현’, ‘성취’, ‘능력’ 등의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관계’의 깊은 의미를 일찍이 알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엄마로 아내로 살아낸 시간이 나를 그 끈끈한 사랑의 연결 속으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의미로 이끌었음을 깨닫게 된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관계’이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결핍’이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꿈’이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느린 시간’이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순간’이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균형’이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실끊기’이다.
일곱 가지 인생의 의미에 대한 저자의 깨달음이 매우 깊다. 아마도 읽는 이마다 마음에 꽂힐 부분이 각기 다르도록, 풍부한 이야기가 가득 담긴 책이다.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인생의 의미》, 이영래 옮김,
더퀘스트.